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 장준하 선생(이하 호칭 생략)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글은 여전히 장준하가 타살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주장하기 위하여 쓴 글입니다. 제 추측은, 이승만 정권 당시에 조봉암이 사법살인 당했다면 박정희 독재정권 당시에 장준하가 '권력압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아래는 위키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당시의 역사적 상황 기록들입니다.

장준하는 1975년 들어 평소 잘 만나지 않던 김대중과 만나고, 함석헌·홍남순과 접촉하며 8월 15일, 광복절 30주년을 맞아 모종의 거사를 계획했다. 마침 김영삼이 동남아 여행중이라 그가 귀국한 뒤인 8월 20일으로 계획은 연기되었다.(*1)  장준하의 아들 장호권은 이 당시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일’이 계획되고 있었으며, 장준하가 “박정희를 깨는 것은 민중의 힘으로 역부족이니 게릴라전으로라도 박을 제거해야 한다.(*2) 군부 쪽에도 상당한 연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한다. 또한 1976년 4월에 자신이 테러를 당했을 때 주한 미 대사 하비브가 찾아와 “당신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일이 이뤄질 터이니 몸조심하고 기다려라”(*3)고 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장준하는 재야와 야당 전체를 아우르고 군부 일부가 동조하는 어떤 거사를 계획중이었으며, 여러가지 증언으로 미루어 8월 20일경으로 예정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4] 또한 장준하는 국회의원 재직 시절 사적인 인연이 있던 김재규와 만났는데,(*5) 당시 2군단장이던 김재규는 장준하의 국방에서 의정활동과 청렴상에 감동하여 장준하의 죽음 이후 박선호를 시켜 가족들을 돌봐주었다.(*6) 김재규는 1976년 말, 김재규는 장호권을 남산으로 불러 “부친의 사망사건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10·26 3개월 전에는 미국에 나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미국행을 권유했다.(*7) 장호권은 장준하의 계획에 포함되었던 군내 동조 세력이 김재규 등이며, 10·26도 장준하의 영향을 입은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1 《장준하 평전》 37쪽
*2 《장준하 평전》 46쪽과 48쪽
*3 《장준하 평전》 48쪽
*4  윤재걸, 〈장준하 그 의문의 죽음〉, 《신동아》 1985년 8월호
*5  김재규의 형이 장준하의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장호권의 증언
*6 《장준하 평전》 487쪽 및 정희상, “김재규는 왜'유신의 심장'을 쏘았나”, 《시사저널
*7 《장준하 평전》 50쪽 및 장호권, 〈아버님은 암살당했다〉, 《신동아》 1983년 8월호
*8  김명국, ““장준하-김재규 ‘거사’ 밀약 했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그랬고 인도네시아의 수하르노(이름이 맞나? 귀찮으니까 대략 패스)가 그랬듯 지구촌 각 나라의 민주화 과정에는 '모범답안'이 하나 있죠, 그 것은 바로 '미국의 공작에 의한 독재자 옹립' 후 '그들이 옹립한 독재자들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니까'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밟게 하면서 독재자를 축출하는 것이죠.


박정희의 경우에는 좀 특이하죠. 516 쿠테타 당시 그가 남로당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비토를 당했다...라는 것이 (제가 접한 문헌의 범위에서는) 대세인 것 같은데 박정희가 CIA의 요원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남로당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비토를 당했다'라는 '설'은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있습니다.



우선, 박정희가 CIA 요원이었다는 것은, 떡밥님이 출처를 좀 알려달라고 해서 제가 '한국전쟁'이라는 책에서 읽었다...라고 했는데 아마, 제가 오독을 했거나 책의 저자가 CIA의 역사를 혼동했거나.... 둘 중 하나일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떡밥님 요청에 의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본 바로는 박정희는, CIA가 통합되기 전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단위 정보 부대' 중 하나였던 '미 해군 정보부 요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박정희가 미국 공작원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바로 '에버레디 플랜'이었습니다. 바로, 후세인과 수하르노와 같은 케이스죠. 즉, 미국에 의하여 옹립된 독재자 이승만이 625 전쟁 중 그리고 그 이후의 언행이 바로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여차하면' 이승만을 암살 제거하려는 계획이 바로 '에버레디 플랜'이었고 그 '에버레디 플랜'에 박정희가 미국 공작원으로 가담했었죠.


(이건 제 추측인데 박정희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집념이 강한 항문고착형 성격이라고 하는데 이 당시의 임무가 516쿠테타를 일으키게 한 동기가 되었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419의거 이후의 516 쿠테타를 실제 실행하기 전에 이승만 정권 당시에도 쿠테타 모의를 했다가 '시기가 좋지 않다'라고 판단, 포기한 사실이 있으니까요. 즉, 이승만 정권 때는 '자신의 임무에 대한 강박관념(?)' 그리고 그 것이 419의거 후에 '나 아니면 안된다'라는 판단으로 쿠테타를 실행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박정희는 집권 이후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특히, 장준하가 의문사를 한 후 정확히 일년 후 818 도끼만행 사건이 터지자 박정희는 북한 징벌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미국 외교부는 박정희 달래기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 외교문서를 프레시안에서 보도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검색이 아되어 기억에 의하여 구술하자면 '미국의 입장은 남한 당국이 미일중러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균형을 깨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얼마 전에 제가 언급한 주한미군의 배치 관련하여 카터와의 알력. 거기에 부마사태..... (그리고 비록 미증유의 두번의 오일사태 따문에 한국의 중공업이 좌초의 위기에 서있는 현실에서) 미국으로서는 박정희는 더 이상 쓸모있는 카드가 아니었고 박정희에게 이승만을 암살라는 지령을 내린 것처럼 김재규는 박정희를 암살하라.......는 미국 CIA의 지령이 있었다.......... 그리고 518학살 당시에 미국의 괴기할 정도의 침묵... 등이 미국 CIA와 김재규의 커넥션, 그리고 전두환 도당의 신군부와 미국 CIA의 커넥션을 '추측하게 하는' 역사적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인용한 부분 중 아래.

"주한 미 대사 하비브가 찾아와 “당신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일이 이뤄질 터이니 몸조심하고 기다려라"


"김재규는 1976년 말, 김재규는 장호권을 남산으로 불러 “부친의 사망사건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10·26 3개월 전에는 미국에 나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미국행을 권유했다.(*7) 장호권은 장준하의 계획에 포함되었던 군내 동조 세력이 김재규 등이며, 10·26도 장준하의 영향을 입은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주한 미 대사 하비브가 찾아와 '당신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일'...................? 바로 장준하의 최종결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민주화 거사입니다. DJ를 별로 만나지 않았던 장준하가 DJ를 만나면서까지 결심했던 일 말입니다.




이 주장(또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당시 미국은 독재자 박정희를 '버리는 카드'로 인식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버리는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바로 '미국이 박정희를 버리겠다'라고 결심하게 했을까요? 바로 DJ 납치 사건과 문세광 저격 사건입니다.


문세광은 〈김대중 구명 운동 단체〉의 회원이었다는 주장이 김형욱 회고록에 나옵니다. 그리고 'DJ 납치 사건'은 일본이 비록 한국의 민주화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나라에서 야당 지도자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심각한 사태'로 규정 한일간의 마찰이 심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7.4 공동성명. 7.4 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으로 '주한미군 철수선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닉슨의 중국(당시 중공) 방문의 영향..... 문제는 북한의 김정일(김일성이 살아있었지만 김일성이 아니고)과 베트콩에서 이 닉슨의 중국 방문을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했댔습니다.(이 부분의 역사기록은 제가 아크로에서 첨부 파일로 올린 적이 있었는데 어쨌든..)


또한, 물론 그 이후에 베트남이 패망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게된 박정희 정권의 역사적 사실이 새로 발생하기는 했지만 카터 정권과의 알력... 등은 7.4공동성명이 '정치적 쇼'라고 비난받는 이유 중 하나이죠.


어쨌든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했지만 뜬금없는 주한미군 철군.... 미국 닉슨은 비록 7.4 공동성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지만 '박정희를 버리는 카드'로 인식하기 충분했죠.




장준하 의문사.


그동안 지구촌에서 보여준 미국 CIA의 공작정치의 '모범답안'을 생각한다면 장준하 의문사는 박정희를 버리는 카드로 인식하기 시작한 미국과 그런 미국의 인식과는 관계없이(또는 그에 힘입어) 모종의 결심을 했던 장준하의 의문사.



어쩌면, 장준하의 의문사는 역사 속에 작은, 당연히 진실은 밝혀져야겠지만, 사건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지구촌 각 나라에서 민주화 과정에서 깊게 개입된 CIA의 검은 손. 장준하 의문사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반추할 때마다 저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무자비함'보다는 '전지전능한 미제국주의의 망령'이 먼저 떠올려집니다. 즉, 전지전능한 미제국주의와 그 제국주의에 의하여 버려진 카드인 독재자.......의 권력다툼에서 '어.쩌.면' 장준하는 비극적인 역사적 소품에 불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뱀발)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한 '한국법의학회'의 성명은 '솔직히' 나는 믿지 못하겠다. 그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느니 한 때 이슈가 되었던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와 관련된 기사를 여기에 다시 재인용한다.


수학협회의.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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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