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Bayesian님과 내가 벌인 입씨름이 상당한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시는 분은 아래 글에 인용된 글들을 참고하시길.

 

Bayesian-지뇽뇽-이덕하 입씨름, 패러다임, 과학적 상상력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55

 

Bayesian님이 최근에 진화 심리학에 대한 짧은 글을 썼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

http://bayes.egloos.com/3029908

 

나를 직접 겨냥한 글은 아니지만 나와 벌인 입씨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 글에서 Bayesian님은 진화 심리학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불만들 중 대부분은 외국의 진화 심리학 비판자들이 했던 말이며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John Tooby, Leda Cosmides, Steven Pinker, David Buss 등이 주도하는 학파)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이다.

 

내가 원한 것이 이런 내용 있는 토론이었다. 이 글이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화 심리학 논란과 관련된 더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나가는 길에 한 마디 하자면,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은 고맙지만 “석사 나부랭이”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지뇽뇽님과 Bayesian님이 열심히 공부하는 과학자(또는 과학자 지망생)이라는 인상을 받았으며 생산적인 토론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나부랭이”라는 표현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무식한 교수 같은 인간들을 위해 남겨두자.

 

 

 

--- 대량 모듈성 테제 ---

 

그러나 인지심리학자들 중 일반지능론(General intelligence)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량모듈성 가설에 회의적인 듯하다. 대신 그들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통적으로 개입하는 좀 더 일반적인 형태의 인지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http://bayes.egloos.com/3029908

 

모듈 개념을 Jerry Fodor와 진화 심리학자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쓴다. 또한 대량 모듈성 테제의 의미도 학자마다 약간 다르게 쓰기 때문에 혼동이 생긴다. 이 글에서는 Tooby & Cosmides 사단에 속하는 Barrett & Kurzban의 정의에 따르겠다.

 

We similarly endorse the view espoused by many evolutionary psychologists that the concept of modularity should be grounded in the notion of functional specialization (Barrett, 2005; Pinker, 1997, 2005; Sperber, 1994, 2005; Tooby & Cosmides, 1992) rather than any specific Fodorian criterion.

(Modularity in Cognition: Framing the Debate, H. Clark Barrett, Robert Kurzban, http://www.sas.upenn.edu/psych/PLEEP/pdfs/2006%20Barrett%20and%20Kurzban%20Psy%20Rev.pdf)

 

In our examination of the debate, we will use massive and central modularity interchangeably to refer to any proposals of modularity beyond the relatively uncontroversial thesis that some peripheral systems are modular. There exist various versions of the massive modularity claim, with some claiming that there is substantial modularity in central systems but allowing for some nonmodular processes, and others claiming that the mind is modular all the way down” (Sperber, 1994; see also Tooby et al., 2005). Although we feel that the central–peripheral distinction will come to be seen as false or at least ill defined, proposals of modularity of central or “higher level” processes have generated the most controversy, so we focus on them here. Because there are strong intuitions as to what counts as a higher level process, we rely on these and conventions in the literature. In psychology, higher level or central processes typically include reasoning, inference,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semantic processing, and so on.

(Modularity in Cognition: Framing the Debate, H. Clark Barrett, Robert Kurzban, http://www.sas.upenn.edu/psych/PLEEP/pdfs/2006%20Barrett%20and%20Kurzban%20Psy%20Rev.pdf)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지각이나 운동을 관장하는 부분뿐 아니라 추론, 판단, 기억, 이해, 결정 등을 관장하는 부분의 경우도 많은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대량 모듈성 테제다.

 

대량 모듈성 테제가 영역-일반적(domain-general) 모듈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영역-일반적 모듈이 존재한다는 점만 보여주면 대량 모듈성 테제가 무너진다. 이런 비판에 대해 Barrett & Kurzban은 “영역-일반성” 개념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Widespread discussion of domain-general abilities still raises the question of how a domain should be construed (see above). Here we have suggested that domains should be construed in terms of the formal properties of information that render it processable by some computational procedure. In this sense, even the rules of so-called content-independent logics—for example, modus ponens—are domain specific, in that modus ponens operates only on propositional representations of a particular form. For this reason, we disagree with Fodor (2000) and Sperber (2005), who appear to agree that modus ponens would count as a domain-general rule if it could operate on any propositional representations, regardless of their content. We argue, on the contrary, that modus ponens has a restricted and clearly defined input domain: representations in the form of if–then statements (see also Barrett, 2005).

(Modularity in Cognition: Framing the Debate, H. Clark Barrett, Robert Kurzban, http://www.sas.upenn.edu/psych/PLEEP/pdfs/2006%20Barrett%20and%20Kurzban%20Psy%20Rev.pdf

 

일반적인 추론 모듈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영역-일반적이다. 인간 짝짓기에 관련된 추론에도 쓰이고, 수학 추론에도 쓰이고, 동물의 싸움에 관련된 추론에도 쓰이고, 돌멩이의 운동에 관련된 추론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론 모듈은 감각도, 욕망도, 운동 통제도 아닌 추론에 쓰인다는 점에서 영역-특수적(domain-specific)이다.

 

이것은 시각 기제가 인간 짝짓기를 보는 데에도 쓰이고, 수학 문제를 보는 데에도 쓰이고, 동물의 싸움을 보는 데에도 쓰이고, 돌멩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데에도 쓰인다는 면에서 영역-일반적이지만 추론도, 욕망도, 운동 통제도, 후각도 아닌 시각에 쓰인다는 점에서 영역-특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논의의 편의상 비판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보자. 즉 매우 일반적인 심리 기제들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대량 모듈성 테제가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 대량 모듈성이 틀렸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추론, 판단, 기억, 이해, 결정 등을 관장하는 부분에 매우 일반적인 심리 기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추론, 판단, 기억, 이해, 결정 등을 관장하는 부분에 매우 일반적인 심리 기제를 제외하고는 다른 심리 기제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대량 모듈성 테제와 관련하여 위에서 인용한 Barrett & Kurzban의 논문만큼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글을 본 기억이 없다. 대량 모듈성 테제를 비판하고 싶거든 대중서가 아니라 이 논문을 읽고 비판하시라.

 

진화 심리학 대박 논문: Modularity in Cognition(Barrett, Kurzban)

http://cafe.daum.net/Psychoanalyse/J3xI/67

 

 

 

--- 가설 검증의 어려움 ---

 

어떤 진화심리학적 가설이 특정한 심적 기제의 존재를 예측한다고 가정해 보자. 설령 그러한 심적 기제가 존재한다고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때로 매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http://bayes.egloos.com/3029908

 

진화론적 착상에서 출발하여 어떤 심리 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정확히 예측했다면 heuristic(발견법, 어림짐작법)으로서의 진화 심리학의 가치가 입증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특히 진화 심리학이 사후적, 임시방편적(post hoc, ad hoc) 설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설계 논증(argument from design)에 많이 의존한다.

 

검증 방법: 1. 설계의 논증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17

 

시각 처리 기제의 경우 진화 심리학계 밖에 있는 과학자들도 설계 논증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즉 시각 처리 기제가 적응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진화 심리학계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입증되었다고 보는 사례가 “입덧은 적응이다”라는 가설이다. 나는 입덧의 경우 설계 논증을 상당히 잘 적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럴 듯한 이야기: 3. 입덧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15

 

증거: 1. 입덧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20

 

물론 어떤 가설의 경우 검증이 매우 힘들다. 예컨대 “남자에게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강간을 조절하는 기제가 있다”는 적응 가설은 아직도 입증도 반증도 안 된 것 같다. 어떤 가설의 경우 상대적으로 검증하기 쉽고, 어떤 가설의 경우 상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이것은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 아닌가? 모든 가설이 검증하기 쉽다면 과학자는 곧 실업자가 될 것이다. 때로는 검증이 어렵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와 끈기와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진화 심리학 가설이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직 아무도 “검증 불가능성”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 013. 진화 심리학 가설은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61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 029. 진화 심리학 가설이 검증 불가능함을 증명해 보시라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88

 

 

 

--- 진화 심리학과 근접 기제 ---

 

게다가 진화심리학자들은 ultimate cause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proximal cause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런 논의가 기존의 심리학자들의 작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http://bayes.egloos.com/3029908

 

진화 심리학자들의 주된 연구 패턴은 대략 이런 것 같다. 적응론적 논리에서 시작하여 어떤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이 때 당연히 상식이나 기존 심리학 연구 등을 고려한다. 그리고 그 심리 기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검증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이런 저런 선천적 심리 기제가 있다)”이 근접 기제(proximal mechanism, 근접 원인)에 대한 가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진화 심리학자들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이런 심리 기제는 자연 선택의 산물이다”라는 궁극 원인에 대한 적응 가설도 검증하려고 한다.

 

진화 심리학이 궁극 원인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주로 근접 기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려고 한다. 적어도 심리 기제(정보 처리, 계산 이론에서 말하는 계산, 넓은 의미의 인지)의 수준을 아주 강조하는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렇다.

 

 

 

--- 기억과 적응론 ---

 

사실 솔직히 기억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적응적으로 주는 이득이 너무나 분명해서 진화심리학의 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ultimate cause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http://bayes.egloos.com/3029908

 

무언가를 대체로 잘 기억하는 동물이 대체로 더 잘 번식할 것이라는 점은 너무 뻔하다. 따라서 굳이 힘들여서 진화 심리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것은 심장이 튼튼한 동물이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는 점과 비슷하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진화 심리학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생각하기 힘든 가설들이 나온다. 예컨대 “자신의 친족에 대한 기억 왜곡”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친족 선택 이론에 따르면 친족이 아닌 사람에 비해 친족을 더 아껴 주는 것이 적응적이며, 친족에 비해 자신을 더 아끼는 것이 적응적이다. 따라서 자신과 친족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친족에게 불리하게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적응적이고 친족과 비친족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친족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이런 식의 가설을 만드는 데 진화 심리학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인간이 어떤 것을 더 잘 기억하는가?”라는 문제에서도 적응론적 착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돌멩이들의 위치나 나뭇가지의 숫자보다는 누가 누구와 잤으며, 누가 누구를 때려눕혔는지에 대해 대체로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짝짓기만 하더라도 어떤 개와 어떤 개가 짝짓기를 했는지보다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이 짝짓기를 했는지를 대체로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아무 것이나 몽땅 기억하려고 하는 동물보다는 번식에 긴요한 정보를 골라서 기억하는 동물이 더 잘 번식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이 번식에 더 긴요한지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진화 생물학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

 

예컨대 “인간은 매우 위험했던 순간에 대해 매우 잘 기억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기억이 위험하지 않았던 순간에 대한 평범한 기억보다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다. “인간은 인간 사이의 짝짓기 정보를 매우 잘 기억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가설도 그럴 듯해 보인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류의 가설을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모으고 있다. 아직 확실히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준까지 이른 경우보다는 “가망성 있는 가설이군” 정도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어쨌든 적응론적 사고 방식이 없었다면 신선한 가설을 통해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현상을 발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 같다.

 

 

 

--- 홍적세에 대한 정보의 불확실성 ---

 

일부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실 홍적세의 환경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때의 환경을 가정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문제가 된다.

http://bayes.egloos.com/3029908

 

우리는 홍적세(또는 다른 시기의 먼 과거)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홍적세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홍적세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잘 아는 것도 엄청나게 많다. 아래에 인용한 구절에 나오는 것 말고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진화 심리학적 가설을 만드는 데 이용할 수 있다.

 

행동은 화석으로 남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심리학에 관련된 과거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따라서, 진화 심리학 분야 전체가 불확실한 사변이나 추측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과 그들이 살았던 세계에 대한, 수천 가지(thousands) 중요한 것들에 대해 확실히 알며 그 중 많은 것들을 심리학 연구를 안내하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 중 일부는그 함의가 명백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명백하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이 특정한 물리학적 원리들이 물체의 운동을 지배했던 세계에서 살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런 사실 때문에 Shepard(Shepard, 1984, 1987) 마음이 지각과 상상 모두에서 물체의 운동을 어떻게 표상하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인류(hominids)는 눈이 있었으며, 관심을 끄는 것을 보았으며,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한 정보를 흡수했기 때문에 시선의 방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확실하다. 이런 사실 때문에 Baron-Cohen(Baron-Cohen, 1995)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상태를 추론하는 능력인 마음 읽기(mind-reading)의 인지적 기초에 대한 원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다른 구 세계 영장류들(Old World primates)과 마찬가지로 젖을 먹였으며, 성별이 둘이었으며, 짝을 선택했으며, 햇빛 스펙트럼의 특성에 맞추어진 색상 시각이 있었으며, 고양이과 육식 동물들과 독사들과 거미들이 있는 생태 환경에서 살았으며, 포식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상처를 입으면 피를 흘렸으며, 부상 당하면 무력해졌으며, 아주 다양한 기생 생물과 병원균에 취약했으며, 형제자매와 짝짓기를 하면 근교 약세(inbreeding depression)가 되는 해로운 열성 유전자들(deleterious recessives)이 있었다는 점이 확실하다. 이런 조건들 모두가 알려져 있으며 그 모두가 적응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런 선택압들을 고려함으로써 주의 깊고 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들에 대한 반응으로 떠오른 적응들에 대한 그럴 듯하고 검증 가능한 이론들을 개발할 수 있다.

(진화 심리학의 개념적 기초(Tooby & Cosmides, 초벌번역 마침),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44)

 

 

 

--- 왜 과거에 집착하나? ---

 

그리고 만약 새로운 가설을 도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굳이 현재의 진화심리학이 내걸고 있는 복잡한 여러 가지 전제들(이를테면 홍적세가 어쩌고 저쩌고)을 끌어들이지 않고, 순전히 적응에 도움이 되었을 만한 심적 현상의 존재를 예측해보는 것이 더 쉽고 간명하지 않은가?

http://bayes.egloos.com/3029908

 

 

인간의 환경 중 어떤 측면은 홍적세와 현대가 매우 다르다. 만약 현대 선진 산업국에 초점을 맞추어서 인간의 지방 축적 기제에 대해 연구한다면 미국 같은 나라의 고도 비만 인구를 고려해 볼 때 인간의 지방 축적 기제가 매우 바보 같이 설계되었다고 결론 내릴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음식이 훨씬 귀했던 홍적세에 초점을 맞춘다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유전자 검사와 콘돔이 있는 사회에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도 적어도 선진국의 부자들은 다른 남자의 자식을 모르고 키울 위험이 별로 없다. 반면 홍적세에는 그런 위험이 매우 크다. 질투 기제에 대한 연구에서 현대 사회의 환경만 고려한다면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홍적세에는 21세기 미국만큼 음식이 풍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홍적세 남자들이 자신의 친자식(아내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 지난 1만년 동안의 진화 ---

 

한편 인간의 마음이 홍적세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선택압이 충분히 크다면, 많은 세대를 거치지 않더라도 진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http://bayes.egloos.com/3029908

 

지난 1만 년 동안은 눈이나 심장 같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제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너무 짧다. 하지만 성인의 젖 소화 능력, 말라리아에 대한 적응력(낫 모양 적혈구 빈혈은 그 부작용이다) 등과 관련하여 상당한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만약 복잡한 심리 기제의 기본적인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난 1만 년 동안의 진화를 어느 정도 무시해도 된다. 만약 심리 기제의 성능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난 1만 년 동안의 진화를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케냐 사람들이 장거리 달리기를 석권하고 있다. 논의의 편의상 이것이 그들의 심폐 능력이 장거리 달리기에 유리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심장의 기본 구조에 대해 연구한다면 지난 10만 년 동안의 진화를 무시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반면 심장의 성능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난 10만 년 동안의 진화를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것 같다.

 

Long-term, across-generation recurrence of conditionsexternal, internal, or their interactionis central to the evolution of adaptations, and it is easy to see why. Transient conditions that disappear after a single or a few generations may lead to some temporary change in the frequency of designs, but the associated selection pressures will disappear or reverse as often as conditions do. Therefore, it is only those conditions that recur, statistically accumulating across many generations, that lead to the construction of complex adaptations. As a corollary, anything that is recurrently true (as a net statistical or structural matter) across large numbers of generations could potentially come to be exploited by an evolving adaptation to solve a problem or to improve performance.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 John Tooby and Leda Cosmides,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pfc92.pdf)

 

Cochran and Harpending’s (2009) recent book has generated a great deal of discussion about this issue. There is a crucial difference between rapid genetic change on the one hand and the evolution of complex adaptations on the other.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y are interested in the latter. Cochran and Harpending themselves note that they “think that this argument concerning the evolution of complex adaptations is correct, but it underestimates the importance of simple adaptations, those that involve changes in one or a few genes” (p. 10), and that they “expect that most of the recent changes in humans are evolutionarily shallow, one mutation deep for the most part” (p. 12). They make a convincing case for their view. This does not change the logic of the argument presented here that human mental adaptations are designed for the past rather than the future. The adaptations I discuss here are complex and are, in that sense, quite unlike skin color and lactose tolerance, for example.

(Why everyone (else) is a hypocrite: evolution and the modular mind, Robert Kurzban, 223)

 

 

 

이덕하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