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하여금 새누리당이나 야권, 혹은 보수와 진보를 선택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있겠다. 소득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 직업의 종류, 지역과 연령, 정치적 취향 등등. 그러나 그런 요인들을 모두 취합하면 최종적으로 이익과 손해로 환원될 수 있고, 그것들이 심리적으로는 만족(滿足)과 불만(不滿) 으로 변환된다 해도 큰 무리는 없는 것 같다. 즉 보수와 진보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개개인들 각자가 정치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느끼는 불만의 크기가 아닐까 싶다. 원래 변화와 진보는 불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까.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새누리당과 같은 보수정당을,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야권을 지지하는 현상은 쉽게 설명되기 어렵다. 통상적인 소득과 이념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이 낮아도 사회적 불만은 작을 수 있고, 소득이 높을지라도 불만은 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비교해 월 100만원의 소득이 예상되는 사람이 2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면, 그 사람의 주류 질서에 대한 선호도와 만족도는 높을 수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새누리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반면 월 소득이 1,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일지라도 잘못된 정치사회적 시스템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불만이 매우 클 수 있다. 영남의 서민들이 새누리당을, 호남의 부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현상 역시 이렇게 불만의 키워드로 접근하면 그들의 '합리적인 동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사회적 불만이 작다 해서 즉각적으로 새누리당을, 크다 해서 야권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느끼고 있는 사회적 불만이  크다 해도, 야권이 집권했을 때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새누리당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난 대선 때 50대들이 대거 야권 지지에서 이탈하여 박근혜를 지지했던 현상은 그런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새누리당은 왜 비교적 손쉽게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 같고, 야권은 지리멸렬 악전고투의 반복인가도 잘 설명된다. 주류 질서에 대한 반감이 작은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  현상 유지 전략만으로도 쉽게 포섭할 수 있지만, 반감이 큰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느끼고 있는 사회적 불만의 종류들이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단일한 정치적 요구로 집약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마도 야권이 새누리당에 비해서 늘 사분오열로 분열상태인 것도 그런 이유가 클 것이다. 그것이 야권진영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이다. 결국 야권의 숙제는, 각자 다르고 때로는 상충되기도 하는 국민들의 사회적 불만을 어떻게 하나의 정당틀안에 묶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불만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틀 안에 묶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이는 무시하고 공통적 요소 한가지만을 도출하는 쉬운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차이를 인정하고서 '불만의 연합'을 이루는 보다 고차원인 방법이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은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을 택했다. 야권지지자들이라면 모두가 동의할만한 '새누리당 집권 저지'라는 의제에만 집중한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새누리당 집권 저지'만으로는 야권 지지자들의 사회적불만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야권지지자들이란 결국 사회적 불만이 평균보다 큰 사람들일테고, 만약 그들의 불만이 '새누리당 집권 저지'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약한 것이라면, 애초에 그들은 야권지지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야권은 어떤 사람들의 불만은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우대하고, 어떤 사람들의 불만은 무시했다. 친노들의 불만은 우대받았고, 호남의 불만은 무시되었다. 정규직들의 불만은 우대받았고, 비정규직들의 불만은 무시당했다. 기본적으로 '불만의 연합체'가 아니었던 것이고, 불만의  중요성과 긴급함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가 궁금해진다. 그들이 느끼고 있을 불만의 크기와 성격은 어떤 것일까. 새정치라는 구호 속에 담겨 있는, 새누리당도 싫고 민주당도 싫고 그 놈이 그 놈들이라는 불만은 사실 과거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전매특허였다. 어쩌면 안철수 지지자들은 기존 정당들이 반영하지 못하고 외면해 온, 그래서 우리 사회에 가장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중도일 수 있을까? 어쩌면 중도는 중간이라는 말과 같은 성격의 의미가 아닐 수 있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우리 동네 편의점 알바 청년이 갖고 있을 불만의 크기가, 결코 중간 정도의 크기는 아닐 거 같다는 이야기이다.

부디 안철수와 안철수의 지지자들이 동상이몽으로 연결된 미스매치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정치적으로 비극이 예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호남간의 미스매치, 이명박과 영세 자영업자들간의 미스매치가 결국은 비극이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