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는 생물계에서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This development is readily apparent in biology as well as in economics. Even within biology in the strict sense `evolutionary change in general tends towards a maximum economy in the use of resources' and `evolution thus "blindly" follows the route of maximum resources use' (Howard, 1982:83).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5,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위의 인용문에는 “최대(maximum)”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하이에크의 의도를 고려해 볼 때 “최적(optimum)”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 이야기를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선택에 의해 생물이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듯이 인간 사회도 그냥 내버려두면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이 때 인간 사회의 진화는 문화적 집단 선택에 의한 진화를 말하는 것 같다. 국가 개입은 그런 최적화 과정을 방해만 할 뿐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인 것 같다.

 

 

 

논의의 편의상 생물 진화의 결과로 완전한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맹점 같은 것도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로 하자.

 

자연 선택에서 최적화가 일어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유전자의 수준에서 보면 유전자 복제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개체의 수준에서 보면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무시하기로 하자.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개체 수준에서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포괄 적합도는 방계 자손(예컨대 동생의 자손)을 포함한 번식을 가리킨다. 더 잘 번식할수록 포괄 적합도에 도움이 된다. 물론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와 관련된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그것도 무시하기로 하자.

 

요컨대, 개체가 번식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는 쪽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개체 수준의 최적화가 집단 수준 또는 종 수준의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때가 많다는 점에 있다.

 

 

 

만약 새로 얻은 암컷 무리의 새끼들을 몽땅 죽일 수 있다면 수사자의 번식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암컷이 바로 임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 새끼들은 수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의 유전적 자식이기 때문에 죽여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수사자는 이런 경우에 새끼들을 몽땅 죽인다.

 

수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유아살해가 번식 최적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암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손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죽는 새끼들이 암사자의 유전적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그 암사자 무리를 차지했던 수사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막대한 손해다.

 

게다가 사자 집단이나 종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것은 손해다. 기껏 암컷이 오랜 기간 임신하고 젖을 먹여서 키운 새끼들을 죽여 버리는 것이 어떻게 종 수준에서 이득일 수 있단 말인가?

 

 

 

보통 한 종의 암컷과 수컷의 비율은 50 50에 가깝다. 여기에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어쨌든 개체의 수준에서 번식 최적화를 추구하다 보면 대체로 그런 비율이 된다. 일부일처제인 종의 경우에는 그런 비율이 종 수준에서도 최적화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침팬지처럼 수컷이 정자 말고는 자식을 위해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종에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더 적은 것이 최적화에 가깝다. 이런 종에서는 수컷의 수가 암컷의 수와 비슷할 정도로 많은 것은 낭비다.

 

 

 

침팬지 수컷들은 가능하면 이웃 무리의 수컷들을 죽인다. 어떤 때는 이웃 무리의 수컷을 절멸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집단의 수컷에게는 이득이다. 왜냐하면 패배하는 집단의 암컷들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배해서 죽는 수컷의 입장에서 보면 손해다. 또한 자기 종끼리 서로 죽이면 종 전체에는 손해가 된다.

 

 

 

공작이나 극락조처럼 수컷이 매우 화려한 종이 있다. 나는 핸디캡 원리가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것은 암컷을 더 많이 차지하는 것과 관련된 성 선택 때문인 것이 뻔하다. 그런 화려함이 암컷을 많이 차지한 수컷에게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종 전체에는 손해가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화려하면 포식자에게 잘 들키고 거추장스러운 꼬리 때문에 도망가기도 힘들다. 그러면 더 잘 잡혀먹는다. 대체로 참새처럼 수수한 종은 번성하고 극락조처럼 매우 화려한 종은 멸종하기 쉬운 것 같다.

 

 

 

생물계의 진화는 개체 수준에서 최적화에 가까운 적응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집단이나 종 수준에서 보면 엄청난 낭비로 이어질 때가 많다.

 

만약 하이에크의 방식대로 자연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자연발생적인 과정(자본주의적 경쟁과 교환)에 맡기면 개인 수준에서는 최적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사회 수준에서는 엄청난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