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거창한 평은 아니고요, 지뇽뇽님과 베이지언님의 글을 보면서 위의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이덕하님과는 일면도 없지만 이전 스켑렙에서부터 그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기도 하고. 물론 영어번역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강석하님이 말한대로 베이지언님이 대학원생인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에서 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가끔 학술대회에 가면 열정에 찬 대학원생, 포닥들이 얼굴 벌겋게 달아 올려가면서 발표자를 공략하기 위해서 “못된(?)" 질문을 찾아내느라 눈알을 신나게 굴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의 질문은 진짜 몰라서 하는 것 일수도 있지만, 일종의 힘자랑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지역적인 문제를 질문하셔서 자신의 실력을 끼워넣어 한참 떠들곤 하지요. 그런 모습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실제 그런 성향은 아주 늦은 하수에 가깝지요. 어떤 사람은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데, 그 내용은 사실 매우 날카롭고 본질을 정확하게 찌르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은 나중에 끝나고 따로 불러서 정식으로 수인사를 하고, 아래 연배면 크게 격려를 해줍니다.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들이죠. 이런 인간들이 결국은 일을 냅니다.

 

      

국내에 나와있는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은 대부분 한번은 본 것 같은데, 깨놓고 이야기하자면 이덕하님의 글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주류 특유의 몸사림, 또는 예쁜 말투, 이미 다 정리된 논지전개,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외국의 이론을 좀 더 나은 영어실력으로 옮겨둔 정도로 보였습니다. 지식의 소매상...이죠. 자신의 이론이 없으면. 지식 소매상도 잘 하면 한 10년은 느끈하게 버팁니다만 더 큰 도매상이 나타나면 보따리 사야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인문분야에서 소매상이 아닌 분으로 한 분이 있습니다.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님인데요, 이 분에게는 자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의 세계관이나 이론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의 진화심리학 관련 지형을 보면 80년대 유행한 맑스 이론의 수입공급 경쟁이 떠올랐습니다. 더구나 더 최악인 것은 자신의 이론이라고는 없는 주제에 굉장히 멋있게, 화려한 변설로 칠갑을 하는 류의 책입니다. 예를 들면 대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이런 식으로 약을 치죠.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이야기라는 말인지. 노벨상 수상자에게 사인을 받는다고 IQ가 +10 되지 않겠죠. 이런 책의 결론은 자기자랑의 변주곡일 뿐입니다. 그게 심하면 진정성을 의심받고 더 심하면 역겹죠. 개똥같아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소리에 저는 귀가 더 솔깃합니다.

 

      

오해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덕하님 글에서 어떤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어떤 주제에 대한 강박적 탐구심이라고도 보여지고요, 일종의 오다꾸 정신인데요, 저는 이런 정신상태의 인간이 가치있게 느껴집니다. 이에 비해서 몇 분을 제외한 주류그룹, 주로 안정된 직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박함이 안보이고 나와바리 의식밖에 안보입니다. 나와바리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쉽게 하는 이야기는 보통 2가지 인데요 1. 학위있는가 ? 2. OOO책, OOO의 글 더 읽어보고 와라. 이런 식이죠. 1번 운운하는 것은 논쟁의 가치조차 없고요. 2번에는 좀 할 말이 있습니다. 간혹 잘 정리된 이론을 모르는 사람들의 무식한(?) 질문을 살다보면 받곤하는데요, 그 때 정말 잘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의 무식한 질문에도 매우 적절하게 답을 해 줍니다. 1년간 모르고 헤맨 개념을 대가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깨치게 해줍니다. 아주 쉽게. 이게 잘안되는 사람은 사실 전문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도 잘 모르는 인간들이 장광설로 자신의 무지를 까무쁘라주 할라고 하죠. 성철스님 말대로 도가 통하는 것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단박에 깨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요즘같은 세상에 그 분야를 잘 이해하려면, 특히 집중적으로, 학위과정이 가장 보편적인 길입니다. 이미 앞서의 방법론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그 길대로만 따라가면 대강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지도교수가 좋은 사람일 때만 가능하죠. 대한민국 박사학위 중에서 80%는 내버려도 될 정도라고 저는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별 경쟁력이 없죠. 저는 음악에는 아마추어이지만 관심이 많은 편이라 가끔 주류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집니다. 물론 학위를 한 분들이지만.... 진짜 재미가 없어요. 한 시간 시간을 주고 일반 대중을 앞에 두고 썰을 푸는 시합을 한다면 제가 음악학 박사 1,2명은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헤헤.... 그분들은 제가 혼자 조잡하게 공부한 음악지식을 늘어놓는 것 조차를 매우 역겨워합니다만. 물론 저는 아마추어이니까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나와바리 안에서 도망가지 못하고 지켜야 하니까 지형적으로 불리한 입장이죠. 그래도 그 안에서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어이구.. 저런 인간이 음악을 왜하지 ? ” 이런 맘이 생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독학형 <입자물리학> <분자생물학> 연구자는 보질 못했습니다. 이게 집에서 책 사다놓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돈이 있다고 가정에서 원자로나 인공위성 발사체 이딴 것 만들지 못합니다. 물론 그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다간 나이 50쯤 되면 대략 대학원 석사 1년 수준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이 이런 <소립자 물리학> 이나 <분자생물학> 쪽인지는 좀 의문이 듭니다. 일전에 경제학교수 4명과 증권사 지점장간에 논쟁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경제학 교수 묵사발 났습니다. 대학 학사학위 밖에 없는 지점장의 논리와 경험에 교수들 개박살났었죠. 물론 경제학 박사들 이야기도 틀린 게 아니었지만 그것 책이 있는, 남의 이야기죠. 그래서 이런 우스개 말이 있죠. 경제학자들에게

"현실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항상...."       . ㅋㅋ 문제는 항상.. 이것이죠. 저는 경제학이 과학인지 정말 의문이 듭니다.

     

 

제가 국외 잡지를 좀 보는 편인데(정확히 표현하지만 받아만 두는), 그런 잡지 필자 중에는 정말 글 재미있게 귀에 쏙쏙들어오게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박사 학위자는 아니고 대학마치고 일찍부터 과학 프리랜스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입죠. 그런데 그 글의 수준은 우리나라 교수 수준보다 더 정확하고, 넓고 높습니다. 물론 한 분야, 지극히 좁은 분야에서는 해당 분야 학위자를 이길수는 없지만 이런 지식보다는 보다 <통섭>적인 관점의 글이 더 의미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개별적 지식에는 어떤 노벨상 수상자도 이기질 못하죠. 노벨상은 그런 지역적, 배타적 지식의 발견이 아니라, 그 분야 지식을 하나의 틀로 묶어주는 <도구형> 종합지식에 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어권의 경우에는 과학저술가로 살아가기에 충분합니다만 우리는 이런 시장이 거의 없죠.이인식 선생 정도. 이인식 선생은 요즘도 조선일보 기고하시나 모르겠네. 우리나라 과학글 대부분은 과학기자 아니면 대학선생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지만 재미도 없고, 깊이도 없죠. 대부분 외국잡지 소개하는 정도. 그것도 때때로 엉터리로. 이덕하님이 이런 일을 하시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의 아무도 안보는 학술논문보다 깊이있는 대중적인 글이 더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해도 해야하고요. 변방의 진화심리학을 이렇게 끌어낸 일에 모든 주류 진화심리학자들을 이덕하님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마땅히 그래야하고요. 그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박사들 100명이 하지 못한 일이죠. 싸롱에서 아줌씨들 앉혀놓고 말말말랑한 노가리풀 생각만 하고 있었지, 욕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은 없었죠.

    

 

아침에 글을 쓰고 보니 좀 횡설수설한 것 같은데, 저는 <절박함>이 결국은 <나와바리>를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이 결국은 <재주>를 이기듯이. 우리나라 어린 영재들이 유학가서 실패하는 이유는 <절박함>과 <호기심>이  함량미달이기 때문이죠. 

하여간 논쟁에 참여한  3분 모두 분들에게 큰 발전과 즐거움 계속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