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제가 한국과 시간대가 맞아서 글을 써놓고 자고 일어났더니 그동안 많은 댓글들이 달려있네요. 댓글에 답을 못해드린 것은 일부러 그런게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 원글은


http://theacro.com/zbxe/free/773995


흐강님의 추가적인 답변도 구체적이어서 좋았고, 피노키오님, 인문계, 차칸노르님의 노조-기업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댓글을 읽으며 덕분에 리버테리안의 입장을 제대로 배울 있었던 것에 감사드립니다. 짜장면이 좋다고 하는데, 짬뽕 이야기를 하면 핀트가 안맞겠다는 것도 수긍은 갑니다.


어떤 정권의 경제정책을 이야기할 때는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데로 몇가지 거시데이터 가지고 평가하자면 상당히 복잡하고 결론 내기가 어렵습니다. 사안별로 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주시자의 눈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시데이터만으로도 그래도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한그루님의 구체적인 데이터 제시에 감사드립니다.

http://theacro.com/zbxe/free/774411


인문계님이 공리주의자라로서의 입장을 내세우시기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무래도 경제학 이야기를 해야할 같네요. 그래서 따로 글을 씁니다. 거기에 간간히 더해서 대처라잇 이코노믹스나 복지에 대한 입장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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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균형이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Planner’s Economy 개념입니다. (한국에서 (학부) 경제학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기때문에 한글로는 뭔지 몰라서 영어와 마음대로의 번역을 섞어서 쓰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계획경제를 생각한다는 의미에서는 마르크스 이론, 또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라고 생각합니다.)  계획자(Planner)라는 가상의 존재가 있어서 그가 경제 전체의 자원을 배분 하는데, 그의 목적함수는 최대다수의 최대효용입니다. (최대행복이 아니라서 공리주의의 입장과 약간 다르지만, 경제학에서 행복을 정의하지는 않고 효용만 정의하기 때문에 이부분은 공리주의적인 개념과 싱크로율이 95%라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계획자를 신이라고 해도 좋고, 공산당이라고 불러도 좋지만, 보통은 정부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계획자가 자원을 배분할 시장가격 가지고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참여자의 한계효용만 보고 배분한다는 것입니다. (계획자 경제에는 시장자체가 없습니다.)


  가상의 계획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경제 참여자(Economic Agent또는 좁히면 Consumer) 위해서 배분한 자원 배분의 상태를 보통 최적분배(optimal allocat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벤치마크로 삼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계획자 경제를 치워버리고, 여기에 시장을 가져다 놓고서 경제 참여자들이 주어진 재화와 노동의 endowment 가지고 시장의 가격에 따라서 경쟁하여 재화를 사고 팔고 소비를 하게 하면 (, Competitive Equilibrium), “저절로계획자 경제에서 만들어지는 최적분배 상태를 이를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를 거창하게 Fundamental Theorem of Welfare Economics (후생경제학의 기본정리)라고 부르죠.


그러니깐 후생경제학의 기본정리에 의하면, 시장 참여자가 (공정한) 경쟁을 하게 만들면 정부 또는 무엇인가 초월적 존재인 계획자가 없이도 그가 있어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돌아가게 된다는 셈이지요. 이게 신념이나 이념이 되버린게 신자유주의가 아닌가도 생각합니다. 대처리즘이라고 이것과 다를 것이 있나요.


다시 계획자 경제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여기에 한가지 가정이 들어 있는데, 경제 전체에 정보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없어야한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경제주체의 생산능력같은 것을 정확히 계획자가 알고 있어서 또한 모든 참여자가 다른 모든 참여자의 것도 알고 있어서 생산주체가 노동을 특정한 양만큼 하도록 분배(또는 강제)하는 것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약간 이상하죠?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같지 않습니까.


반대로 정보비대칭이 있다 가정은 현실적으로 당연히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이런 정보 비대칭을 다룰만한 툴이 없었기에 다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후에 이야기하는 경제이론은 리버테리안이자 통화주의자 또는 신자유주의자라고 매도되는 프리드만은 몰랐다는 것이죠.


후에 1990 초반에 와서야 경제학자들(특히나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또는 Neo Classical) 발견한 것이 (어떠한 종류의) 정보비대칭이라도 존재 하면 위에서의 예처럼 일개 개인의 생산성, 능력, 또는 선호도에 대한 정보 비대칭 등등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플래너가 경제를 계획할 주체가 제대로 일할 있는 인센티브를 생각해야한다, 그런데 인센티브 제약조건에 의해서 재화를 분배하게 되면 참으로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적인 모델하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일부의 시장참여자에게 모든 재화가 집중이 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같지 못하 상황이 optimal allocation이라는 것이죠. ( 정확하게 말하면 부가 집중되는 시장참여자는 일부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말하면 measure 0 수렴하게 됩니다. 나머지 전부 0로 수렴하죠.) 다시 말하면 사심이 없는 플래너(정부) 이렇게 등하게 재화를 분배를 여 양극화를 만드는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효용이 되어버린다는 (최소한 저에게는 다소) “경악스러운사실입니다.


이게 비대칭정보 상황 ( 상당히 현실적인 가정)하에서 일어나는 플래너 경제의 결과이고, 이게 바로 벤치마크입니다. , 벤츠마크를 어떻게 현실에서, 또는 시장에서 구현할 있을까요.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똑같이 플래너(정부) 치워버리고 시장경제 재화의 거래 가격 - 집어넣고 (공정한) 경쟁만 하게 만들면 마찬가지로 플레너 경제가 만드는 optimal하지만 불균등한, 하지만 최대다수의 최대효용을 만들 있을까요.


대답은 No입니다. 최소한 일정한 정부의 간섭이 들어가야 합니다. 일종의 Taxation문제가 발생하게 되죠. 2000년대 중반에나 와서야 세재를 어떻게 만들면 저런식의 불평등한 경제라 만들 있는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부분은 논의와 상관없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그런데, 저런 등한 벤치마크를 어떻게 다루어야 또는 받아드려야 할까요. 오래된 후생경제학의 기본정리가 신자유주의자에게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고 보는데, 후에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밝혀진 (그리고 실증적으로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나라마다 부의 불균등이 계속심해지고만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레이건이나 대처가 살아있다면 뭐라고 대답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레이건이나 대처리즘을 지지하시는 리버테리안들은 뭐라고 하실런지요.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확답(?) 사실상 찾기가 힘듭니다. 이론과 현실을 정확하게 매치하기가 곤란한 입장도 있기도 하기 때문이죠.  (사실 몇몇 경제학자들에게 신자유주의 누명을 씌우는 것도 저는 마땅히 지지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들은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총론만 제시했지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라잇 이코노믹스에 대한 각론을 그런 식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한 적도 별로 없거든요. 언제나 문제는 이론을 실제로 만든 사람보다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드리고 현실에 적용시키는 follower또는 정치가들이 주로 일으키니깐요.) 하지만, 몇몇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들은 보입니다.


하나의 예로 2000년도 중반에 정보비대칭에 더해서 limited commitment (또는 limited participation) 이라는 제약조건을 주면 플래너 경제하에서도 유동성 부의 집중현상이 막아지고, 경제주체들의 부가 시간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움직일 있게 되는 상황 보장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Limited commitment 뭐냐하면, 플래너가 경제 주체에게 재화를 너무 적게 주면, 경제주체는 아예 경제 자체를 떠날 있게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Limited commitment 대한 "현실적인 해석"이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에게 물어보자면 확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도 같다라는 전제를 드리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일단 경제 자체를 떠날 있다라는 말을 그냥 단순하게 받아서 이민가버린다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문화, 언어등등의 다른 외생조건이 존재하기에 그리 쉽지 않겠죠.


다른 한편으로는 Limited commitment라는 것은 경제 주체가 플래너에게 요구하는 위협입니다. 이만큼 안해주면 나는 딴데로 갈래라는 뜻이죠. 따라서 균형상태에서는 절대로 경제주체가 어디로 가지 못하게 최소한의 보장은 해줄 수밖에 없게됩니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경제 주체들에게 "기본적인 보장"을 해주면, 양극화 생기지 않는 최대다수의 최대효용 경제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도에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플래너가 또는 정부가 고려해야하는 Limited Commitment라는 제약 조건을 아주 약간만 수학적으로 말하면 입실론만큼만 ^^; -  확대해석하자면, 복지로 해석해도 무리가 전혀 없다고 봅니다. 물론 각론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기본적인 보장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 해야하냐에 대한 질문은 어떤 경제학자라도 구체적으로 대답하기가 곤란할 것 같긴해요.)

 

리버테리안이라는 말은 훌륭한 말인 같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리버테리안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토대로 하면 현실의 리버테리안은 밀튼 프리드만이 생각한 리버테리안에서 조금 진화된 (또는 진보된) 리버테리안으로 수정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아주 솔직하게 대처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흐강님 표현데로 인간적으로 상당히 나쁜 사람인 같지만) 정치적으로 그만하면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 대처를 평가하는 방식이 워낙 호들갑이길래 거기에 대한 경계심/반작용으로 약간은 깍아내린 것도 있는 것도 같습니다. 원래 흐강님의 글의 의도도 저와 비슷했을 기도 하네요.


대처이후로도 몇년간은 보수당이 집권했었고, 다시 노동당이 들어왔을 때도 이미 영국 사회가 대처리즘에 경도되어 있었던 탓에 노동당 정책도 아주 상당수 대처리즘과 닮아 있었습니다. 대처리즘 상태로 몇십년을 보낸 것이죠. 그러니, 생각에는 어쨋거나 대처가 아니었으면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짜장과 짬뽕의 차이가 있더라 하더라도, 다른 유럽국가들은 (피노키오님은 수정자본주의라고 말하셨는데) 제가 경제학적으로 해석하기에는 Limited commitment 고려한 복지로 나아갔고, 대처 또한 선택을 고려할 있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재의 도저히 되돌릴 없을 같이 보이는 불평등은 대처리즘 탓이라고 다시 말할 밖에 없고 그게 영국인들의 복이겠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노조에 대한 대처의 정책은 상당히 악질적이었다고 보지만, 그거 하나는 각론에 불구하다고 봅니다. 보다는 당시 보수당 정부의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너무 효율성에 경도되어 있었다 또는 저 오래된 가정이 비현실적인 때에만 성립하는 후생경제학기본정리에만 충실했었던 잘못이 있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대처를 륭하다 치켜세워주기는 곤란하고, 따라서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도 대처를 경계하는 입장에서 출발해야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