땡깡이라는 단어에 대해
 

땡깡은 전간(癲癎), 간질, 지랄병을 뜻하는 일본어 텐칸(てんかん)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땡깡 부리는 모습이 간질 발작과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에서 유래했으면 그것도 간질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땡깡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짜증, 억지, 생떼, 막무가내, 행패, 응석 등으로 순화해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짜증, 억지, 생떼, 막무가내, 행패, 응석 모두 땡깡(tantrum, temper tantrum)과 연관성이 있는 단어이지만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어린이가 주로 부모를 상대로 부리는 땡깡에는 목적이 있다. 땡깡은 무언가를 해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그냥 조르는 것이 아니라 발버둥치고 울고불고 소동을 피운다. 내가 알기로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한국어 중에 temper tantrum에 정확히 대응하는 말은 땡깡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땡깡이라는 단어를 쓸 생각이다.

 

영어에서 유래한 말은 별 상관 없이 쓰면서 일본어만 차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거에 일부 일본인이 잘못한 것이지 일본어에 무슨 죄가 있나? 그리고 잘못한 것으로 따지면 미군이 한국 전쟁에서 벌인 민간인 학살을 비롯하여 한국인에게 한 만행은 엄청나다. 물론 어린애들이 발버둥치며 생떼를 쓰는 것에 간질에서 유래한 말을 붙이는 것이 조금 꺼림직하긴 하지만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다른 대안이 없다면 땡깡이라는 단어를 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땡깡의 적응 가설
 

땡깡의 적응 가설에 따르면 땡깡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적응이다. 땡깡은 주로 부모를 대상으로 부린다. 부모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이 충돌할 때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쓰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큼 사랑과 이타성이 넘치는 관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친도가 0.5이기 때문에 불화의 씨앗은 남아 있다. Robert Trivers가 「Parent-offspring conflict(1974)」에서 지적했듯이 부모의 유전자와 자식의 유전자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이르게 젖을 떼는 것이 유리한 반면 자식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늦게 떼는 것이 유리하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자식들을 공평하게 보살피는 것이 유리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형제자매보다 어느 정도 더 보살핌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실제로 땡깡을 부리는 것을 보면 땡깡이 이런 이해관계의 출동을 반영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인간의 자식이든 침팬지의 자식이든 “이제는 젖을 그만 먹고 싶다”고 주장하며 땡깡을 부리는 경우는 없다. 자식은 젖을 더 먹겠다고 땡깡을 부린다. 젖을 더 먹으면 엄마의 배란이 더 오래 억제되며 동생이 더 늦게 태어난다. 동생이 더 늦게 태어나면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동생에게 더 많이 주어야 한다”고 땡깡을 부리는 경우도 없다. 아이는 형제자매보다 더 많이 받겠다고 땡깡을 부린다. 이것은 땡깡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부모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전략으로서 잘 설계되었음을 암시한다.

 

 

 

 

 

자해 전략
 

부모와 아이는 완력의 차이가 엄청나다. 따라서 육탄전을 벌여서 부모를 이길 가망성은 없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전략이 바로 자해 전략이다. 자신의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부모를 협박하는 것이다. 자식의 몸과 건강은 부모의 유전자에게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전략은 통할 수 있다.

 

땡깡이 심해질수록 점점 자해의 측면이 두드러진다. 아이는 처음에는 좋은 말로 하다가 점점 목소리가 커지며 결국 목이 쉬도록 심하게 울어댄다. 그리고 몸짓도 발버둥에서 시작하여 벽 등에 자신의 머리를 찧는 행동으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면 심한 부상을 당할 짓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땡깡의 목적은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서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지 실제로 부상을 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부상으로 잃는 것이 더 컸다면 땡깡 전략이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란하게 소동을 피우는 것도 일종의 자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와 달리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언제 맹수나 다른 부족민이 침입할 지 모르는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요란하게 소동을 피우면 생존에 지장이 생겼을 것이다.

 

이런 협박 전략으로 자신도 실제로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협박 전략이 진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협박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세울 필요가 있다. 협박 전략은 수컷 공작의 꼬리처럼 스스로 생존에 방해가 되는 것을 만들어내는 핸디캡 원리의 전략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과거와 현대의 환경 차이
 

현대 선진 산업국에서 아이는 더 많이 먹겠다고 그리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난감을 더 많이 사서 가지고 논다고 생존과 번식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더 많이 먹어 보았자 비만에 걸릴 확률만 높아질 것 같다. 좋은 이유식이 있는 사회에서 젖을 더 많이 먹는다고 큰 이득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땡깡이 심하면 집안이 엉망이 된다.

 

요컨대 현대의 땡깡은 오히려 생존과 번식을 망치는 행위로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아동 심리학자들이 땡깡을 일종의 병리적 현상 또는 준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것 같다. 뭔가 가정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현대 선진 산업국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이 오랜 기간 진화했던 사냥-채집 사회나 그 이후로 약 1만 년 동안 진화했던 농경 사회는 그리 풍요롭지 못했다. 따라서 동생이 더 늦게 태어나는 것이 자신의 생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먹겠다고 땡깡을 부리는 것 역시 유력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만의 위험보다는 굶주림의 위험이 훨씬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터울이 작아졌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자식이 태어난 지 보통 3~4년이 지난 다음에나 임신을 했기 때문에 터울이 4~5년 정도였는데 농경 이후로는 심지어 터울이 1년 밖에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경쟁할 일이 적은 것 같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동생이 태어날 때쯤 되면 젖 먹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마음을 비운 상태가 된다. 따라서 젖을 놓고 동생과 경쟁할 일이 거의 없다. 다른 면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예컨대 뛰어 노는 것에 재미를 붙일 나이가 되면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망을 덜 느낄 것이다. 경쟁이 약할수록 땡깡을 부릴 일이 적을 것이다.

 

어쩌면 동생과 나이 차이가 아주 작으면 그 동생을 무의식적으로 친동생이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인간이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같은 엄마가 낳은 친동생과 나이 차이가 1~2년 정도 밖에 안 나는 경우가 거의 불가능했으므로 그런 메커니즘이 진화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터울이 3~4년 이하인 경우에는 형제자매간 이타성이 현저히 적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만약 친동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더 치열하게 경쟁하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땡깡을 더 부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현대 선진 산업국에서는 사냥-채집 사회나 농경 사회보다 보다 아이들의 응석을 더 받아주는 것 같다. 즉 땡깡을 부렸을 때 달래거나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그러면 더 땡깡을 부리게 된다.

 

요컨대, 현대 선진 산업국에서는 과거와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땡깡 전략이 별로 적응적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유전적 구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 진화한 땡깡 메커니즘이 계속 발현되는 것이다. 또한 현대의 환경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땡깡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 땡깡을 너무 많이 부려서 오히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현대에는 오히려 부적응적으로 작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적응이라는 점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 땡깡 메커니즘이 부적응적으로 작동한다고 해서 땡깡의 적응 가설이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땡깡이 심해질 때
 

부모가 일관성이 없을 때 땡깡이 심해진다. 땡깡을 아무리 부려도 일관성 있고 단호하게 대처하면 얼마 후에 더 이상 땡깡을 부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모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으면 땡깡이 심해진다. 예컨대 엄마는 땡깡을 부려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아빠는 땡깡을 부렸을 때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한다면 아이는 계속 땡깡을 부릴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부모가 일관성이 없거나 의견이 충돌하면 아이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땡깡을 더 부린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는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다. 부모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일치 단결하여 아무리 떼를 써도 항상 단호하게 대처한다면 땡깡 전략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울고불고 힘을 써도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반면 엄마 자신이 오락가락할수록, 엄마와 아빠의 의견이 충돌할수록 땡깡의 성공률은 높다. 이럴 때에는 땡깡을 부리는 것이 유력한 전략이다.

 

아이의 이런 행동 패턴은 땡깡의 적응 가설과 잘 부합한다. 만약 땡깡 메커니즘이 잘 설계되었다면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여 성공 가능성이 높을 때 땡깡 전략을 쓸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사랑이 부족해서” vs.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땡깡의 적응 가설에 따르면 땡깡을 부리는 이유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땡깡을 부리는 것이라면 더 많이 안아 주는 식으로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해주면 땡깡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덜 안아 준다면 땡깡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약 땡깡이 전략이라면 단호함만이 땡깡을 없앴을 수 있다. 즉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절대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내니 911>과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결같이 권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단호함이다.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내니나 아동 심리학자는 애정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론적으로는 “사랑이 부족해서” 가설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사실상 땡깡의 적응 가설을 믿는 것처럼 조언한다. 즉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절대로 부탁을 들어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일치 단결하여 단호함을 보여주고 이견이 있으면 아이가 없는 곳에서 토론하라고 조언한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땡깡이 잘 설계된 전략임을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어느 정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자식을 더 많이 안아 주라는 조언에 반대할 생각이 없다. 단지 그런 애정 표현이 땡깡을 없애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땡깡을 막는 길은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이가 깨닫도록 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이것은 제3자인 내니나 아동 심리학자에게는 상당히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남의 자식이기 때문에 땡깡을 몇 시간 동안 심하게 부려도 그리 심하게 가슴이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는 몹시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땡깡 메커니즘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싶으면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심하게 가슴이 아프더라도 아이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많은 아동 전문가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뭔가 심각한 문제(정신 지체, 정신병, 정신병질psychopathy)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면,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 수준에서 분명히 인지하면 적어도 단호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더 이상 땡깡을 부리지 않는 것 같다.

 

 

 

200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