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흐강님의 글에서 차칸노르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글이 길어지니 그냥 한편의 글로 쓰는 것이 낫겠다라고 판단이 되서 여기에 다시 씁니다. 아래는 영국의 GDP 성장율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그래프입니다.




파란색 - GDP growth rate - 보시면 눈에 들어오지만 영국은 70년대 중반에 한번의 큰 경제위기를 맞고 잠시 주춤하는데,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성장율 자체의 측면에서 보면 70년대 중반 이후와 대처가 들어온 79년 이후 - 들어오자 마자 80년대 초에 위기를 한번 맞게되는 것과 그녀가 퇴임하기 직전인 80년대 후반 에 맞게되는 위기를 보면 (참고로 퇴임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보수당 정권이었음) 제 생각에는 그저 경기 순환의 앞자락과 끝자락을 지나간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대게 5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냥 3% 선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네요.

참고로 80년대는 기본적으로 세계 경기가 상당히 좋았을 시절인데, 이것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저의 어머니께서 그러십니다. 80년대가 살기 좋았다고... 아주 예전에는 그래서 전두환이 더 잘했다고 말하기까지 하셨죠. 사실 좀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전두환이 잘했냐 못했냐를 대처가 잘했냐 못했냐로 바꾼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한번 물어보고 싶네요. 제가 아래 댓글에도 이야기했지만, 크루그만이 레이거노믹스에 대해서 평가할 때 그저 경기순환의 일종에 불과하다라고 논평한 이유도 이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자, 이런 전차로 해서 GDP 성장율 가지고 대처가 잘했다 못했다 논하는 것은 집어 던져 버려도 된다고 봅니다. 여러가지 상쇄되는 마이크로 팩터가 혼재해서 있고, 각각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기 때문에 잘했냐 못했냐에 대해서 경제학적으로 결론이 안나온다는 소리죠.


문제는 바로 저 인플레이션 그래프 + 실업율이죠.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라잇 이코노믹스나 중요한 방점이 되는 것은 70년대의 세계 경기의 스테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원래 고전 케인즈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필립스 커브입니다. 여기서 고전 케인즈 경제학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장황하고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되니 스킵하고, 혹시 낯설은 분들을 위해서 중요한 것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옛날 케인즈학파는 실업율과 인플레이션이 서로 반비례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따라서 실업율을 낮출려면 인플레이션을 올리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중앙은행에서 돈을 찍어내면 실업율이 내려간다고 믿었던 것이죠.

이런 아이디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70년대 초까지는 말이죠. 그래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때까지 근 30년간 이 아이디어가 꽤 성공적이었다라고 말해줘도 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70년대 들어와서 이게 안맞기 시작합니다. 중앙은행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찍어내도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더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케인지안 - 더 정확히 말하자면  Old Keynesian - 이 물매를 맞게 되고, 드디어 Neo Classical 또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대안으로 각광받게 되죠. 대처라잇 이코노믹스의 초반부는 신자유주의라고 말하기 보다는 통화주의 학파라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더 옳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여담으로 그 이후로 신자유주의는 맞았냐? 아마 레이거노믹스, 대처라잇 이코노믹스 이후로 지난 2-30년간 꾸준히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그것마져도 이제는 문제가 생겼지요. 그때부터 쌓인 부작용에 대해서 지금 아무도 해결책을 못 세우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누구의 잘못이죠?)

하여간 대처라잇 이코노믹스의 성공(?)이라고 해석해도 되는 것이 이 강력한 재정정책 - 중앙 은행에서 통화 공급을 억제하여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 - 을 썼다는 것이죠. 그 결과야 아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플레이션이 감소했죠. 자, 그렇다면 통화를 과감하게 억제했는데 실업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처 집권 초반에는 전보다 훨씬 심하게 악화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 억제정책을 계속 유지한 대처에게는 박수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 중후반에 실업율이 집권하기 전 (낮아진게 아니라 그래봤자 집권하기 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렇다면 단순히 대처가 제대로 대처해서 그렇다? 저는 이 부분에 와서는 약간 주춤거려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여러 경제학자들이 대처의 통화정책이 완전 일관되지 못하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했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니까요. 단순 통화는 줄었는지 모르겠지만, M3이라는 통화에 포괄적인 측도가 있는데, 실증적으로 측정해보면 통치기간동안 커졌다 줄었다 왔다리갔다리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통화정책 덕택으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었다라고 믿기에는 약간 석연치 않다는 셈입니다.

그래도 어쨋든 합쳐보면 그녀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대게 잘했다라고 보는 편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시켰기 때문이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제가 흐강님의 원글에 대한 가장 첫 댓글에서

" 재정파탄, 스테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 등등은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거세게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일치하지 않겠습니까. "

라고 썼듯이 당시의 대처리즘은 대처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들고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좀 좁혀서 단순히 통화정책만 놓고 본다면 당시의 미국이나 영국이나 케인지안이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였고, 따라서 밀튼 프리드만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서 정책을 쓰는 것은 당연했는데, 중요한 것은 강한 반대를 무릎쓰고 과감하게 펼쳤다는 것에 대해서 높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철의 여인 대처가 아닌 그 누군가가 들고 나왔다면 아마 좀 양상이 달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차칸노르님께서 석탄산업 몰락은 잘 한 일이라고 지적하셨는데, 저는 석탄산업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 아래 레드문님이 좋은 지적을 해주셨는데, 댓글에서 저도 마찬가지로 영국 제조업의 전반의 몰락을 이야기했죠. 그 몰락의 기본 책임은 대처에게 있다고 봅니다. 대신 지금 영국은 금융산업이 상당히 발달해 있는데, 이는 빚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금융산업이 전체 GDP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잡아도 5%도 안될 뿐더러, 역사적으로 금융이 산업 전체에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 때마다 경제위기가 터지곤 했다라는 실증적인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효율성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지금은 돌이킬 방법이 별로 없어 보이는, 다른 유럽국가들은 별로 겪고 있지 않는 양극화 문제를 심하게 겪고 있죠.

다시 흐강님의 원글로 돌아가서 "대처리즘이 아니었더라도 (시대 상황상) 영국은 어느정도 비슷한 통화정책/신자유주의 을 받아드렸을 터이고" 흐강님이 주장하시듯 "영국이라는 나라의 역사 그리고 국력 기타등을 볼 때 대처가 아니라도 충분히 길을 찾고 타협을 이루어냈을 것"에 동의합니다.

“There’s no such thing as society. There are individual men and women and there are families.”

그 유명한 대처의 발언이죠. 미국에나 통하지 유럽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차칸노르님이 왜 미국에는 사민주의가 발달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쓴 글에 대해서 상당히 감동받은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는 (유럽에는 있는) 공동체, 또는 연대 의식 대신에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기에 사민주의가 발달할 수가 없고, 더 나아가서 복지국가가 되기에는 요원한 것이라는 요지였던 것 아닙니까. 대처의 저 발언이 말해주는 것은 대처 이후로 영국은 북유럽 국가같은 복지 국가가 되기에는 너무 먼 길을 가버린 것이 아닌가, 그리고 대처리즘이 파괴해버린 가치들을 되돌리는 것은 요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경제는 잘못되면 고통스럽지만 다시 바로 잡을 수도 있고 우리가 어느 정도 사회적인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극복해낼 수 있다고 보기에 한 때의 나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사회적 가치를 파괴한다는 것은 절대로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처리즘은 경제적인 공은 조금 있는 것 같지만, 그것때문에 영국이 파괴된 무형의 가치들을 되돌리기는 훨씬 어려울 것 같고, 따라서 대처가 대단히 훌륭했다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할려다가 정도가 지나쳐서 그동안 쌓아놓은 사회적인 가치를 죄다 없애버린게 아닌지요.

그리고 바로 이점이 지금 대한민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보수 언론들이 대처를 찬양하며 박근혜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우려스러운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