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마이뉴스 탄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편파 왜곡 보도'를 하는 오마이뉴스의 행태의 반동으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속된 말로,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조중동'의 '편파 왜곡 보도'는 풋~하고 비웃어주면 되지만 기대했던만큼 실망도 컸으니 적개심을 가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요즘은 그나마 이미 물 다버려놓은 오마이뉴스에 기대조차 하지 않습니다만)


'오마이뉴스 탄생'에 큰 의미를 두는 이유는 바로 언론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려는(또는 나누어주려는) 참신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언론권력의 해체 내지는 분점 시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오마이뉴스의 탄생은 언론혁명이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특히 정보화 시대에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나누어줄 기회를 부여했다는 것은 오마이뉴스의 창간 정신을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숭고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창간 정신'은 사라지고 오마이뉴스의 보도 행태는 제도 언론의 잘못된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박정희의 친일 행각'의 '증거 중 하나'인 '친일 혈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질못된 행태를 최근에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장준하 의문사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부적절한 표현에서 다시 발견합니다.



전자의 경우가 '팩트 미확인'이라는 언론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속된 말로 '조중동'이 애용하는, '취재원의 보호'라는 미명 아래 '소식통'이라는 표현으로 남발되는 '창작 작문 수준의 보도'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인정하지 않는 '연좌제적 표현'을 썼다는 것입니다.(후자의 경우에는 한겨레의 '권태선 칼럼'에서도 같은 표현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선, 박정희 친일 혈서 사건을 볼까요?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로 임관되었을 때 썼다는 혈서. 이 '혈서의 성격'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여기서는 '혈서의 성격'은 언급하지 않고 실제 그 '혈서의 존재 여부의 확인'만을 언급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혈서의 존재 여부는 '팩트'입니다. 바로 만주신문에 그 혈서가 '보도된 것'이 국내 언론들에게 인용 보도되었으니까요.


문제는 오마이뉴스가 '박정희의 친일 혈서'를 근거로 박정희의 친일행각을 주장했을 당시에는 그 '혈서의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련 사실을 조사하여 제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만주신문'을 가장 많은 발행 회수들을 보유한 곳은 서울대였고 그 보관물에는 '박정희 친일 혈서'가 보도되었다는 그 발행일자의 신문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당시 오마이뉴스의 편집장(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과의 인터뷰에서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고' '그런 기사가 있었다고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실제 혈서 논란이 되었을 때는 '혈서가 존재한다'라는 주장만 있었지 '혈서의 실제 확인'은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제 기억으로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후에 일년 쯤 지난 시점입니다만) '혈서의 실제 확인'이 되었지만 이 사실, 그러니까 주장 이후에 나중에 팩트로 귀결이 났다고 해서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음에는 장준하 의문사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표현입니다.


인혁당 사건과 마찬가지로 장준하 의문사에서 박근혜가 책임져야할 부분은 어디까지일까요? 우선, 장준하 의문사 전후의 사건 일지부터 정리하겠습니다.


1972년 12월 23일 : 유신헌법에 의거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제8대 대통령으로 당선
1973년 08월 08일 : 김대중 납치 사건 발생
1974년 08월 15일 : 문세광 사건으로 육영수 여사 사망
1974년 08월 16일 : 프랑스 유학 중이던 박근혜 귀국.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디 역할 수행
1975년 02월 12일 : 유신 헌법 찬반을 묻는 재투표가 실시
1975년 03월 06일 : 박근혜와 최태민이 만난 시점
1975년 04월 08일 : 인혁당 사건 사형선고자들 사형 집행 (대법원 선고 후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
1975년 08월 17일 : 장준하 의문사


1) 지난 대선에서도 의혹이 제기되었던 최태민 사건. YS의 아들 김현철의 '주장의 근거'였던 사건으로 박근혜가 권력지향적이며 포스트 박정희를 꿈꾸어왔다는 추측의 근거가 되는 사건입니다.

2)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시집가라'고 수차례 채근했다는 사실

3) 박근혜가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지 일년 안에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과 장준하 의문사 사건이 발생



상기 1번과 3번만 고려한다면 '포스트 박정희를 꿈꾸는 박근혜'가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2번 사항을 추가로 고려한다면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권력에 영향을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마 해석의 차이가 갈릴 것입니다.


인혁당 사건과 장준하 의문사에 대한 저의 입장은


첫번째) 인혁당 사법살인과 장준하 의문사에 대하여 박근혜가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주지는 않았다.

두번째) 법적인 책임을 묻는 의미에서 판단한다면 인혁당 사법살인과 장준하 의문사에 대한 박근혜의 '구체적인 정치적 영향력 행사'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박근혜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세번째) 그러나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잘못된 인식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네번째) 또한, 장준하 의문사에 대하여는 과거사 규명이라는 차원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박근혜가 언급하는 실질적인 '국민통합'의 실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번째와 네번째의 저의 입장에 대하여는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하시거나 또는 동의를 하지 않아도 '시시비비를 따질 항목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아참, 세번째 항목에 대하여 '똥차 논리'를 동원하여 그러면 문재인은?이라는 황당한 질문은 하지 않으시길. 특히,콕 찝어서 지목하자면 흐강님이 잘 쓰시는 표현인 '박근혜가 잘못한다지만 문재인이 당선되었으면 더 심했을 것'이라는 정말, 진영논리 쩌는 주장은 3+입니다. 3+ = 삼가)



첫번째와 두번째 이유에 대하여는 저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분도 계실 것이고 저는 그 반대되는 의견에 대하여 그 의견을 인정한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네번째 항목에서 장준하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국민통합의 실천적 행동'으로서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의 관련 기사에서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라는 표현이 두번 나옵니다. '벅정희의 딸 박근혜'라는 표현은 상기 첫번째와 두번째의 저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다해도 '부적절한 표현'입니다.(한겨레의 권태선 칼럼에서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한 박근혜는 상기 첫번째와 두번째 이유 때문에 법적 책임을 추궁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퍼스트 레이디 직분으로서의 '권력남용'에 대한 추궁이지 '박정희의 딸'이라는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인정하지 않는 연좌제적 표현을 쓰면서 박근혜를 공격하는 표현이 과연 적당한 표현일까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