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년님이 쓰신 대처리즘에 대한 글을 읽다가 내 눈에 유독 들어온 문장은 바로 다음이었다.

그동안 쌓아놓은 사회적인 가치를 죄다 없애버린게 아닌지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유와 홍차'에 얽힌 영국의 독특한 문화, 그리고 영국여왕 엘리자베드 2세가 방한하여 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환담을 하면서 나누었던 '우유와 홍차'에 대한 일화가 떠올려졌다.


"영국에서 상류층은 홍차에 우유를 타마시고 노동자층은 우유에 홍차를 타마신다"


초딩 때, 설명보다는 사진이 더 많았던 '세계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집'을 읽으면서.... 아니 사진이 더 많았으니 '전집을 보았다'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 어쨌든 영국에서 상류층은 홍차에 우유를 타마시고 노동자층은 우유에 홍차를 타마시는데 그 이유는 홍차를 좋아해서 '매일같이 즐기는 홍차'는 그런 문화가 형성될 시기에 홍차는 상당히 비쌌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상류층은 쓴맛을 덜기 위하여 홍차에 우유를 타마셨고 노동자층은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값싼 우유에 홍차를 '조금(?)' 타서 즐긴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노동자'라는 의미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때였지만 두 개의 의문이 떠올려졌었다.


"그럼, 지금은 홍차가 그렇게 비싸지 않을테니까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테니 노동자들도 홍차에 우유를 타마시지 않을까?"


"그리고 홍차가 그렇게 비쌌다면 노동자층은 자신들만이 즐길 수 있는 음료들을 만들어 마시면 되지 않을까? 상류층 사회를 흉내내면 우유에 탄 홍차를 마시는 동안 정신적 위안이 되는 것일까?"




어릴 때 읽었던 이 기억은 내 머리 뒤편으로 사라져갔고 언젠가 영국에 깜바이(come by의 한그루식 표현 ^^)했을 때도 이런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었다. 또한, 영국에서 온 바이어와 며칠 어울리면서도 그런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만일, 떠올렸었다면 '악착같이' 확인을 해보았을텐데 말이다.  


단지....  그 기억이 내 머리 속에 잠시 떠올려진 것은 바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드 2세 고 김대중 대통령(이하 모든 존칭 생략)을 만났을 때의 일화를 신문에서 읽으면서였다. 신문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억이 나는대로 적자면.....



<DJ가 우유에 홍차를 타서 마시는 것을 본 엘리자베드 여왕이 말하기를>


"우리 영국에서는 상류층은 홍차에 우유를 타마시고 서민층은 우유에 홍차를 타마신답니다"


엘리자베드 여왕은 아마도....... 아무런 사심없이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질수도 있는 멘트였는데 '유머 교본'에 반드시라고 할만큼 등장하는 'DJ의 유머'.... DJ도 한 유머 한다.... 가 명불허전임을 입증하듯 그 장면을 멋진 유머로 화기애애하게 바꾸어버렸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의 멘트였었다.


"이런... 제가 망명생활과 도피생활을 오래하다보니 홍차를 즐길만한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이 사실은 '좌파를 자임하는' 진중권과 게시판에서 조우하면서 다시 떠올렸었다. 당시 진중권은 자신의 당파성은 '레닌주의'라고 하면서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등을 비판하면서 '한국에서는 사민주의를 실현하는 것조차 무지 힘든데 현실을 모르고 주장하는 주의주의자들이 많다'라고 주장하면서 각 나라의 노동운동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진중권에게 질문을 했었다.


"영국에서는 이러이러하다는데 진짜 그런가요?"


"영국의 그 문화에 대하여는 잘모르지만 유럽에서는 자신이 노동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려고 홍차에 우유를 타마시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들은 아직도 우유에 홍차를 타마실까?"



대처리즘의 공과 평가에 있어서 나는 '차칸노르님'의 주장보다는 '흐강님'이나 '비행소년님'의 주장 쪽으로 기울어진다. 물론, 세 분이 단적으로 '잘했다' 또는 '못했다'라고 평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니, 어떻게 단칼에 잘잘못의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그런데 레드문님의 언급처럼 '영국에서 제조업이 붕괴되었다'라는 사실을 되뇌이면서 문득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의 여주인공인 '작부 백화'가 떠올려졌다. 삼포가는 길의 백화............. 영국식 문화를 백화에 대입한다면, 비록 그녀가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겠지만 그 삶의 아주 짧은 여백'들' 동안에 '우유에 홍차를 타마시면서' 아주 잠시나마 '상류층 여성' 흉내를 내면서 정신적인 위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 대합실에서 다른 두 명의 사내와 헤어진 백화..... 그녀는 어디에 안착했을까? 그 이후에 그녀는 어쩌면 비록 고단했지만 아주 짧은 삶의 여백들에서 '우유에 홍차를 차마시던 호사스러운 추억'을 기억해내면서 홍차살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코메디언이었던 고 배삼룡 선생이 출연했던 영화의 한자락이 떠올려진다. 영화 속에서 고졸출신이었던 그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보, 고생이 되더라도 좀 참아. 우리도 7년 정도만 악착같이 아끼고 저축하면 우리집을 마련할 수 있을거야"



당연히 집의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편 혼자 버는 것도 아니고 부부가 함께 벌어서 집 한칸을 장만하면 나머지 여생의 상당부분을 자식교육과 집을 사느라 융자받은 돈을 갚는데 소비해야하는 현실....이 과연 배삼룡이 출연했던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70년보다 더 행복한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영화 속의 한 대사이지만 '확실한 팩트'였던 소설 속의 여주인공 백화와 영화 속의 주인공 배삼룡의 삶이 영국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에도 적용된다고 하면 무리일까? 영국은 당연히(?) 우리나라보다 지식화 사회의 진행이 훨씬 빨랐을 것이고 그렇다면 채 지식화 사회의 진입에 발을 맞추지 못한, 아니 채 발을 맞출 수도 없었던 제조업이 붕괴되어 갈 곳 없어진 영국의 노동자들은 글쎄... 그래도 영국의 일인당 GDP가 우리보다는 높으니까 '축구장에서 악명높은 홀리건'이 되어 돌아다니니 최소한 여전히, '우유에 홍차를 타마실 여력'은 되겠지만 말이다.



뭐, 영국의 노동자들의 삶을 추측하면서 대처리즘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찬양일색(?)이라는 보수언론들의 대처리즘의 이면 뒤에는 잔인한 '노림수' 아니 '슬픈 마리오네트'가 떠올려진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언론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그들 역시 '삼포가는 길'의 백화 신세로 떨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