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s de Waal은 훌륭한 영장류 과학자다. 특히 침팬지 연구로 유명하며 한국에도 그의 책 여러 권이 번역되었다. 아래 세 권을 읽어 보았는데 모두 추천할 만하다.

 

보노보 - 살아가기 함께 행복하게

Bonobo: The Forgotten Ape

 

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

 

Good Natured: The Origins of Right and Wrong in Humans and Other Animals

 

다만 『Good Natured』에서는 집단 선택을 옹호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집단 선택은 매우 골치 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겠다. 얼마나 골치 아픈 문제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저명한 진화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서로 의견이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아래 모음집을 참조하라.

 

THE FALSE ALLURE OF GROUP SELECTION (Steven Pinker)

Stewart Brand, Daniel Everett, David C. Queller, Daniel C. Dennett, Herbert Gintis, Harvey Whitehouse & Ryan McKay, Peter J. Richerson, Jerry Coyne, Michael Hochberg, Robert Boyd & Sarah Mathew, Max Krasnow & Andrew Delton,Nicolas Baumard, Jonathan Haidt, David Sloan Wilson, Michael E. Price, Joseph Henrich, Randolph M. Nesse, Richard Dawkins, Helena Cronin, John Tooby.

http://edge.org/conversation/the-false-allure-of-group-selection

 

나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침팬지를 관찰한 그의 연구팀의 성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de Waal이 이론가로서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de Waal이 짧은 글에서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측면을 비판했다. Tooby & Cosmides 같은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들을 이론적으로 한 수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Evolutionary Psychology: The Wheat and the Chaff

Frans B.M. de Waal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물론 나 역시 기본적인 취지에는 매우 공감한다.

 

Although I take a critical approach to evolutionary psychology in this essay, my arguments should not be taken to mean that it has no future. On the contrary, I see evolutionary psychology as an inevitable, even desirable development plagued by serious growing pains that need to be addressed for its own good.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진화 심리학계는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미숙하다. 하지만 de Waal에게 한 수 배울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de Waal이 남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것이 민망해 보인다.

 

de Waal의 진화 심리학 비판은 독창적이지도 않다. 나는 여러 곳에서 비슷한 비판을 본 적이 있다. 만약 de Waal이 쓴 글이 아니었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 비판하지 않고 그냥 무시했을 것 같다.

 

 

 

--- 대머리 ---

 

de Waal은 대머리가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언급하면서 진화 심리학의 미숙함을 논한다.

 

An example straight out of the evolutionary psychology literature—and I could offer hundreds more—is found right in the opening sentence of a recent article. It states: Both male facial hair and male pattern baldness are genetically based, suggesting that they contributed to fitness” (Muscarella & Cunningham, 1996, p. 99). Later in the same article, we learn that male pattern baldness may signal social maturity, described as a friendly kind of dominance based on wisdom. Is this supposed to explain why we have an entire industry that removes hair from men’s heads? Obviously, every man wants to look mature and wise!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내가 어느 정도 아는 모든 문화권에서 남자들은 모자, 가발, 빡빡머리 등으로 대머리임을 숨기려고 한다. 또한 여자들은 대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대머리가 적응이라는 가설은 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가설이 잘 입증되었다고 믿거나 가망성이 크다고 믿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몇 명이나 될까? 이 가설을 호의적으로 인용한 진화 심리학자들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진화 심리학 문헌을 꽤 많이 보았지만 그런 진화 심리학자를 본 기억이 없다.

 

어떤 형질에 유전적 기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적응이라고 믿는 바보 같은 진화 심리학자가 몇 명이나 될까? 색맹이 유전되니까 색맹이 적응이라고 믿거나, 맹점에 유전적 기반이 있으니까 맹점이 적응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진화 심리학자가 발표했지만 진화 심리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수준 낮은 논문들(또는 가설들)을 몽땅 모아 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니까 진화 심리학계는 바보”라고 결론 내린다면 그것은 꼼수일 뿐이다. 진화 심리학계를 비판하려면 진화 심리학자들 대다수가 인정하는 연구를 비판해야 한다.

 

 

 

--- 요통 ---

 

Many individual traits are imperfectly designed or positively costly. A human example is our back: Our species is not fully suited for an upright posture, hence many of us suffer back problems, such as hernias, slipped disks, and neck pain. Walking upright must have had great benefits for these costs to be tolerable, even though there exists no universally accepted theory of why we walk upright.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나는 척추와 관련하여 인간이 자연 선택에 의해 완벽하게 “설계”되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농경 사회나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요통에 시달린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의 허리가 바보 같이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이것은 현대 미국 사회에 비만 인구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의 지방 축적 기제가 바보 같이 “설계”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비만의 측면에서 현존하는(또는 최근까지 존재했던) 사냥-채집 사회와 현대 미국 사회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냥-채집 사회에는 비만이 사실상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매우 풍족한 현대 사회에서 진화한 기간이 매우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만약 농경 사회나 현대 산업 사회에 비해 사냥-채집 사회에 요통이나 치질이 거의 없다면 요통이나 치질은 불완전한 “설계” 때문에 생겼다기보다는 진화한 환경과 현대 환경의 차이 때문에 생겼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 강간 ---

 

In A Natural History of Rape, Thornhill and Palmer (2000) postulated that rape is an adaptation; that is, rape may have been favored by natural selection because it furthered male reproduction.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Declaring rape an adaptation raises a multitude of questions, questions that Thornhill and Palmer have failed to answer.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위 구절을 보면 과연 de WaalThornhill and Palmer의 책을 읽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A Natural History of Rape』에서 두 저자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Thornhill은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을 지지하는 반면 Palmer는 부산물 가설을 지지한다.

 

인간 강간의 진화적 원인에 대한 결정적이며 의미 있는(legitimate, 정당한) 과학적 논쟁은 강간이 강간에 전문화된(rape-specific) 적응의 결과인지 다른 적응들의 부산물인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 강간은 강간을 위한 선택(selection for rape)에 의해 설계된, 남자의 특수화된(special-purpose, 특수목적용) 심리 그리고 그 심리와 연관되어 존재할지도 모르는 비심리적 해부학적 특성의 결과인가, 아니면 강간이 아닌 상황들에 대한 특수화된 적응의 부수적 효과인가? 우리 두 저자는 이 문제를 두고 10 년 넘게 논쟁을 해 왔는데(Palmer 1991, 1992a,b; Thornhill and Thornhill 1992a,b) 강간이 강간 자체를 추구하도록 남자를 추동하고 조율하는 특수화된 심리적 기제들의 결과인지 여부를 확정함으로써 그 문제에 결국 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The crucial legitimate scientific debate about the evolutionary cause of human rape concerns whether rape is a result of rape-specific adaptation or a by-product of other adaptations. That is, does rape result from men’s special-purpose psychology, and perhaps from associated non-psychological anatomy, designed by selection for rape, or is rape an incidental effect of special-purpose adaptation to circumstances other than rape? We two authors, having debated this question for more than a decade (Palmer 1991, 1992a,b; Thornhill and Thornhill 1992a,b), agree that it may eventually be answered by determining whether or not rape is the result of special-purpose psychological mechanisms that motivate and regulate men’s pursuit of rape in itself.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is of Sexual Coercion, 12)

 

그런데도 de Waal은 위 구절들에서 두 저자 모두 적응 가설을 지지하는 것 같이 썼다.

 

And why do men sometimes rape partners who are perfectly willing to engage in consensual sex?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위 구절은 부부 강간을 말하는 듯하다. 아내가 항상 기꺼이 남편의 성교 요구에 응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부 강간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혼 직전이거나 별거 중인 부부의 경우, 또는 부부 싸움을 대판 한 경우 아내가 남편의 성교 요구에 단호하게 거부 표시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경우 일부 남편은 강간을 하기도 한다. “perfectly willing”한다면 어떻게 강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A Natural History of Rape』에 불만이 있다. 특히 행동의 수준과 심리 기제의 수준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가설을 세운 측면이 마음에 안 든다. 이 이야기는 짧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중에 다른 글에서 아주 길게 다룰 생각이다. 어쨌든 『A Natural History of Rape』에서 두 저자는 강간에 대해 당시까지 다루지 않았던 신선한 접근법을 보여주었으며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 의붓자식 학대 ---

 

A major problem with the strategy of singling out rape for evolutionary explanation is that the behavior is shown by only a small minority. The same criticism applies to Daly and Wilson’s (1988) well-known work on infanticide by stepparents. They explained this category of infanticide as arising from a lack of shared genes with adoptive offspring. I would argue that in seeking to understand rare behavior we should never ignore the norm. If child abuse by stepfathers is evolutionarily explained, why do so many more stepfathers lovingly care for their children than abuse them? And if rape is such an advantageous reproductive strategy, why are there so many more men who do not rape than who do?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이번에도 de WaalDaly and Wilson의 책을 읽었는지 의문이다.

 

Daly and Wilson은 인간 남자가 숫사자처럼 새로 얻은 아내의 자식을 몽땅 죽여버리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의붓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친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만약 친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의붓자식에 대한 사랑이 작다면 의붓자식을 학대하거나 죽일 가능성이 친자식의 경우보다 높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의붓자식 살해율이 친자식의 경우보다 수십 배나 높았다.

 

“의붓자식을 몹시 잘 돌보는 남자들이 매우 많다”는 점은 Daly and Wilson의 책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없다. Daly and Wilson이 “남자는 의붓자식을 무작정 증오하도록 설계되었다”라고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자도 꽤 힘을 쓸 줄 안다”는 얘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남자가 여자보다 원래 힘이 세다”는 가설이 타격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부성애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들이대도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는 가설이 타격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는 가설은 글자 그대로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고 주장할 뿐이지 부성애가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 대량 모듈성 테제 ---

 

The lesson from the foregoing is that one cannot atomize the organism. One cannot single out a trait for an adaptive story, as is often done in evolutionary psychology. Rather, one needs to (a) consider the entire set of traits and (b) trace the organism’s phylogeny, that is, the ancestral forms that produced it.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Followers of evolutionary psychology often talk about a gene for this or a brain module for that, seeking to dissect the whole to explain each part separately. If this cannot be done with the components of a watch spread out on the table, it most certainly cannot be done with the genome, the organism, and its behavior.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de Waal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전체론(consider the entire set of traits”)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좋아한다는 원자론(atomize the organism”)이다.

 

물론 시계 부품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고 각 부품의 성질에 대해서 논한다고 해서 시계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부품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즉 각 부품들이 어떻게 전체를 이루는지를 모른다면 파편적인 지식의 집합일 뿐이다. de Waal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듈론(모듈 또는 부품에 대한 이야기) 없는 전체론은 허깨비일 뿐이다. 이것은 시계를 논할 때 각 부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그냥 막연하게 “시계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체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분(부품, 모듈)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심장이나 허파는 몸 속에서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온갖 다른 부품(기관)들과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상호작용 또는 전체론 없는 모듈론(기관론)은 결코 제대로 된 생리학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심장”, “허파” 같은 개념 없이 인체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균형을 잃었다”, “몸이 허하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몸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기술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먼저 알아내야 한다. 인간의 뇌 또는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먼저 어떤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내야 그 부품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뇌가 어떤 선천적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많이 헤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임무를 두고 헤매는 것이다. 그런 임무를 포기하고 막연한 전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결코 깊이 있는 심리학이 될 수 없다.

 

One problem with this approach—apart from the fact that brain modules at any specific task level have yet to be demonstrated—is that this would make for an incredibly unwieldy brain, much like a computer to which a new chip would need to be added each time we install another program: one chip for word processing, one for games, one for spreadsheets, and so on. Instead, a computer is a multipurpose device that allows each application to draw on its full potential.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비유를 하려면 제대로 하자. 물론 컴퓨터 하드웨어는 범용이다. 하지만 컴퓨터에는 온갖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들은 컴퓨터 밖에서 나온다. 즉 인간이 만든다. 만약 범용 체제가 대량 모듈 컴퓨터보다 더 훌륭하다면 수 많은 프로그램들이 내장된 컴퓨터에 비해 아주 소수의 프로그램들만 내장된 컴퓨터가 학습을 통해서 온갖 쓸모 있는 일을 더 잘 할 것이다.

 

The term module, in particular, carries the connotation of a brain part that is self-contained, encapsulated, and localized, rendering the idea unpalatable to neuroscientists (Panksepp & Panksepp, 2000).

http://www.emory.edu/LIVING_LINKS/publications/articles/deWaal_2002.pdf

 

de WaalFodor의 모듈 개념을 진화 심리학자들에게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Fodor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쓴다.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는 Fodor의 책과 진화 심리학자의 논문을 참조하라.

 

The Modularity of Mind: An Essay on Faculty Psychology

 

진화 심리학 대박 논문: Modularity in Cognition(Barrett, Kurzban)

http://cafe.daum.net/Psychoanalyse/J3xI/67

 

Modularity in Cognition」은 de Waal의 글이 출간된 이후에 발표되었다. 어쨌든 진화 심리학자들은 훨씬 이전부터 자신의 모듈 개념이 Fodor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고 싶으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쓰는 개념대로 비판해야 한다. 왜 엉뚱한 의미를 부여한 다음에 비판하나?

 

 

 

이덕하

201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