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티픽 크리틱스(http://scientificcritics.com)의 강석하 님의 글입니다.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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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esian과 박진영씨(지뇽뇽)이 이덕하를 비난하고 나섰다. (논란은 다음 링크를 보라.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74)


그 둘은 이덕하씨가 학계의 룰조차 모르는 사이비라는 듯이 떠들지만 과학저널리즘, 과학저술, 연구에 십여년 이상 관심을 갖고 몸담아온 내 눈에는 대학원 물 조금 먹은 풋내기들이 자신들의 주제를 모르고 하는 비난으로 보인다. 이덕하는 과학 글쓰기의 룰을 체득한 모습이 보이지만 그에 대한 비난에서는 전혀 개념이 없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둘은 공통적으로 이덕하씨가 글에 "문헌을 검토해보진 않았지만 어떠할 것 같다." 같은 표현을 자주 쓰거나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가설을 펼친다고 비난한다. 


과학자들과 수준높은 과학저술가들은 "내가 모르는 것"과 "누구도 모르는 것"과 "나는 모르는데 알고 있는 전문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 세 가지를 명확하게 구별해 인식한다. 


논문이나 과학서적에는 세 번째 표현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과학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연구가 되어 있는지를 대개 인지하고 있다. 저술가들도 완성된 글을 위해서는 모호한 표현을 남겨두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직접 조사를 하거나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등 노력을 들여 확인을 한다. 그렇다고 이런 표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드물게 "내가 조사해 본 바로는 이러이러한 것이 없더라."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자기가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과 과학저술가들은 또 "나의 의견"과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밝혀진 사실"을 구별한다.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이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사실로 밝혀진 부분과 가설 혹은 의견으로 남겨진 부분은 표현에 따라서 혼동할 수 있지만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알려진 내용이 아닌 남의 의견, 남이 밝혀낸 부분 (자기가 밝혀낸 부분도)은 레퍼런스를 달아 출처를 밝힌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 때에는 해당 부분의 근거자료로 가서 논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데에 대개 신경을 쓰지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과학자나 과학저술가의 글들을 읽어보면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박진영씨와 Bayesian은 이덕하씨가 데이터 없이 주장과 가설만 늘어놓는다고 비난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들이 비전문가에 더 가까워서 위에 나열한 개념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역사가 깊지 않아 아직 밝혀내야 할 부분이 많고 상대적으로 밝혀진 부분이 넓지 않기 때문에 진화심리학적 가설들을 이야기 할 때에는 논리적인 근거 이상을 대기 힘든 경우가 많다. 뚜렷한 근거 없이 정황적인 단서들과 논리로만 논의를 펼쳐나가는 모습은 논문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과학자나 유명 과학저술가의 글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내가 보기에 이덕하씨에 대한 이런 지적은 논문이나 조금 읽어봤을뿐 시야가 좁아서 벌어진 수준 낮은 비난이다.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라는 지도교수의 호통은 풋내기 대학원생을 가르칠 때나 쓰는 소리지 아무데나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원칙이 아니다. 교수는 논문을 내야 하니까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그는 당신과 학술지에 실을 논문을 쓰자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가 없는 분야에는 모두가 입 닥치고 있으라는 말인가? 이미 알려진 내용만 말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논문을 쓰지 못 할 거라면 입 닥치고 있으라는 말인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인터넷에 자신의 '의견'임을 주지시키며 쓰는 것조차 비난할 일인가?


이덕하씨의 글이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덕하는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의 글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그는 어떤 것이 자신의 의견인지를 확실히 하며, 어떤 부분이 자신이 모르는 것인지 모두가 모르는 것인지를 읽는 사람들이 혼동하지 않게끔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덕하씨는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둘은 이덕하에게 심리학이 어쩌고, 연구가 어쩌고 하면서 비난한다. 우습게도 둘 다 모두 풋내기 대학원생인 것 같다. 이덕하가 논문을 제출해 심사를 맡게 되거든 그 부분을 지적해 탈락시키거나 전문서적을 출판하면 지면을 통해 비판하면 될 일이다. 인터넷 상에 올린 글을 가지고 글의 내용에 대한 지적도 아닌, 남에게 글을 쓰라, 말아라, 이렇게 하지 못할 거면 쓰지 말아라 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이덕하가 <사이언티픽 크리틱스>에 기고한 최재천, 김명운에 대한 비판 글을 보라. 비판의 대상이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오류나 저서의 특정 부분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을 논리적으로, 필요한 경우 반대 근거를 대며, 지적하고 있다. 이덕하에 대한 비판과의 수준을 비교해보라.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 대한 과학적 비판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2&no=262


진화심리학은 호주제를 옹호하는가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2&no=271


최재천, 호주제 그리고 자연주의적 오류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mode=&skey=%C3%D6%C0%E7%C3%B5&x=-1067&y=-78&section=79&category=85&no=290



박진영씨의 저서를 두고 이덕하가  진화심리학의 잣대로 이리저리 비판도 하고 주석도 다는 꼴이 못마땅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덕하씨의 의견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과 학계의 견해를 충분히 나누어 설명하고, 책에서 소개한 사회심리학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인지, 저자의 의견을 비판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이덕하의 글이 못마땅하면 그의 글에서 오류를 찾아 지적해야지 "진화 심리학자와 주류 사회 심리학자 사이의 간극을 메워 보고 싶다"라는 그의 포부를 두고 빈정거릴 뿐이다. 


둘의 이덕하씨에 대한 비난은 딱 여기까지다. 이덕하씨의 글을 인용하면서 논리전개가 틀렸다거나 문헌을 잘 못 이해해 오류를 범했다거나 하는 부분을 꼬집어 보이는 지적은 전혀 없다. 그의 글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얻게 될까봐 우려된다면서도 잘못된 지식의 사례는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학위가 없기 때문에 그의 글이 잘못됐다고 의심된다는 의미인가?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조바심에서 한 마디 해두자.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 Carl Zimmer는 글솜씨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을 비롯한 생물학 여러 분야에 해박하다. 내가 대학원생으로 있을 때 우리 연구실에서 발표한 기생충의 진화에 관한 논문을 그의 블로그에 소개했다. 나는 논문의 discussion 부분에 대해 지도교수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 내용을 추가시킬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워낙 세세하고 까다로운 분야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엄두도 나지 않았기에 그의 능력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학회에 참석한 학자들 조차 다른 연구자들의 발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많다.) 나는 그가 박사학위가 없다는 것 까지는 알았지만 전공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영문학 학사가 학력의 전부라는 사실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마도 이덕하씨가 연구자로의 훈련은 안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글의 수준을 제한할 수는 없다.



이덕하씨에 대한 비판을 비판하는데 두 사람이 함께 묶인 데 대해 당사자들이 불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점이 혹시 기분이 나쁘다면 시간을 내어 어느 것이 박진영씨의 것이고, 어느 것이 Bayesian의 것인지 나누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