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는 문화가 본능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This gradual replacement of innate responses by learnt rules increasingly distinguished man from other animals, although the propensity to instinctive mass action remains one of several beastly characteristics that man has retained (Trotter, 1916).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6~17,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Whilst learnt rules, which the individual came to obey habitually and almost as unconsciously as inherited instincts, increasingly replaced the latter, we cannot precisely distinguish between these two determinants of conduct because they interact in complicated ways.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7,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For example, by the time culture began to displace some innate modes of behaviour, genetic evolution had probably also already endowed human individuals with a great variety of characteristics which were better adjusted to the many different environmental niches into which men had penetrated than those of any non-domesticated animal - and this was probably so even before growing division of labour within groups provided new chances of survival for special types. Among the most important of these innate characteristics which helped to displace other instincts was a great capacity for learning from one's fellows, especially by imitation.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8,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이 책의 초점을 고려해 볼 때, 본능을 대체하는 문화란 자본주의적 질서(소유권, 계약 등)이며, 대체되는 본능이란 사냥-채집 사회에는 어울리지만 자본주의에는 어울리지 않는 본능(자기 부족민에 대한 이타성, 타 부족민에 대한 적개심 등)이다. 그에 따르면 문화는 문화적 집단 선택의 결과이며 본능은 유전적 자연 선택의 결과이다.

 

 

 

그가 대체되는 것을 가리킬 때 무슨 표현을 썼는지 살펴보자. innate responses(선천적 반응), “inherited instincts(물려 받은 본능, 유전된 본능), “innate modes of behaviour(선천적 행동 양식)”, “instincts(본능)” 같은 표현을 썼다.

 

진화 심리학자 Tooby & Cosmides는 심리 기제(정보 처리, 넓은 의미의 인지, 계산 이론에서 말하는 계산)의 수준을 중시한다. 그리고 심리 기제의 수준과 행동의 수준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구분해 볼 때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선천적 심리 기제는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반면 그런 심리 기제가 만들어내는 행동 또는 그런 행동의 결과는 크게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악플과 콘돔의 사례로 설명해 보겠다.

 

논의의 편의상 인간에게 분노와 공격성을 조절하는 심리 기제들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가정하자(나는 그런 기제들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심리 기제들은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의미에서 본능은 사실상 바꿀 수 없다.

 

반면 그런 심리 기제들이 만들어내는 행동의 경우 원시 시대와는 매우 다를 수 있다. 과거에는 화가 나면 주먹으로 때리거나 음성 언어로 욕을 했다. 이것이 분노와 공격성과 관련된 심리 기제들이 만들어낸 행동이었다. 현대에도 주먹질이나 말로 하는 욕설과 같은 행동이 나타난다. 하지만 과거에는 전혀 없었던 행동도 나타난다.

 

인터넷에서 쓰는 악플(또는 공격적 글쓰기)은 원시 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인터넷도 없었다). 사냥-채집 사회 또는 그 이전에 “설계”된 심리 기제들이 그 때에는 없었던 행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본능도 바꿀 수 있다.

 

이 때 과거에 비해 바뀐 것은 선천적 심리 기제가 아니라 행동이다. 행동은 선천적 심리 기제가 바뀌지 않아도 바뀔 수 있다. 왜냐하면 똑 같은 심리 기제가 입력 값에 따라 다른 출력 값을 내놓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논의의 편의상 인간에게 성 행동을 조절하는 심리 기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가정하자. 그런 심리 기제는 성교라는 행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성교가 잦으면 보통 임신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옛날에는 그랬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부부끼리 정기적으로 성교를 해도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성교를 할 때마다 콘돔을 사용하는 부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선천적 심리 기제도 그대로이고, 성교라는 행동도 그대로다(체위 등은 과거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 맥락에서는 그런 것을 무시해도 된다). 그런데 행동의 결과가 다르다. 원시 시대에는 부부끼리 성교를 계속하면 불임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결국 임신을 하게 되지만 현대의 일부 부부는 임신을 할 능력이 있음에도 결코 임신을 하지 않는다.

 

 

 

나는 선천적 심리 기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두 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심리 기제를 망가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뇌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경우 손상된 뇌 때문에 심리 기제들이 망가진다. 뇌 수술을 통해 뇌의 일부를 잘라내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둘째, 시냅스를 일일이 다르게 연결하는 식의 초정밀 뇌수술을 통해 뇌의 다른 부분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선천적 심리 기제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에 준하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다.

 

요컨대, 다른 심리 기제들을 망가뜨리지 않고, 어떤 선천적 심리 기제를 다른 식으로 바꾸어서 잘 작동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문화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것은 선천적 심리 기제가 아니라 행동 또는 행동의 결과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본성(심리 기제의 수준에서 볼 때)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나를 생물학적 숙명론자로 부른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하이에크는 심리 기제의 수준과 행동의 수준과 행동의 결과의 수준을 구분하지 않고 “본능”과 같은 애매한 용어로 얼버무리고 있다. 나는 이런 애매함이 결국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