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메이, 이 여자 큰 일 내겠어요."

차에 오르면서 이진이 아직 화가 덜 풀린 얼굴로 말했다.

"만달라 짜리 밍크코트를 사겠다고 스무벌도 더 되는 옷을 입어보느라고 시간을 끌고 있지 뭐에요. 어쩐지 밍크 옷 가게에 갔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죠."

"그래, 밍크를 샀습니까?"

 차 뒷좌석에 앉아있는 슈메이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이진이 펄쩍 뛰었다.

"만약 샀다면 저하곤 끝이에요. 그렇게 철없는 여자하고 저는 같이 일 못해요."

슈메이가 언니 언니 하면서 이진을 따르고 이진은 그녀가 모스크바에서 업소를 차리고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기로 서로 언약이 되

어 있었다. 언니의 핀잔을 듣고 슈메이는 혼자 빙긋이 웃었다. 이 중국 여인의 천진한  표정에는 상대의 경계심을 해체해버리는 마

력 같은 것이 있었다.

"차오, 툴수카야로 가요. 툴수카야 지하철 역 부근이라고 하셨죠?"

나는 이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슈메이 때문에 점심도 못 먹었네. 거기 가면 식사할 데가 있을까요?"

"좋은 곳이 있어요, 내가 안내할게요."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차가 중국시장 주차구역을 벗어나 큰 길로 나왔다..

 

 독일어 교사 출신이라는 그 여성 종업원은 아직 그 식당에 있을까?  툴수카야를 다시 방문하면 맛있는 연어 스테이크를 제공하는

그 지하식당을 틀림없이 찾으리라고 늘 생각했었다. 그 식당은 내게 아파트를 빌려준 바이올린 전공의 음악원생 안내로 알게 되

었다. 그가 여름 휴가를 보내려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나는 그 학생에게 간단한 작별의 회식을 제안했다. 아파트를 헐값으로

빌려줬고 동네 지리에 관해 이것저것 꼼꼼하게 가르쳐준 친절에 대한 보답이었다. 식당은 숙소에서 도보로 불과 3~4 분 거리에

있었다.

"이 일대 서민 아파트 주민들이 고객인데 음식이 깔끔하고 값도 크게 부담되는 곳이 아닙니다. 앞으로 자주 들르세요."

식당에서 유창한 러시아말로 주문을 끝낸 그 학생이 내게 말했다. 그 식당의 으뜸 요리라는 연어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과연 그

맛이 어느 일류 호텔 식당 못하지 않게 훌륭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는 그 학생의 조언을 실행하지 못했다. 언어 때문이었다. 삼개월 동안 나는 몇차례나 그 지하식당으로 찾아

갔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언제나 몸이 굳어버린다. 나는 연어스테이크의 러시아 이름을 적어두었는데 그것

마져 잃어버렸다. 손짓발짓으로 음식 이름을 설명하는 나의 우스꽝스런 행동은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우슴꺼리가 될거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언제나 지하로 가는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그러나 딱 한차례 용기를 내어 그 식당에 들어갔

다. 내일이면 서울로 떠나는 날이다. 망신을 당해도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손님 몇이 띠엄띠엄 앉아있다. 중년 여성이 다가와

상냥한 말투로 주문을 요청했다. 나는 얼덜결에 '피쉬, 피쉬' 라고 말했다. 그녀는 영어를 이해했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

고 묻자, 그녀는 검지와 엄지 손가락으로 '아주 조금'이란 표시를 보여줬다. 그런 뒤 자기는 소비에트 시기에 독일어 교사로 근

무해서 독일어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에트 시기에 주요 외국어이던 독일어는 연방 해체 이후 교육과정에서 폐지

되었다. 그래서 파출부나 식당 종업원 가운데 아주 가끔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독일어 교사 출신을 만날 수도 있었다. 독일

어 덕분에 마지막 날 나는 훌륭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내일이면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툴스카야 역 주변의 어수선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화폐제조창(貨幣製造廠)  부근의 도로

가에 차를 세웠다. 차오는 혼자 차에 남기로 하고 이진과 슈메이가 내 뒤를 따랐다. 우리는 지하철 역으로 통하는 지하 건널목

을 지나 아파트와 상가들이 늘어선 마을로 들어갔다. 두 여인이 동행하는 이 산책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도 바쁜

일정을 희생하고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본래는 체르무쉬끼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혼자 이곳으로 찾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 허술한 옷차림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혼자 멋대로

툴스카야의 골목골목을 거니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은 일정이 바쁜 두 여인이 느린 걸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만 늦게 움직이면 한참 앞서 가던 이진이 조금 짜증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들에겐 이 거리에 아무런 기억이 없

다. 나는 먼저 숙소이던 아파트를 찾아갔다. 인도에는 어김없이 비둘기 몇마리가 행인들 틈에 끼어 뒤뚱뒤뚱 걷고 있다.

그 유명한 툴스카야 비둘기들이다.

"안녕, 비둘기야!"

비둘기 한마리가 나를 흘끔 돌아보고 별 말 없이 가던 길을 가버린다. 7년만의 해후(邂逅)란 걸 아쉽게도 비둘기는 모르

는 모양이다.  아파트는 상가 건물 4층에 있다. 잠수용 도구들과 잠수복(潛水服)을 진열해놓은 해양상점(海洋商店)을 지

나 드디어 구두가게 앞에 도착했다. 구두가게 옆 문이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 문 바로 앞에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구두가게 젊은 여주인은 손님이 뜸할 때면 혼자 그곳에 나와 담배를 피우곤 했다. 구두 가게 안에는 남성

손님들 몇이 구두를 고르고 있다. 나는 애연가인 젊은 여주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 바뀌었거나 잠시 자리

를 비우고 있는지 모른다.

"식당이 어디에요?"

아파트 문앞에서 머뭇거리는 내게 이진이 재촉했다. 동행자가 없다면 나는 굳게 닫힌 문을 열고 4층까지  어둑신한 계

단을 마치 지금도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처럼 시치미를 떼고 천천히 올라갔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옆 집의 그 고독한

할머니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는 계단 중간에 있는 쓰레기 홈통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올 때마다 일을 마친

뒤 홈 통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좁은 실내에서는 다른 가족 때문에 끽연이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지금 살아있기는 할까?

바깥 입구에서 아파트 실내까지 가는데는 네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대문 격인 철문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계단으로 진입하는 작은 문이 있다. 그 문은 늘 열려있다. 열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이층부터 시작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게 된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네개의 문을 통과해서 내가 묵고있던 방 한칸 짜리 아파트 실내로 들어

간다. 메트가 꺼져버린 2인용 침대와 컴퓨터를 놓은 작은 책상, 그리고 피아노 한대가 방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피

아노 옆에는 꼬마 스피커를 양편에 거느린 컴포넌트가 놓여있고 그 옆 진열장에는 바딤 레핀, 하이페츠 등 바이올

린 주자들의 CD 음반이 가득 쌓여 있다.

"저는 뱅게로프 보다는 바딤 레핀이 더 맘에 들어요. 바딤 레핀을 닮고 싶어요."

방 주인이 처음 만났을 때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말했다. 그는 십이년째 이 추운 나라에서 바이올린에 매달려온,

잘 생긴 한국 청년이었다. 제발 바딤 레핀을 닮아서 훌륭한 연주가가 되어다오. 그래야 삶의 전부를 자식에게 걸

고있는 부모님에게 보답이 되겠지. 그의 연주를 들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혼자 이런 생각을 했

었다.

 아무도 연주하는 사람이 없지만 피아노 건반은 늘 열려있다. 악보가 놓여야 할 자리에는 엽서 크기만한 사진 한

장이 놓여있다. 내가 가져다 놓은 우리집 강아지 사진이다. 하얀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가 여름 풀밭에서 지금 막

달리기를 하려고 앞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강아지의 큰 눈이 참 맑고 시원했다. 서울을 떠날 때 나는 누구의

사진도 휴대하지 않고 오직 강아지 사진 한장만 가져왔다. 외출할 때 그리고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피아

노 건반 위에 세워진 그 사진을 바라보곤 했다. 최근 몇년 동안 강아지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말벗이었다.

어떤 인간 보다 강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강아지와 함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적지 않은 즐거

움이었다. 거실에서 음악을 들을 때도 강아지는 무릅 위에 자리잡고 앉아있곤 했다. 강아지는 모차르트 보다 바

흐 음악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느낄때가 있다. 바흐 음악을 들을 때 강아지가 더욱 집중하고 수선을 떨지도

않고 조용한 자세를 취하곤 한 것이다.

 이 강아지의 명민함과 다정한 마음은 자주 나를 놀라게 만든다. 러시아 체류를 끝내고 내가 귀국했을 때, 아들이

차를 몰고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는 분당 서현역 으로 나왔다. 당연히 강아지도 차에 동승하고 나를 맞으러 나왔

다. 9월 초순인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정류장 부근은 오가는 차들로 언제나 붐볐다. 내가 길가에서 짐

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의 차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하마터면 큰 재앙을 맞을번 했다. 누구보다 나

를 먼저 발견한 강아지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마침 열린 차창 밖으로 뛰어내릴려고 한 것이다. 많은 승용차

들이 빠른 속도로 눈 앞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안 돼! 강아지 붙잡아!"   내가 소리치는 순간 아들이 차창에 매달린 강아지를 끌어내렸다. 집에 도착 이후 이

작은 강아지가 내게 베풀어주는 환영의 세리머니는 눈물겨운 것이었다. 강아지는 내 바지자락을 붙들고 반시

긴 이상이나 끙끙거리며 내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어디  있다가 이제 온거야? 왜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지? 난 당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만 알았지

뭐야.'

 

"식당이 어디 있죠?"

이진이 기다리다 치쳐 다시 재촉했다. 슈메이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자기 팔을 내 허리 사이로 디리밀었다. 연

인처럼 팔짱을 낀 것이다.  그녀는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천진한 웃음을 보이며 나를 행길 쪽으로 끌어당겼다.

평소 이 상가건물 부근은 행인이 드문 편이었다. 지금도 여전했다.

'식당은 여전히 문을 열고 있겠지.'

나는 기대감을 갖고 식당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그날의 메뉴가 적힌 작은

입간판을 늘 세워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입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계단 입구는 막혀버렸다. 식당이 사라진

것이다. 그 독일어 교사 출신 여성과 재회의 기대감도 사라져버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