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하이에크는 연대감이나 이타성 같은 본능을
억누르고 소유권이나 계약 같은 규칙(문화적 도덕)을 받아들여야
대규모 사회가 잘 굴러간다고 이야기한다.
It may be asked how restraints on
instinctual demands serve to coordinate the activities of larger numbers. As an
example, continued obedience to the command to treat all men as neighbours
would have prevented the growth of an extended order. For those now living
within the extended order gain from not
treating one another as neighbours, and by applying, in their interactions,
rules of the extended order – such as those of several property and contract -
instead of the rules of solidarity and altruism. An order in which everyone
treated his neighbour as himself would be one where comparatively few could be
fruitful
and multiply.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3쪽,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그는 소유권과 계약이 진화한 본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어린 아이들을 관찰해 보라. 나는 엄마가 아이에게 “이 장난감은 네 거니까 혼자만 가지고 놀아라”라고 가르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동생하고 같이 가지고 노는 거야”나 “친구하고 같이 가지고 노는 거야”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들은 혼자 가지고 놀려고 한다. 또한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때가 많다. 이것은 소유권 개념이 선천적임을 암시한다.
침팬지에게도 소유권 개념이 있는 것 같다. 사냥감은 그것을 잡은 침팬지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그 침팬지보다 서열이 높아도 고기를 빼앗지 않고 구걸을 한다.
현존하는 또는 최근까지 존재했던 사냥-채집 사회에서 사냥한 것은 보통 부족 구성원끼리 고루 나누지만 채집한 것은 보통 가족 내에서만 분배된다.
소유권 개념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사회가
상당히 자연스럽게 성립한 이유는 소유권 개념이 자연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 본성이기 때문인 듯하다. 인간
사회는 이런 면에서 원시 시대부터 개미 군락(colony)과는 매우 달랐다.
나는 사취자 적발(cheater detection) 모듈과 관련된 Cosmides &
Tooby의 연구에 불만이 꽤 있다.
Can
a general deontic logic capture the facts of human moral reasoning? How the
mind interprets social exchange rules and detects cheaters
Cosmides, L. & Tooby, J. (2008)
In W. Sinnott-Armstrong (Ed.),
Moral psychology. (pp. 53-119) Cambridge, MA: MIT Press.
http://www.cep.ucsb.edu/papers/deonticCT2008.pdf
하지만 계약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음을 그들의 연구가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The
Fatal Conceit』는 1988에 출간되었다. 당시에는
2013년만큼 진화 심리학이 발전하지도 않았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침팬지에 대한 Goodall의 책도 출간되었고, 사취자
적발 모듈을 다룬 Cosmides의 박사 학위 논문도 발표된 상태였다.
사냥-채집 사회에서 채집한 것이 가족 내에서만 분배된다는 점이 당시에도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상식이었던 것 같다.
『The Chimpanzees of Gombe:
Patterns of Behavior (1986)』
Jane Goodall
Deduction
or Darwinian Algorithms? An explanation of the "elusive" content
effect on the Wason selection task
Cosmides, L. (1985).
Doctoral dissertation, Harvard
University. University Microfilms #86-02206
설사 하이에크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이상한
소리를 했다 하더라도 이상한 소리는 이상한 소리일 뿐이다. 2013년에 하이에크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진화 심리학계의 2013년의 지식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하이에크는 원시 본능에 대해서 횡설수설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the command to treat all
men as neighbours”이라고 이야기하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Similarly, instinctual
aggressiveness towards outsiders must be curbed if identical abstract rules are
to apply to the relations of all men, and thus to reach across boundaries -
even the boundaries of states.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13쪽,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모든 사람을 이웃처럼 대한다면 어떻게 외부인
혐오(xenophobia)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An
order in which everyone treated his neighbour as himself”라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심지어 가족도 자기 자신처럼 대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친족 선택 이론을 고래해 볼 때 놀랄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 사이의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는 1인 반면 자식과 부모
사이의 근친도는 0.5이며 형제자매 사이의 근친도는 0.5(full
sibling) 또는 0.25(half sibling)이다. 즉 부모와 자식 사이 또는 형제자매 사이에도 유전자의 수준에서 볼 때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가 있다.
이덕하 / 다른 건 대체로 다 좋습니다만,
"소유권 개념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사회가 상당히 자연스럽게 성립", 이 말은 덕하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선뜻 믿기 힘들 정도네요.
쓰다가 깜박 하신거 아닌지. 역사적 무지에 가깝다는 면에서 보자면, 이건 (19세기 후반 및 20세기 초엽에나 겨우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그것도 당시에는 서구세계 중에서도 일부에 국한해, 할만한) 보통선거권을 기반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가 (인류사에서) 상당히 자연스럽게 성립했다고 하는 말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실과 동떨어짐.
그리고 이건 미리 앞서나가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대목은 진화심리학에 경도된 사람들이 혹시 (무의식중에) 조악한 형태의 인간본성환원론에 빠지는 경향이 좀 있지 않나, 이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minue622 /
저는 “상당히”라는 애매한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최근 몇 백 년 동안의 역사에 대해 제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봉건제의 온갖 관습이 자본주의적 경쟁과 교환을 가로막았으며 이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유럽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수 천 년 전 또는 그 전에도 자본주의적 질서가 세계 곳곳에서 존재했습니다. 사람들은 가격 협상을 통해 상품을 사고 팔았습니다. 이것은 그것을 가로막는 제도가 없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르네상스를 전후해서 도시에서 자본주의적 질서는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봉건제와 대판 싸운 것은 이미 도시의 자본주의적 질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였습니다.
고대 노예제 시대이든, 21세기 북조선이든, 르네상스의 도시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팔릴 만한 물건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 협상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며 수요 공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내버려 두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제 생각이 틀렸나요?
위와 같은 글을 놓고 보면 공산주의자로 자처하는 덕하님이 공산주의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교양을 쌓는데 게을리 했다는 생각을 하게되요.
1.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아무리 오래 거슬러 올라가도 16세기 말이나 17세기 초에, 그것도 지구상의 극히 일부 지역에서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생산양식이 아니라 경제로서의 자본주의는 아마 19세기 후반이나 되어야, 그것도 지구상의 극히 일부지역에서 자리잡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20세기 초까지도,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물품들이 절반 가까이가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생산된 것이었습니다.
2.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들이 모여살던 어디에나 있어왔던 것은 시장이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아닙니다. 시장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별은 마르크스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좌파 식자들의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더구나 그 시장은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시장경제로 자리잡기 이전에는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에 극히 부분적인 역할만을 담당했습니다.
3. 사회형태에 대해서는 - 시장 자체는 사회형태가 아니죠 - 자연적스럽다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봉건 권력자들과의 장구한 투쟁, 민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동원, 본원적 자본축적을 위한 극악무도한 인위적 폭력, 서구에 특유했던 우발적인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조건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자본주의의 성립이 가능했습니다.
4. 어떤 의미로는 자본주의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바로 그 의미에서 봉건주의나 다른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나 경제 역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심지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하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자연스럽다'는 말을 이런식으로 부풀리는 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칼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서구 일부 나라의 굉장히 희박한 확률의 특유한 조건 아래에서 우발적으로 출현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등장한 체제는 아니다' 의 논거로써 적당한 것은 아니겠죠.
모든 지배적이고 보편적이었던 제도들도 최초에는 희박한 확률의 특유한 조건 아래에서 우발적으로 등장한 것들이었고 (처음부터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써 짠~하고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한거니 당연한거죠), 따라서 그것이 '자연스럽다'를 부정하는 논거로 쓰이는건 곤란한 것 같다는 말씀이죠. 우발적인 등장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등장이었다면 보편적이고 지배적인 형태로 발전해가기 쉬울 것이고, 아니라면 소멸되기 쉽겠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생과 전면화가 역사발전의 필연적인(자연스런) 단계라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3의 인식, 즉 "자본주의는 서구에 특유했던 우발적인 조건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성립 가능했으므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은 일단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멀거나 관계없는 인식임이 분명하고,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있으며, 좌파 식자들의 상식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이에크에 대해서 사실상 전혀 몰랐었는데 이덕하님이 올리시는 글 내용만 봐서는 언젠가 에노텐님이 언급한 대로 "인간의 좋은 본성(이기심, 소유욕)은 살리고 나쁜 본성(평등 지향)은 억제해야 한다"는 요약이 근거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a. 돈을 벌기 위해 물건을 생산해서 판다.b. 물건의 가격은 순전히 흥정에 의해 결정된다.c. 사장이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하며 고용 여부와 임금은 순전히 흥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덕하 / 말을 돌리고 있군요. 시장제도,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활동의 융성, 이런 경제제도 및 사회현상 등이 과거 오래 전부터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있어 왔다는 것쯤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나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말하려면 애시당초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시장경제제도가 인류사의 어느 시점에 들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고 말했어야죠.
그리고 '순수'한 자본주의는 현실에서 없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역시 반론이 안 됩니다.
지금 여기서 '순수'한 자본주의가 현실에서 실제로 잘 작동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여기서 이 말이 왜 나왔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마지막으로 (사용가치가 아닌) 이윤추구를 위한 생산활동조직, 자유로운 사적 거래, 노동시장의 존재 등을 자본주의의 특질로 보셨는데, 이건 저도 동의합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생산과정의 합리적 조직)을 들 수 있겠죠.
그러나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도대체 어떤 고대도시에서 이런 특질을 가졌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맑스가 말하는, 이중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노동자 계급(집단)의 사회적 출현은 제가 아는 한 근대에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덕하님은 분명 "자본주의 사회"라고 말하셨지, 자본주의 사회를 배태할 맹아적 요소를 가진 사회가 근대 이전에 주욱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맹아적 요소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강조하는 건 여기서 동문서답.
둘째, "저 같은 유물론자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적(natural)입니다. 초자연적 힘을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자본주의는 자연적이다”라는 말은 무의미합니다." 덕하님 스스로가 말하듯이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자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기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덧) 고대 노예제 시대이든, 21세기 북조선이든, 르네상스의 도시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팔릴 만한 물건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 협상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며 수요 공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내버려 두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제 생각이 틀렸나요?
틀린 건 아니죠. 그런데 이게 "자본주의 사회"가 자연스럽게 나타났다는 주장을 어떻게 뒷받침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이런 현상들을 "규제"하고 제한하려는 일도 일어납니다.
최근 사례로, 미국에서 월가 점령하겠다고 시위한 사람들, 누가 억지로 등 떠밀어서 거기 간 게 아닙니다.
덕하님의 주장을 최대한 호의적(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도, 이걸 진화론에 빗대면,
어느 종 (인간이라고 해보죠)에서 색맹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1%에서 99%로 늘어난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진화발생), 이걸 두고 "색맹유전자가 전혀 없진 않았으니까 이건 진화라고 부를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님"이라고 우기는 것과 얼마간 닮은 겁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몰역사적이면서도 어불성설인 주장이겠죠.
지금 덕하님이 주장하려는게 이것과 나을 게 하나 없어요.
마지막으로, 제 반응이 좀 신경질적이라고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알만한 분이 이러시니까 답답해서 그러는 겁니다.
님이 실질적으로 논증의 근거로 든 것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의사로 입각해 자신이 (법적 혹은 법적 보장이 없더라도 사회적 관습 등에 따라) 소유하고 있는 물품들을 서로 교환하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나타났다는 결론을 지지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로 자본주의 사회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약도 보통 비약이 아닙니다. 되풀히 하지만, 몰역사적 무지에 찬 발언이지요.
이건 척추동물(물고기)가 수억년전에 발생했으므로 (마찬가지로 척추동물인) 호모사피엔스도 한 수억년 전부터 존재한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해 뭐가 나은지 모르겠음.
농담거리도 못돼요.
1. 생물학 등에서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분은 엄밀히 말해 "인간이 개입한 자연발생적"과 "그렇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 뿐입니다. 그 이상의 무슨 심오한 해석이 필요한 일이 전혀 아니에요. (한 마디로 말장난에 불과하단 말이죠.)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 체제는 '선천적 인간 본성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체제'로 정의한다. 이 때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상당한 기간의 역사 동안의 문화적 축적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라는 이덕하님의 독특한 정의를 따른다고 할 때 토마스 홉스가 그리는 "힘 센 놈이 힘 없는 놈을 착취하는 체제"와 아담 스미스가 그리는 "등가 교환 체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자연적이고 어느 쪽이 더 인위적 체제인가는 자명해 보이는군요... ^^
3. 물론 1천 년 이전의 사회에서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찾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9세기나 20세기에 흔히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사회도 순수한 형태와는 거리가 멀 때가 많았습니다.
=====
인간의 본성이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는 소리를 하시는 듯 한데 인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간 자본주의 본성론'의 완벽한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정말 기가 막힌 말이군요. 자신의 논지를 스스로 반박하는 내용을 이렇게 당당하게 올리다니....
하하하/
<<인간의 본성이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는 소리를 하시는 듯 한데 인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간 자본주의 본성론'의 완벽한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말씀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동성애 혐오' 현상이나 '근친상간 혐오' 현상 등은 모든 관찰가능한 인간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거라죠.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현상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순수한 이성애 사회나 근친 외 혼인 사회를 이루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그렇다해서 동성애 혐오나 근친상간 혐오의 인간 본성론이 반증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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