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통진당의 이정희 후보가 토론 과정에서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을 거론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다카키 마사오'

국민 상식이 되다시피한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으로 당시 이정희 통진당 후보의 발언에서 언급된 이름인데 막상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박정희의 두번째 일본식 이름의 사실 여부였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박정희의 두번째 일본식 이름으로 (아마도)박정희의 창씨개명이 대선의 쟁점으로 떠올려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소위 '물타기'로 등장한 것이고 이 논란에서 강준만의 역작인 '한국 근대사 산책' 부분이 거론되었다.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박정희의 두번째 일본식 이름에 대하여 오마이뉴스는 이렇게 운을 떼면서 보도를 하고 있다.


재일 언론인 문명자씨는 1999년 발간한 저서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기 마사오. 그 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꾼다”고 기술했다. 일본 백과 사전엔 박정희의 창씨명이 오카모토 미노루로 기록돼 있다.


박정희 친일 행각의 증거물 중 하나였던 '혈서 작성'에 대한 '여론공세'라는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었던 탓일까? 관련 기사는 내가 접한 기사들 중에 가장 상세하게 그리고 가장 객관적으로 박정희의 두번째 일본식 이름을 추적해갔다. 그리고 결론은 '썰이 유력 시 된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에 비하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는 훨씬 더 친일성향이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혈서'를 써서 보낸 바 있는데 이는 당시 그의 나이가 많아 입교가 어렵게 되자 입교를 목적으로 일종의 '충성맹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군관학교 예과를 수석으로 졸업해 일본 육사 유학 특전까지 얻은 그가 일본 냄새가 짙은 이름으로 다시 창씨개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오카모토 미노루'가 박정희의 두 번째 창씨개명이라는 주장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박정희 혈서 논란 당시와 박정희의 두번쨰 일본식 이름의 논란 당시는 '큰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그 것을 바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득세하게 된 '뉴라이트'라는 존재이다. 이 후진 극우꼴통 단체를 거론하는 것조차 귀찮지만 '역사의 팩트주의(물론, 진영주의에 쪄들은 집단이라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록은 제멋대로 왜곡편집하지만)'에 있어서는 이미 실력을 발휘한 바 있고 그런 그들의 존재를 알면서 '아무리' 오마이뉴스라도 '박정희 혈서 논란' 당시와 같이 역사를 제멋대로 조작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판단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이 박정희의 두번째 창씨개명에 대하여 '사실'로 기록한 책이 바로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의 산책'이며 논란과 함께 집중조명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의 산책'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그래서 '물타기' 겸 '흠집내기' 용도로 뜬금없이(?) 강준만의 저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이 논란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에는 강준만의 오기가 실수일까? 아니면 고의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팩트주의의 모범'을 보이는 강준만이기에 들었던 의문이었다. 나중에 전질을 통독해 보면 알겠지 왜냐하면, 한국 근대사에서 역사 해석에 있어 '진영주의에 치우친 사실 기록'의 이정표가 될만한 역사적 사실들이 몇 개 있으니까.


만일, 그 이정표를 강준만이 납득할만큼 잘 기록해놓았다면 '역시 강준만'이라고 감탄사를 다시 한번 내뱉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강준만의 '팩트주의'는 다소 빛이 바래 내게 다가올 것이다.



그나저나 언제 쯤 그 책을 읽게 될까? 뭐, 오래 묵혀둘수록 장맛이 좋다니까 천천히 읽어도 무방하겠지.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