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에는 “성추행을 했을 것이 뻔하다(99%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람이 미국 경찰에 신고했다.

 

둘째, 대변인이 중대한 일정이 있는데도 혼자서 미리 귀국했다. 언론에 따르면 가방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셋째, 청와대에서 이례적으로 즉시 윤창중 대변인을 경질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이 청와대에서 밝힌 이유였다.

 

넷째, 윤창중 씨가 연락을 두절한 채 잠적했다.

 

 

 

2. 그런데 윤창중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과 관련된 혐의를 모두 부정했다.

 

윤창중 씨도 인정한 과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턴을 몹시 혼내고 미안해서 술을 한 잔 사줬다.

 

둘째, 격려 차원에서 인턴의 허리를 탁 쳤다.

 

셋째,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셨다.

 

넷째, 노크 소리가 들려서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어주었는데 여자 인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약 윤창중 씨의 말이 다 맞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다. 중대한 일정 중에 술을 마시고, 격려 한답시고 (어깨를 토닥이는 것도 아니고) 허리를 치고, 속옷 바람에 문을 열어주는 것은 부적절하고, 부주의하고, 오해를 살 일이지만 인간 말종으로 비난 받고 조롱 받을 만큼 큰 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대 일정 중에 술을 마신 것이 경질 사유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파렴치한 행동은 아니다(술을 마신 정도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허리를 툭 치는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당황한 상태에서 속옷 바람으로 문을 열어 주었지만 여자인 것을 알고 곧바로 문을 닫았다면 부주의한 것이지 성추행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3. 윤창중 씨 스스로 인정한 것만 봐도 충분히 비난을 받을 만하며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를 판에 기자회견 중에 주로 자기 변명만 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런 억울한 상황에 몰렸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만약 나라면 윤창중 씨처럼 기자회견을 해서 자신이 성추행 부분에 대해서는 죄가 없음을 조목조목 반박할 것이다. 그리고 핸드폰을 경찰에 제출하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도 응하고, 미국 가서 신고한 사람과 대질 심문도 받을 것이다.

 

지금 윤창중 씨 자신은 인간 말종으로 찍힌 상태이며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럴 때 자신이 성추행 문제에서 죄가 없음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행동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만약 핸드폰 제출 등을 포함하여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면 말이다.

 

 

 

4. 내가 의혹이 사실일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들이 많이 무너졌다.

 

계속 잠적할 줄 알았는데 그는 곧바로 당당히 나서서 기자 회견을 했다.

 

몰래 도망왔다고 들었는데 그는 상사인 이남기 홍보수석이 시켜서 귀국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가방 문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가방은 수행원(?)이 챙기기로 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발표에 대해 윤창중 씨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제 한편으로 윤창중 씨와 여자 인턴 사이에, 그리고 윤창중 씨와 이남기 씨 사이의 진실 게임이 되었다. 특별히 여자 인턴이나 이남기 씨의 말을 믿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윤창중 씨의 정치적 입장을 매우 싫어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5. 언론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까지 포함하여 온갖 의혹들을 보도하고 있다. 나는 이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계든 정치계든 군부든 고위 권력자들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권력을 이용하여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의혹도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은 깨끗한 사회를 위해 권력자들이 짊어져야만 할 짐이라는 것이 내 입장이다.

 

 

 

6. 이번 청와대의 처신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말 바보 같다. 윤창중 씨는 성추행과 관련하여 계속 무죄를 주장했던 것 같다. 그러면 당연히 사태를 최대한 소상히 조사하고 처리했어야 했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서 경질했다고 발표하면 국민은 당연히 의혹이 사실일 것이 뻔하다고 믿게 된다.

 

 

 

7. 이 문제에는 온갖 문제들이 걸려 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대미 외교가 성공했는데 윤창중 사태 때문에 묻혔다고 푸념하고, 야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똥고집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청와대의 위기 대응력에 대한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그리고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 윤창중이라는 한 사람의 명예가 걸려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고, 고위 공직자였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도 인권이 보호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한 사람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고위 공직자의 경우에는 권력 남용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보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윤창중 자신이 밝힌 과실에 대해 질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진실 공방 중인데도 성추행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윤창중 씨와 그의 편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매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처음에는 1%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CCTV, 핸드폰과 호텔 전화 통화 기록, 거짓말 탐지기, 운전 기사의 증언 등을 통해 많은 경우 조만간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 때까지 윤창중 씨에게도 기회를 주자. 진실이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이 밝혀진 다음에 그를 조롱하고 비난해도 늦지 않다. 섣부른 확신이 연예인 주병진 씨 같은 억울한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상기해 보자.

 

 

 

이덕하

201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