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새정치'하면 자연스럽게 안철수를 떠올리게 만든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 하다. 그러나 막상 안철수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새정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총론적 설명을 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다분히 모호한 선동적 구호에 그친 감이 많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다음의 기사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 거리가 있는 기사인 듯 하다..

'안철수 새정치는 지역 아닌 계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6&aid=0002147454&viewType=pc

위 기사를 근거로, 몇가지를 짚어보겠다.

1.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인가?

시장에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건 (약간의 시간과 돈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성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성공하면 시장을 지배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쓰레기가 된다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이것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새정치는 '기존에 없던 방식의 정치' 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이라해서 무조건 옳거나 마구잡이로 시도해도 무방한 것은 결코 아니다. 기존의 방식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고, 교체 비용보다 효과가 더 커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자신이 들고 나온 새정치라는 놈에 대하여 책임있는 자세로 접근하였는지, 그것이 과연 '의미있는 새정치'가 맞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만약 안철수가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할 과제이자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이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면, 조용히 기존 정당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구르는게 안철수 본인에게도 좋고, 국리민복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2. '지역 아닌 계층'은 새로운가?

'지역 아닌 계층' 이라는 개념 자체는 기존 진보정당들이 줄곧 주장해오던 것으로서 새로운 정치관은 결코 아니다. 또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오랜 구호에서도 보듯이 거대양당들에서도 낯선 개념은 아니었다. 따라서 안철수가 들고 나온 '지역 아닌 계층'이라는 것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기위해 적진에 쳐들어가 땅따먹기를 하는' 것을 정치의 최우선과제이자 능사로 여기는 친노식 정치의 안티 테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막상 새정치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민망하고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지역 아닌 계층'의 개념은 기존 진보정당들의 것을 차용하되,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인 것은 맞다. 그러나 안철수가 기존 진보정당들이 해오던 방식과 어떻게 차별화하겠다는 것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역시 안철수가 능동적으로 제시해야하는 과제일 것이다.

3. '지역 아닌 계층'은 과연 올바른가?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지역대립구도와 세대갈등구조의 밑바닥에는 계층(계급) 문제가 깔려있고, 그것이 궁극적 원인이자 본질이라는 점에는 매우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곧바로 "따라서 우리는 지역보다 계층문제 해결에 더 집중해야한다"는 말이 올바른 주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말은 결국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배고픔이란 '혈액에 포함된 영양분이 부족하여 공복감을 느끼는 것'이 궁극적 원인이자 본질일 것이다. 그렇다해서 "따라서 우리는 짜장면을 먹기보다는 혈액에 영양분을 투여하는데 더 집중해야한다"는 말이 과연 올바른 주장이 되는 것일까?

겉모습(현상)에 속지 않기 위해 본질적 측면에 더 천착해야 한다는 건 늘 권장해야할 자세가 맞다. 그러나 현상과 본질을 기계적으로 분리하고서 본질우선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올바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배가 고프다해서 아무거나 막 줏어먹는 것이지, 짜장면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을 뜯어 말리는게 아니다.  

친노들처럼 계층문제라는 본질적 측면을 도외시하고서 지역구도라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땅따먹기에나 열중하는 것은 지양해야할 자세가 맞지만, 그 반대로 현상을 무시하고서 본질에만 접근하는 것 역시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현상과 본질은 언제나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하며, 별개의 것처럼 분리해서 취급하는건 자칫 친노들과 진보정당들의 실패를 재반복하는 것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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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언젠가 안철수현상이나 '새정치에 대한 기대'의 바탕에는 사민주의적 요구가 깔려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민주의가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요구의 분출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민주의적 요구의 해소가 반드시 정형화된 사민주의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점에서 안철수가 계층문제에 기존의 진보정당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겠다는 태도 자체는 의미심장해보이고 환영할 만 하다.

그러나 성공할 확률은 아직은 매우 낮아보인다. 지역문제와 계층문제를 서로 상충하고 대립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부터가 뭔가 초장부터 삑사리가 난 것 같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어쨌든 안철수는 한국 정치의 미개척지에 들어서는 것처럼 보이고, 성공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