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신자유주의와 사회적가치의 붕괴가 학교폭력의 원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자유와 개인의 가치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겁니다. - 자유주의가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원래 그런 것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보며 단지 개인적 가치의 합으로 본다는 것은 전에도 말씀드렸기 때문에 생략하고... -
집단 내에서 개인에게 강요나 해악을 끼치는 매카니즘을 살펴보면 대체로 비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개인들이 집단에 편입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자유주의의 개념이 희박한 동양적인 사회에서는 비자발적인 집단에서는 정글과 같은 위계질서가 발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글과 같은 위계질서에서 개인적 가치가 억압되고 자유가 억압되기 때문에 폭력과 왕따가 발생합니다.
집단 내에서 모든 개인이 완전히 평등하면 폭력이나 왕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집단 내에서 개인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에서 개인간에 서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가치가 개입되지 않으면 그 차이와 서열에서 사회주의적 가치와 집단의 가치에 의해 폭력이 개인에 대해 발생하게 됩니다.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집단에 편입되는 경우, 예를 들어 학원이나 대학교의 경우 약자에 대한 학교폭력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들어갔으며 개인주의, 자유라는 가치가 그 구성원 개인들에게 인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초중고등 학교를 대학교처럼 자유와 개인의 자율로 선택하게 할 수는 없고... 완전히 모두를 평등하게 할 수도 없으니 학교폭력을 막는 방법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학교 운영시스템도 그렇게 보완돼야 하고요.
지난 주말 ebs에서 'in a better world'라는 영화를 봤어요. 폭력에 관한 이야긴데 아프리카에서 의사로 일하는 남자의 아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이야기가 모티브예요.
애들을 가르칠 때나 타인을 대할 때 모두가 이성적으로 서로를 소중하게 대하면 좋은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죠.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 때문이거나 삶의 방식이거나 여러 다른 이유들로요.
영화에서는 그런 까닭으로 사고가 일어나는데 자식 키우는 부모로 마음 졸이면서 봤네요.
아무튼 사람이 이성이 있으면서도 짐승과 같은 성향이 있어서, 또는 자기 책임을 남의 약점에 기대어 떠넘기기도 하는 존재라 어느 정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고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확실한 자기 편, 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결국 우리가 옳다고 가르치는 가치들이 서로를 지키게 되는 것 같구요.
http://www.youtube.com/watch?v=riCzujxV6cw&feature=youtube_gdata_player
그러니까 폭력이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 개념이 충분한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 그것이 보편적이고 거대한 가치(신자유주의나 개인주의)정립의 부재에서 온다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다층적인(사회심리적이거나 개인의 특수상황에 따른다거나 하는) 삶의 양상에서 오는 것 같다는 거예요.
비행소년님 등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오해한 거죠. 급우의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자기 마음대로 부정해도 (폭행해도) 된다는 이기주의 혹은 자기중심주의를 개인주의, 자유주의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개념이 충분한 유럽 선진국에서도 학교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사회심리적 측면이나 개인의 어떤 특수성에 기인해서 학교 폭력의 매커니즘을 고찰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저는 사회 구성원의 이념과 규범적 가치 측면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폭력을 억제하느냐 아니면 조장하느냐의 문제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폭력을 억제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 거죠.
자유주의는 보수주의나 사회주의보다 폭력을 더 잘 억제할 수 있는 이념입니다. 다만 자유주의를 모르는 보수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자꾸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로 바꿔놓고 허수아비 공격을 할 뿐이죠.
비행소년님 글을 다시봤는데 역시 공감이 되었구요, 글 중에 굵은 글씨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를 쓰셨네요. 아무튼 차칸노르님이 그 글에 대해 반론을 좀 더 촘촘하게 짜셔야 무언가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모르는 사이 두 분 사이에 끼어들게 되었는데요, 제가 난감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또 다른 사회 풍조, 예를 들면 전통적 권위 붕괴, 선생님도, 지나가는 어른도 우스워 보이는 그런 분위기와 만나서 학생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구요,,,
또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나 사회주의보다 폭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차칸노르님 의견에 동의 하지만 자유주의가 본래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엉성한 그물이라서...요. 이 주제가 사상대결 같이 되가는데 두 분의 의견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제가 저 밑에서 "신자유주의의 만연"이 사회가치 붕괴를 만들어왔고, 이게 약자를 멸시하는 풍토를 만들었고, 따라서 지금의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전보다 많이 노출또는 관련되게 되었던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제 어디의 주장에서 제가 개인주의/자유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했는지는 모르겠네요.
물론 제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는데, 그 단어만 꼭 짚어서 바라보면 제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전체 맥락상 여기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란 정말로 리버테리안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읽는 독자들이 모를 것 같지는 않네요.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들어온 신자유주의는 제대로 들어온 것이 아니어서, 신자유주의를 쓰는 사람들이 제멋데로 (사회, 경제적인, 더 나아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신체적으로) 약자를 마구 대해도 된다는 식으로 왜곡해 버렸다. 이게 맞는 소리겠죠?
하여간, 여기까지는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니깐 각설하고, 다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서 본다면, 착한노르님 주장은 - 그리고 저에게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학교에서 제대로된 신자유주의를 가르친다면, 또는 제대로된 자유주의+개인주의를 가르친다면 학교폭력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한줄로 사람을 뒤집어 버리게 하시네요. ^^ 차카노르님께서 아주 강하게 나오시길래 제가 차카노르님 입장에 서서 한번 글을 써봤습니다.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가 안들어와서 그렇다"라는 식으로요.
마지막에 그렇다면 교육을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를 하면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이 되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고, 차카노르님께서는 아마도 그것에 긍정하실 것 같고, 좀 더 들어보고나서 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차칸노르님 주장이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현재 입장으로는 학생들에게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가르친다고 해서 이게 해결이 되는 데 "크게" 도움이 될까는 모르겠습니다.
리버태리언(자유주의자)이라는 용어는 크게 세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광의의 리버태리언, 협의의 리버태리언, 최협의의 리버태리언, 광의의 리버태리언은 한겨레신문의 정치경제 스탠스 조사 혹은 '폴리티컬 콤파스'라는 사이트의 정치경제 스탠스 조사에서 보실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권위주의, 오쏘리토리언에 대척적인 개념으로 넓은 의미에서 쓰이는 리버태리언입니다.
자유주의는 계약론적 자유주의, 비계약론적 자유주의 보수적(의지론적)자유주의, 진보적(평등론적) 자유주의 등이 있는데 이 모두를 통틀어서 협의의 리버태리언으로 부릅니다.
최협의의 리버태리언은 신자유주의자만을 뜻하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개념과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학문적 개념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수정자본주의론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추구하는 사회국가주의)에 따른 뉴 리버럴리즘을 신자유주의라고 하는데 이것은 비계약론적 자유주의와 평등론적 자유주의의 결합입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개념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적극적인 평등의 추구, 소수자와 약자의 기본권적 인권 보장을 주장하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사민주의의 형태를 띱니다. 학문적인 개념으로서의 신자유주의, 즉 '비계약론적 평등론적 자유주의'는 출발은 사민주의와 다르지만 결과는 사민주의와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신자유주의는 비계약론적 자유주의와 의지론적 자유주의의 결합인 하이에크주의자를 가지고 신자유주의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조금 더 넓게, 계약론적 자유즤와 의지론적 자유주의의 결합인 노직주의자까지도 신자유주의자로 보는 것 같습니다.
어쨋든 학문적인 개념으로서 최협의의 신자유주의 (사민주의와 똑같은 신자유주의) 이든 일반인이 이해하는 개념으로서 최협의의 신자유주의이든 모두 자유주의의 일분파이고 그것들은 모두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으로서의, 자유주의의 최고원칙으로서 '해의 원칙'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의 기본적 인권과 타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개인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라는... 이렇게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최고의 가치가 '해의 원칙', 즉 폭력의 배척(상대가 폭력을 쓰는 경우에만 방어적 차원에서의 폭력의 인정)인데 어떻게 학교폭력의 원인에 (신)자유주의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까?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죠.
그래서 신자유주의의 만연이 사회가치 붕괴를 만들었고 약자를 멸시하는 풍토를 만들었고 학교폭력에 전보다 더 많이 노출, 관련됐다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무관한 논리 전개이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당한 비판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의도하지 않은 사회 현상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입맛에 따라 유리한 부분만 받아들인 집단에 의해서 신자유주의가 오용되기도 하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부당하게 공격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자유주의는 공동체주의자들 내지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제가 누차 말했듯이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는 개인적 가치의 총합일 뿐이라고 봅니다. 자유주의의 이러한 사회에 대한 관념을 '개체론적 사회관'이라고 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의 개체론적 사회관은 사회를 개인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개인들은 더 나은 개인을 위해서 협동을 하는 것이지 공동체를 위해서 협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개체론적 사회관'은 사회의 공공선, 혹은 공동체적 측면들을 포섭할 수 없게 된다는 비판이 가해집니다.
자유주의자는 개인에 대한 관습과 전통 등의 사회적 영향력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가운데 개인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비계약론적 의지론적 자유주의' 즉 하이에크 주의 조차도 관습과 전통을 강조합니다. 사회적 관습과 전통을 강조하지 않으면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론'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을 보편적으로 일정한 합리적 감성적 능력을 가진 평등한 존재인 동시에 그 능력이 표출되는 방식에 있어서 무한한 편차를 보이는 개성을 가지는 존재라고 봅니다. 이것을 '이중적 인간관'이라고 합니다. 이 자유주의의 인간관인 '이중적 인간관'이 자유주의의 사회관인 '개체론적 사회관'의 출발입니다.
사회주의자 혹은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의 개체론적 사회관-이중적 인간관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자의 사회관과 인간관을 무너뜨리려 하면 할수록 사회주의자들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가 개인에게 아무리 영향력을 미쳐도 개인들 사이에 그 효과의 발현은 개인들마다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가 어떤 가치를 주입하고자 하면 할수록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하는 우리 사는 세상에서는 특정한 대대적(對待的) 가치는 억압되기 때문에 (예를 들면 노정태씨가 말했듯이 어떤 사회가 '출산과 성장'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강력히 추구하면 대대의 위치에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억압되는 것처럼 善을 권하는 파워는 동시에 害를 권하는 파워가 됩니다. 자유주의자들이 '해의 원칙'을 '선의 원칙'보다 앞세우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의 이중적인간관에 기초한 개체론적 사회관은 그 존재의 중요성에 관해서 토대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이중적 인간관'과 '개체론적사회관'은 현대에 들어서 모든 국가의 법 제도의 기본사상이 되어있는 라드부르흐의 상대주의적 가치관 사상 및 톨레란쯔 사상까지 이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상대주의적, 다원주의적 가치가 널리 확산됨에 따라서 이중적 인간관과 개체론적 사회관은 더욱 힘을 받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의 개체론적 사회관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보다 구체적인 비판은 바로 시장경제질서와 관련해서 제기되는데, 자유주의자들이 비인격적인 시장관계를 강조하면서 공동체....
잠이 와서 더 이상 못쓰겠습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님의 글에서 참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동감합니다.
제가 10여년전에 사석에서(아마 선배 아버님의 문상)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하려면 개인주의가 발달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차칸노르님 같이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것도 아니었고 체계적인 이론을 갖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차카노르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보면 제 머리가 다시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잠을 깨시고 시간이 나시면 조금 더 진도를 나가 주시면 안될까요? ^^
자유의지가 부정될 가능성도 있고 설사 자유의지가 존재하더라도 인간은 환경(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물적 각종 환경)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고 그 가운데서 자유의지를 행사하는데 자유주의 하나로 모든걸 제단할 수 있다는 건 환경의 영향을 부정하는 거랑 같죠.
저는 순수 자유주의 또는 순혈식 자유주의가 가지는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환경에 노출되고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개체론적 고립인간으로 만들어놓고 그걸 전체로 모든 썰을 풀고 그 결론도 개체론적 고립인간의 절대적 전지적 자유의지를 전제로 썰을 푼다면 그 결과는 에러가 뜬다는데 100원 겁니다.
순혈식 자유주의는 바로 그런 점에서 맹정이 있죠.
그리고 개체의 이익의 합이 사회의 이익이라는 주장은 정확히 공리주의적 사고관이고 이 사고관에서는 1인이 전부를 소유하고 나머지가 0을 소유해도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만 아시길 바래요.
롤스의 정의론 자체가 이런 공리주의적 세계관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구요. (공리주의란 결국 자유주의 세계관에서 공공선을 그 나름대로 정의한 것인데 한마디로 개인의 이익의 총합이 전체 사회의 이익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으로 이건희가 부자가 되면 그것이 나에게도 이로운 것이다라는 것이죠.)
자유의지 나아가 이걸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철학은 그 출발이 결국 "근대철학"이고 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 그리고 계약의 자유를 통해 합의의 중요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18 19세기의 경제상황처럼 비인간화의 주범이 되기도 했습니다.(인간에게 넌 합리적이고 너만의 자유에 기한 결정을 할 수 있으니 계약의 자유를 가지라고 해도 실제 돈이 없는 한 빵을 살 수 없음)
이에 대한 반항으로 자연과학에 기반한 결정론적 사고가 조금씩 세력을 넓히게 되죠. 이런 일련의 흐름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아에 부정하다보니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자가 등장하는 싹을 키우기도 합니다. 이것은 형법과 형사정책의 그 뜨거운 논쟁을 추적하다 보면 잘 나옵니다.
아무튼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는 몰락하지만 그간의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대립은 법학(헌법학, 형법학)과 경제학등에서도 각종 변화를 가져옵니다. 즉 결정론에서 주장하는 것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자유의지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 독특한 체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수정자본주의, 신구파간의 절충은 여기서 나온 것이죠. 나아가 히틀러에 대한 교훈으로 인간이 존엄성등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존엄성 조항이 언제 들어왔는지 찾아보시면 알것입니다. 나아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대대적 제한이 가해지고 나아가 재산권의 선천적 권리성도 부정됩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으로 볼때 자유주의가 필요하기 하지만 그것만이 절대적이라고 보는 것은 과학적인 관점을 통해 볼때도 거의 구라에 가깝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선택은 각종 환경에 의해 상당부분 영향(또는 일부에서는 결정)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의지와 자유주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이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고 그 결과 자유주의 철학 자체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차칸노르/
(몇몇 사회주의 및 종교 국가들을 제외하고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현대적 사회를 구성하는, 또는 그래야하는 기본 원리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비행소년님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지목하셨을 때 살짝 거부감이 든 것도 그래서였구요. 참고로 아크로 역시 차칸노르님이 설파하신 자유주의/개인주의의 기본 원리 (害의 원리) 를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이트이죠. 따라서 차칸노르님의 논지 자체에는 대부분 쉽게 동의하실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자유주의 / 개인주의에 제출되는 문제는 이런거겠죠.
1. 수없이 많은 종류의 害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집중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
2. 어떤 특정한 행위나 현상이 과연 害인가 아닌가를 규명할 수 있는가라는 정의(定義)의 문제
이 지점에서 결국은 가치관과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수 밖에 없죠. 모든 사람들이 명백하게 害 라고 수긍할만한 것이 있고 (예를 들어 범죄), 어떤 사람에게는 명백하게 害 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아닌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고 모호한 상태인 것 (예를 들어 택시기사들의 파업) 이 존재하니까요. 결국 그럴 때는 힘의논리 집단의논리 다수의논리가 끼어들 수 밖에 없고, 그랬을 때 과연 자유주의 / 개인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달성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는거죠. 더불어 효율과 害의 원리가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쪽 편을 들 것인가에 대해서도 차칸노르님의 입장이 아직은 불충분하다고 느껴지구요.
차칸노르님의 주장은 전형적인 교과서적인 주장이군요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은 아시다시피 좋은 결과를 말하고 있지요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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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클다운효과 말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
개인주의 자유주의 가치관의 확립
당근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유주의나 개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미국의 교육이 어떤지 그리고 그 사회의 청소년들이 어떤지 잘 아실겁니다.
즉 개인주의든 자유주의든 책임문제가 핵심인데 통상의 인간은 권리는 누리고 책임은 안질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인권보장이 강화되고나서 우리나라 사회 그리고 특히 교도소 같은 특별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곳에서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있고 처음에는 인권위 진정서가 수천통 날아와 인권이 직원이 이거 뭐 있구나 라고 신나게 교도관을 닥달했는데
이제는 진정서가 날아와도 출장도 잘 안온다는데요
우리나라 현실에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학교 폭력이 심해졌다는 비행소년님의 주장은 말이 됩니다.
교도소에서 정원 4명인 방에 일곱명을 넣어두면 싸움이 배로 늘어납니다
먹을 것이 적은 곳에 먹을 사람이 많을 경우 자유주의 개인주의 이론대로 하자면 n분의 1만 먹어야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요?
짐승들이고 사람이고 먹이를 두고 경쟁이 심해지면 신경이 날카롭고 긴장이 심하고 관용성이 부족해 집니다
간단하게 정리해고를 앞둔 직장 사무실의 풍경을 생각하면 될텐데 우리 사회가 늘 이런 부담을 안고 살고 있으며 아이들조차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어느분이 아래 제 주장에 과거에도 입시는 있었고 그러던데 지금은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입시경쟁이 어느정도인지 아십니까
고등학교 1학년부터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 나오라는 곳이 태반이고
어머니들의 사교육은 또 어떻습니까?
문제는 그래봤자 스카이 갈 애들은 정해졌고 제 자녀 경험을 봐도 고등학교 입학때 성적이 졸업때 성적까지 서열이 그대로 유지되더군요
즉 제로섬 게임이지요
그걸 아는 아이들은 의미없는 노력 그나마 가만 있으면 뒤쳐지는 압박감속에서 살고있지요
게다가 우리나라 이혼가정 아이들을 돌볼수 없는 가정이 얼마인지 아시는지요
강남의 귤이 강북에 오면 탱자가 된다는 설원의 고사처럼 우리나라 교육정책이나 경제정책이 어떻게 현실에서 왜곡되는가를 잘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많은 분들이 자유주의에 대해서 오해하시고 또 저에 대해서도 오해하시는데 제가 자유주의를 만능이라고 주장하고 자유주의가 진리라고 주장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유주의를 만능이고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다만 이제까지 전부, 여러 아크로논객분들(광의의 의미에서 보면 아크로 논객의 99%가 자유주의자입니다)이 자유주의를 오해하시거나 혹은 자유주의를 아예 부정하시니까 그 때마다 설명과 반론을 드렸을 뿐입니다.
제가 여기 아크로에서도 한 두번 정도, 스켑에서도 한 번정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자유주의자이지만 우리 나라의 정치판의 구조가 사회주의 좌파가 국회 의석의 50%정도를 차지하기를 바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에 힘을 보태겠다고. 진담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나중에 시간이 좀 더 나면 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ps: 많은 분들이 논의의 층위에 대해서 오해하시는데요, 저는 원론의 차원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주의 이 3자 가운데 어느 쪽이 폭력을 막는데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사상인가라는... (신)자유주의에 학교폭력의 원인을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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