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는 현대 사회보다는 사냥-채집 사회가 진화한 본능을 더 잘 만족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The topic of this book thus resembles, in a way, that of Civilisation and Its Discontents (1930), except that my conclusions differ greatly from Freud's. Indeed, the conflict between what men instinctively like and the learnt rules of conduct that enabled them to expand - a conflict fired by the discipline of `repressive or inhibitory moral traditions', as D. T. Campbell calls it - is perhaps the major theme of the history of civilisation. It seems that Columbus recognised at once that the life of the `savages' whom he encountered was more gratifying to innate human instincts. And as I shall argue later, I believe that an atavistic longing after the life of the noble savage is the main source of the collectivist tradition.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8~19,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인간의 본능(선천적 심리 기제)은 사냥-채집 사회 또는 그 이전에 진화했다. 지난 1만 년 동안의 진화는 무시해도 좋을 때가 많다. 현대 사회는 온갖 측면에서 사냥-채집 사회와는 다르다. 따라서 진화한 환경과 살아가는 환경 사이에 일종의 간극이 생긴다. 이것은 진화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피임과 비만을 이런 간극으로 설명한다. 콘돔과 같은 효과적인 피임 수단이 없던 시절에 진화한 인간의 심리 기제는 콘돔이 있는 문화권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건강하고 젊은 부부가 수십 년 동안 아기를 전혀 낳지 않는 매우 부적응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지방 축적 기제는 먹을 것이 귀했고 생존을 위해서는 육체적으로 많이 움직여야 했던 시절에 진화했다. 먹을 것이 적어도 열량의 측면에서는 매우 풍부하고 육체적으로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직업들이 많이 있는 현대 산업국에서는 이런 지방 축적 기제가 비만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얼핏 생각해 보면 인간의 심리 기제가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사냥-채집 사회가 인간에게 더 큰 심리적 만족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럴 듯해 보인다. 진화한 환경과 현대 사회의 간극 때문에 부적응적 행동이 생기듯이 그런 간극 때문에 심리적 만족도 덜 얻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원시적 삶의 양식이 더 만족스럽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가끔 볼 수 있다.

 

만족, 행복, 쾌락 등을 정량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쨌든 나는 “원시적 삶이 현대적 삶보다 더 만족스럽다”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원시적 삶이 현대적 삶보다 덜 만족스러운 측면이 여러 가지 있다.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

 

첫째,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태어난 아기 중 절반 정도는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다. 자식이나 형제자매가 죽는 경험은 결코 만족스럽지가 않다.

 

둘째, 식욕은 중요한 욕구 중 하나다. 현대 사회에서는 굶주릴 위험이 거의 없으며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많다. 굶주리거나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셋째, 현대 사회는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 추위와 비바람에 떨면서 자는 것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넷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 선진 산업국 국민은 전쟁의 위협에서 상당히 벗어나서 살고 있다. 반면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이웃 부족민에게 살해당할 위협이 크다. 전쟁에서 가족이 죽는 것은 결코 만족스럽지가 않다.

 

다섯째, 인간은 호기심을 채울 때 상당한 만족감을 느낀다. 현대 사회는 온갖 호기심을 채울 기회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나 농경 사회에서는 이웃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그런 관계가 파괴되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근원적 욕구를 현대 사회가 채우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현대인들이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나? 아니다. 여전히 현대인들도 대다수는 가족과 함께 산다. 또한 온갖 친밀한 인간 관계를 맺고 산다. 다만 과거에는 지리적 근접성과 인간적 친밀성 사이에 높은 상관 관계가 있었던 반면 현대 산업국에서는 그런 상관 관계가 상당히 깨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눈다. 다만 이웃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과 그런 인간 관계를 맺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는 입시 스트레스나 해고 스트레스처럼 사냥-채집 사회에는 없었던 괴로움이 있긴 하다. 특히 한국처럼 복지 제도가 빈약하고 입시에 목숨 거는 문화권에서는 그런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해고에 따르는 고통이 자식이 죽을 때 느끼는 고통보다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 특유의 스트레스에 대한 긴 목록을 만들 수 있는 만큼이나 원시 사회 특유의 스트레스에 대한 긴 목록도 만들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 현대 사회와 원시 사회가 실제로 어떤 식의 기쁨과 고통을 주는지 정확히 알려준다면 과연 그들이 원시 사회를 택하려고 할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an atavistic longing after the life of the noble savage”가 감상에 젖은 일부 지식인이나 시인의 범위를 넘어설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