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을 모르시는 분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길...

 

Bayesian, 지식과 용기가 있다면 제 글의 내용을 비판하십시오 (이덕하)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72

 

이덕하씨에 대한 응답 (Bayesian)

http://bayes.egloos.com/3028773

 

'이덕하씨에 대한 응답'에 대한 응답 (이덕하)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73

 

계속하여. (Bayesian)

http://bayes.egloos.com/3028817

 

Bayesian-지뇽뇽-이덕하 입씨름을 마무리하며 (이덕하)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74

 

정리하며 (Bayesian)

http://bayes.egloos.com/3028945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접근 방식 (지뇽뇽)

http://jinpark.egloos.com/1295891

 

'학문의 이름을 내세우고 하는' 근거 없는 논의 전개?? (지뇽뇽)

http://jinpark.egloos.com/1295965

 

마무리. Evidence-based Science (지뇽뇽)

http://jinpark.egloos.com/1296075

 

()과 학위, 전문성과 자격증 (Alan Kang)

http://akngs.tumblr.com/post/47153405888

 

이덕하씨에 대한 수준 낮은 비판을 보며 (Seokha Kang)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75

 

 

 

입씨름은 마무리하기로 했고,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 싶다.

 

 

 

과학에서 실증 빼면 시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실증이 과학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에서 심장이나 뇌를 빼 내면 곧 시체가 되지만 심장이나 뇌가 인간의 전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심리학계에서 행동주의의 전통과 정신분석의 전통을 상당히 싫어한다. 둘 다 심리학계에 기여한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경우 실증의 측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꽤 많이 읽었는데 내 생각에는 프로이트는 엄밀한 실증 방법을 잘 몰랐다. 그는 나름대로 실증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 방법이 엉망이었다. 프로이트의 글에는 추리 소설 뺨치는 서스펜스가 있다. 문학적으로 인정 받아서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또한 과학적 상상력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대담한 상상력이 엉터리 실증 방법과 결합하면 그야말로 소설이 된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면 예술이 되지만 과학자가 과학 이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소설을 쓰면 개판이 된다.

 

내가 자크 라캉을 많이는 모르지만 그는 아예 실증을 할 생각도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과학의 교권(영역)에서 놀면서 과학의 핵심 기준 중 하나인 실증을 무시한 것이다.

 

어떤 정신분석가는 정신분석이 과학이 아니라 해석학이라고 우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과학의 교권에서 놀았다. 즉 인간 심리 현상을 설명하겠다고 나섰다. 과학의 교권에서 놀면서 실증을 무시하면 해석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 과학이 된다.

 

정신분석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결합했기 때문에 과학계 밖에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실증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과학자들 대다수로부터는 외면당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경우에는 그 반대 편향을 보인 것 같다. 그들은 실증에 너무나 골몰한 나머지 과감한 상상력을 금기시했다. 결국 그들의 연구는 너무 지지부진하고 따분해졌다. 다행히 인지 혁명이 일어나 심리학계가 활발해졌으며, 진화 생물학까지 결합하여 더욱더 풍성해졌다. 인지 심리학자든 진화 심리학자든 행동주의 심리학자에 비해 훨씬 더 과감하게 과학적 상상력을 펼쳤다. 물론 인지 심리학과 진화 심리학은 정신분석처럼 실증을 무시하거나 엉망으로 실증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실수는 했지만.

 

 

 

실증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착상이 있어야 그것을 검증 가능한 가설로 다듬을 수 있다. 새로운 착상을 위해서는 과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망성 있는 가설들이 무더기로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와 진화 심리학> 시리즈에서 진화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하고 진화 심리학적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을 주류 사회 심리학과 대조하면서 말이다. 이런 시도 자체가 진화 심리학 불모지인 한국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터넷에 설익은 글을 공개했다.

 

 

 

대박 아이디어 또는 대박 가설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그 이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고 한다. 몇 년 후에 일식 관찰을 통해 일반 상대성 이론이 상당히 그럴 듯하게 입증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일식 관찰 이전에도 자신의 이론에 대해 확신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이론이 너무나 우아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세계적인 수학자들과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해 토론을 했다. 그 결과 수학자 힐베르트가 아인슈타인보다 약간 먼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식을 발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초조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힐베르트가 “아인슈타인이 거의 모든 작업을 했고, 나는 마지막 단계의 작업을 약간 했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둘 사이에 지저분한 지적 소유권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는 토마스 쿤의 과학 철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패러다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과학적 상상력이 엄밀한 실증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에 대다수 과학자들과 과학 철학자들이 동의할 것 같다.

 

너무 실증에만 골몰하게 되면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때로는 실증 문제는 잠시 제쳐 두고 패러다임에 대해 논의하고,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개념이나 이론에 대한 논의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주류 사회 심리학자들(또는 주류 심리학자들)이 너무 실증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 담론을 꺼리는 것 같다. 정신분석과 진화 심리학은 거대 담론이다. 주류 심리학자들이 당장 실증될 수 있는 구슬들을 모으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면 정신분석과 진화 심리학은 그 구슬들을 꿸 거대한 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행동주의 심리학과 현대 주류 심리학자들에 비해 정신분석과 진화 심리학은 야망이 크다. 상상력도 더 대담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사변(speculation)을 좋아하는 것 같다.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면 정신분석의 “실”과는 달리 진화 심리학의 “실”은 아주 잘 정립된 진화 생물학이며, 정신분석과는 달리 진화 심리학에서는 과학계에서 상당히 잘 정립한 검증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기초 과학에 잘 투자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과학 기술에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더라도 온갖 학문에 엄청나게 투자한다.

 

한국 과학자들은 미국 과학자들에 비해 당장 실증할 수 있는 연구에 너무 골몰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특징이 기초 과학에 덜 투자하는 한국 정부의 편향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생물학계를 보자. 분자 생물학으로 상징되는 분야에서 한국 생물학은 상당히 발전했다. 반면 진화 생물학으로 상징되는 분야는 거의 불모지다. 진화 생물학의 경우 상대적으로 실증이 어려워 보인다. 또한 상대적으로 실증보다는 상상력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준다. 당장 돈 버는 데 별로 쓸모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진화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에는 실증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개념, 이론, 가설, 패러다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초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에서는 실증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진화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이 그런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다른 분야와 달리 진화 심리학의 경우 실증 방법론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많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진화 심리학에서 실증을 논할 때에는 실증 방법론에 대한 이론적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직접적 실증보다는 썰을 풀 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야기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에 대한 반감을 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과학계의 실증에 대한 조급함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당장 실증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조급함을 버리지 못한다면 조그만 물고기를 꾸준히 잡을 수 있지만 고래 사냥을 하기는 힘들다.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과학적 상상력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 실증의 끊을 놓으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더라도 잠시 느슨하게 풀어놓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

 

나는 “아직 가설일 뿐인 명제”와 “잘 입증된 명제”를 구분할 줄 알고 대중에게 그것을 잘 구분해서 이야기한다면 실증을 잠시 제쳐두더라도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전에 쓴 글에서는 이런 구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혼동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고쳤다. 따라서 요즘 쓰는 내 글이 대중에게 진화 심리학계의 현 상황을 엉뚱하게 전달할 위험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당장 실증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와 과학적 상상력이 위축될 수 있다. 그럼 결국 소소한 발견에 만족하는 분위기가 된다. 야망과 상상력이 없는 “성실한” 과학자들만 모이면 실적은 조금씩 안전하게 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풍토 속에서 대박이 나오기 힘들다.

 

한국이나 일본이 경제력, 인구, 교육 수준 등에 비해 대박 연구가 적은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기존 연구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기존 연구를 뛰어넘는 과감한 상상력을 금기시하는 아시아 과학계의 문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한한 가설 공간(hypothesis space)에서 가설 설정 수준에서 덜 헤매기 위해서는 가설 설정 수준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착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영어권 진화 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가 자신의 책에서 실증적 근거가 빈약한 착상을 이야기하는 경우를 꽤 많이 본 것 같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몇 년 후에 논문에 등장하기도 한다. 저명한 과학자의 감(gut feeling)을 어느 정도 믿고 실증을 시도해 본 사람들이 쓴 논문에 말이다.

 

나도 내 감에 바탕을 둔 가설들을 여러 번 인터넷에 쓴 적이 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퍼부었다. 물론 나는 저명한 과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내 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도 억울할 것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착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실증적 근거가 없는 착상이라면 감히 이야기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가망성 있는 가설로 보이는데요”라는 답이나, “내가 보기에는 이런 이유 때문에 그 가설은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데요”라는 답이나, “그 가설은 이미 다른 학자가 연구했는데요”라는 답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실증이 과학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가설일 뿐인 명제”와 “잘 검증된 명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라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실증 문제를 잠시 제쳐 두고 여유 있게 패러다임과 착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동료 검토(peer review)는 패러다임 수준, 착상 수준, 가설 설정 수준, 검증 수준, 개념 수준, 이론 수준 모두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대박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나라도 그것을 혼자만 꿍치고 있다가 연구를 몰래 더 해서 논문으로 발표하겠지만.

 

 

 

이덕하

201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