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문제는 학교 폭력이었는데, 이게 (신)자유주의 논쟁으로까지 가버렸습니다. 차칸노르님께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주신 노고에 정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대처리즘 논쟁때보다 리버테리안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일단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발짝 더 확실히 물러서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아래에 학교 폭력에 대해서 쓴 원글 http://theacro.com/zbxe/free/778498 에 있는 요 부분을

"그나저나,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결국은 다 어른들 탓입니다. 약자들에 대한 멸시풍조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이 아이들에게까지 번져서 생긴 것이죠. 이게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비극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장기적인 해결책은 IMF 이후에 급속도로 무너진 사회적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아래와 같이 수정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결국은 다 어른들 탓입니다. 약자들에 대한 멸시풍조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이 아이들에게까지 번져서 생긴 것이죠. 이게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급하게 이식되면서 만들어진 부작용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장기적인 해결책은 IMF 이후에 급속도로 무너진 사회적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교육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칸노르님 글이 너무 원론적으로 가다보니깐 원래 문제와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더 쓰기가 망설여 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리버테리안 논쟁이 아니라, 학교 폭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니깐요. 하지만 일단 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에 몇마디 보태야겠습니다.

차칸노르님의 원문과 그 댓글을 읽고서 (원글은 http://theacro.com/zbxe/?mid=free&document_srl=778909)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유주의자가 생각하는 害의 합을 최소로 한다는 말은 제 생각에는 (최소한 경제학적으로) 선의 합을 최대로 한다는 것과 거의 동치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한정적인 자원하에서는 비용최소를 하나 이윤최대를 하나 결과는 똑같이 나오거든요. 마찬가지로 해의 합의 최소는 효용의 합의 최대와 동치이죠. 그런 의미에서 레드문님이 그 댓글에서 지적하신 말이 정확히 맞다고 봅니다.

이 리버테리안이라는 개념은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설계된 것이고, 자유주의에서도 여러가지 분파가 생기는 모습은 각각의 각론에 대한 약간씩의 변형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닫혀있는 계에서 - 혹은 "주어진" 재화를 - 서로 나눠가질 수 밖에 없는 경제학적인 상황으로 좁혀 보면 더더욱 공리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어보입니다.

이래놓고 보니깐, 밀튼 프리드만이 과연 리버테리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이제 이해가 갑니다. 제가 전에 썼던 글에 있는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플레너 경제학의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고 보이네요. (원글은 http://theacro.com/zbxe/refer/774477) 그리고, 존 롤스와 경제학자들인 애로우(K. Arrow)나 하사니(J. Harsanyi)가 벌인  정의론(Theory of Justice)에 대한 논쟁이 어떤 측면에서 이루어졌는지도 더 뚜렷이 보입니다.

다시 거꾸로 말하자면 이 자유주의라는 것의 한계도 결국 공리주의라는 것이지요. (전에는 단지 현대 주류경제학의 한계인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리 해의 합을 최소화한다고 하고, 그 방법에 대해서 각론이 다르다고 주장해도 결국 최대다수의최대행복(또는 효용)에 갇혀있는 셈입니다.

원래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학교폭력.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자유주의(개인주의) 교육을 잘 시킨다면 학교폭력이 없어질까요. 저는 만약에 제가 이해한 바 - 자유주의의 기본 베이스는 공리주의다 - 가 맞다면, 이 자유주의 교육은 별로 신통치 않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아마 폭력 자체의 추방에는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리적인 부분은 확연하게 제어할 수 있을테니깐요. 하지만, 그에 거의 준하는 (정신적인 부분인) 왕따나 집단 멸시, 또는 그것에 따르는 학생 자살 등등의 문제들은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게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공리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학적인 결과는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보장체계가 없다면 결국 장기적으로 immiseration 이거든요. (제가 전에 쓴 글 http://theacro.com/zbxe/refer/774477 의 아래 인문계님의 질문에 제가 쓴 댓글에 들어있는 글에 보면 immiseration의 말 뜻과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설명이 있습니다.) 예를 아래와 같이 들면 비슷해질까요.

여기서 피노키오님의 지적이 완전 타당해 보이는데, 어디까지가 해(害)이고 어디까지가 해(害) 가 아니냐에 대한 경계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지는 지점에 가게 되면 공리주의 또는 자유주의 또는 개인주의는 완전히 손을 들고 맙니다. 왕따라는 것을 생각해보죠. 어느날 학생 A가 학생 X와 안놀래라고 선언을 합니다. 이건 학생 A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학생 B가 똑같은 선언을 합니다. 그 다음날은 학생 C가 그 다음 다음날은 학생 D가.... 그리고 몇달이 흐른 어느날 드디어 학생 X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합니다만, 여기서 주지할 것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학생 X의 자살에 대한 책임은 단지 학생 X에게만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개개인에게 한정적인 재화 - 학생들을 예를 들면, 학업을 제외한 노는 시간 - 을 어떤 식으로 분배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학생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이 리버테리안 사회는 학생 x를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또는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보장은 절대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은 안드시는지요.


정리를 살짝 해봅니다.

물리적인 학교 폭력의 횡횡은 신자유주의 탓은 절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유주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면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좀 더 나아가서, 학생들이 선생들이 우습게 알기 시작하고 전통적인 권위가 헤체되면서 생긴 교권의 붕괴, 무한 경쟁이 당연시 되면서 생기는 극한 이기주의, 왕따, 집단 따돌림, 멸시....등등의 더더욱 중요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교육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시켜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제 생각에는 시키면 시킬수록 더 나빠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학교폭력은 솔직히 쉽게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냥 흐강님 말씀처럼 학교폭력을 일삼는 애들 퇴학 시켜버리면 되니깐요. 그러니깐, 좀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외의 것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후자가 해결되면 학교폭력도 해결될 것이라고 보니깐 이게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도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