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회사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점거 농성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조가 처참히 패배하였다. 소리는 요란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으니 노조무용론이 다시 팽배하다.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했던 대기업 노조에 대한 질타도 빠지지 않는다.

노조에 대한 비난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진보는 노조의 역할 없이 이루어내야 한다는 생각들도 많다. 가능할까? 노조라는 경제주체의 조직화된 힘이 없이도 새로운 진보가 가능할지 나는 적잖이 의심스럽다. 노조가 아니면 다른 "제도", 자본이 아닌 경제 주체의 세력을 조직하는 제도가 필요한데, 새로운 제도에 대한 상상력은 빈곤하지 그지 없다.

미국의 노조조직률은 유럽에 비해 턱없이 작다. 지금 10% 언저리다. 한국과 비슷하다. 사기업의 남자만 따지면 8%까지 줄어들었다. 최고로 노조조직률이 높았을 때도 30%로 노조조직률이 60%에 달하는 북구유럽 국가와는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생산성이 증가하고, 복지가 늘어나고, 불평등이 줄어드는 시기는 노조가입률이 높았던 시기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노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보수의 왕언니, 밀턴 프리드만은 노조의 효과는 진입장벽을 구축하여 자기 밥그릇 지키기고 따라서 노조가 있는 곳에 불평등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증적 분석은 대부분 노조가 있는 곳에서 (1) 생산직과 사무직, 일반직원과 간부의 임금 격차가 작고, (2) 노조원이 동일한 임금을 받음으로써 노조원 내부의 임금 격차가 작고, (3) 노조가 늘어나는걸 두려워한 사용자가 비노조원의 임금도 높여줘서 비노조원의 불평등도 작았다. 여기서 노조의 가장 강력한 효과는 (3)이다. 노조 자신이 아닌 비노조에 끼치는 영향력이 바로 노조의 힘이다.

강력한 노조의 효과는 자신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직접적" 효과보다는 사회적으로 노동자에게 이 정도의 임금은 줘야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간접적" 효과가 더 클 때 나타난다. 그 덕분에 노조조직률이 30% 밖에 안되어도 노조가 주요 경제 주체가 된다. 이게 없으면 자본은 노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국가와 자본이 결합하여 노조의 영향력을 줄일려고 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노조가 있는 곳에서 비노조원도 이득을 보는걸 "spillover effect"라고 한다. 스필오버 효과가 커지면 개별회사나 산업 단위를 넘어 사회 전체의 "규범"을 결정하는데 노조가 분위기를 잡게된다. 미국에서 노조가 힘을 발휘했던 이유는 "생산성 협약"이라는 암묵적 합의 하에서 노조가 파업을 자제하고 대신 자본은 고용과 생산성에 따른 임금 인상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노조가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 계기는 루즈벨트 시절에 노사정 3자 협상 테이블에서 임금을 정하던 것에서 시작해서, 한국 전쟁 중에는 Wage Standardization Board (WSB)가 있었고, 케네디와 존슨 정부 시절에는 임금 기준표를 만들었었다. 닉슨 정부 시절에도 Pay Board가 있어서 여기서 노사정이 협의하여 임금 수준을 정하였다. 카터 정부 시절에도 Council on Wage and Price Stability(CWPS)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노사정의 협약은 강제력은 없었지만 사회 전반에 노사관계와 임금에 대한 강력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 전통을 깬 것이 바로 레이건이다.

나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개혁세력 집권 10년동안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렸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노조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그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지역을 넘어 세력 기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 노사정협의회라는 좋은 틀을 만들어 놓고, 이 틀을 확대발전시켜나가는 전략이 부족했다. 호남 지역과 진보적인 화이트칼라 외에 안정적인 지지세력이 없는 곤궁한 처지는 지난 10년간의 선택의 실패의 산물이다.

한국의 노조는 정치적이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너무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경제 투쟁에 매몰되어 충분히 정치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처럼 개별화된 노조가 망해가는 회사에서 일자리를 지키고자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항할 때, 그 결과가 어찌될지는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다시 미국 얘기로 돌아와서, 미국에서 Labor Revitalization이라는 명칭 하에 지역 단위로 노조를 다시 활성화시킬려는 움직임이 있다. 생산직 노동자가 아닌 서비스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조를 재건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여성, 소수인종을 중심으로 성과도 있다.

한국의 진보도 새로운 조직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노조는 여기서 배제되는게 아니라, 그 한 축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노조를 무력화한 후에 남는 건 합리적이고 온정적인 자본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노동운동의 고민은 파업을 통한 경제적 이득의 추구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를 통해 사회적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