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선설과 성악설 ---

 

국어사전에 따르면 “성선설”과 “성악설”은 다음과 같다.

 

성선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선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그릇된 욕망 때문에 악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학설. 중국의 맹자(孟子)가 주장하였다.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42496&q=%EC%84%B1%EC%84%A0%EC%84%A4

 

성악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악으로 보고, 도덕적 수양은 교육을 통한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설. 인성에 대한 순자(荀子)의 견해이다.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42595&q=%EC%84%B1%EC%95%85%EC%84%A4

 

이번에는 백과사전을 살펴보자.

 

성선설(性善說)은 공자(孔子)와 더불어 유가(儒家)의 대표적 사상가인 맹자(孟子)가 주장한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학설로, "인간의 본성(本性)은 선()하다"는 학설이다.

맹자의 성선설의 주된 내용은 사람의 본성(本性)은 본래 선하고, 누구나 측은(惻隱) · 수오(羞惡) · 사양(辭讓) · 시비(是非)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 능력들은 수양을 통해 각각 인() · () · () · ()의 덕()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http://ko.wikipedia.org/wiki/%EC%84%B1%EC%84%A0%EC%84%A4

 

성악설(性惡說)은 공자(孔子) · 맹자(孟子)와 더불어 유가(儒家)의 대표적 사상가 중 한 명인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가 주장한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학설로, "인간의 본성(本性)은 악()하다"는 학설이다.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저서 《순자》의 〈성악(性惡)〉편에 나타난 화성기위(化性起僞: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라는 명제로 대표된다. ,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C%84%B1%EC%95%85%EC%84%A4

 

철학적으로 깊이 파고 들면 선악 개념 자체를 두고도 엄청난 논쟁을 벌일 수 있지만 이 글에서 선악 개념에 대해 논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이타심, 정직, 공평, 죄책감, 양심, 동정심, 정의감, 양보, 도덕, 사랑, 자선, 성실 등은 보통 선으로 분류되고, 이기심, 질투, 시기, 권력욕, 욕심, 기만, 증오, 강간, 살인, 절도, 강도, 위선, 편애, 육욕, 독점, 착취, 게으름 등은 보통 악으로 분류된다.

 

 

 

--- 프로이트의 성악설 ---

 

프로이트의 이론은 일종의 성악설이다. 그는 식욕, 성욕, 공격성 등을 담고 있는 이드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반면 도덕성을 담고 있는 초자아는 이후에 생긴다고 보았다.

 

즉 정상적 여성의 도덕적 수준이 [남성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의] 초자아는 절대, 우리가 남성에게 요구하는만큼 엄격하지도, 공평무사하지도, 감정적 근원에서 독립적이지도 않다. 여성에 대해 옛날부터 있어왔던 평가, 즉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의감이 덜하며, 삶의 커다란 필요성에 덜 굴복하려 하며[자기 멋대로 하려하며], 더 자주 애정어린 또는 적대적인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는 평가는 위에서 유도했던 초자아 형성에 있어서의 변이로 충분히 그 이유가 설명된다.

(양성의 해부학적 차이에 따른 몇몇 정신적 결과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21)

 

프로이트에 따르면 거세 공포가 초자아의 발달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착하게 살지 않으면 고추를 잘라버리겠다”는 협박 때문에 초자아가 발달한다. 따라서 이미 고추가 없는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만큼 큰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초자아가 덜 발달한다는 것이다.

 

고대 동양의 성악설에는 프로이트의 황당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또는 거세 콤플렉스)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초기 상태 즉 본성이 악하며 도덕성은 교육에 의해 생긴다고 이야기한 점에서는 비슷하다.

 

 

 

--- 백지론, 성악설, 성선설 그리고 진화 심리학 ---

 

거칠게 정리하자면 선과 악에 대한 본성론에는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1. 선한 측면의 상당 부분도 선천적이고, 악한 측면의 상당 부분도 선천적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대체로 받아들이는 입장.

 

2. 선한 측면의 상당 부분은 선천적이지만, 악한 측면은 몽땅 후천적이다. 성선설.

 

3. 악한 측면의 상당 부분은 선천적이지만, 선한 측면은 몽땅 후천적이다. 성악설.

 

4. 선한 측면도 몽땅(또는 거의 모두) 후천적이고, 악한 측면도 몽땅(또는 거의 모두) 후천적이다. 백지론.

 

현대에는 목마름, 배고픔, 성욕 등이 선천적인 욕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따라서 순수한 백지론자는 없다. 어쨌든 상대적으로 백지론에 가까운 사람들은 많이 있다. 편의상 그런 사람들도 백지론자라고 부르자.

 

백지론자에 따르면 질투, 편애, 권력욕, 경쟁심과 같이 흔히 악으로 분류되는 것도 후천적이며, 동정심, 도덕적 판단, 정의감, 죄책감 같이 흔히 선으로 분류되는 것도 후천적이다. 반면 대다수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것들이 대체로 선천적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진화 심리학자 Paul Bloom과 동료들이 규범의 선천성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여준 연구를 발표했다.

 

규범의 선천성을 입증하는 Paul Bloom의 연구

http://cafe.daum.net/Psychoanalyse/HS9E/208

 

재미 있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을 논할 때는 “순자가 악을 정당화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진화 심리학을 논할 때에는 “진화 심리학이 악을 정당화한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왜 양쪽 모두 인간의 악한 측면이 선천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진화 심리학만 이런 욕을 먹는 것일까?

 

 

 

--- 이기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내용은 동물의 이타성에 대한 설명이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동물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때 친족 선택과 상호적 이타성이 큰 역할을 한다.

 

이기적 유전자론이 인간의 이타성을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환원하기 때문에 “어차피 인간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기적이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결국 성악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 틀린 말이다. 생각이나 욕망이 없는 유전자의 이기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기적 유전자론의 핵심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다:

 

한 유전자자리(locus)를 차지하는 여러 대립유전자(allele)들 중에서 어떤 대립유전자 A는 다른 대립유전자 B에 비해 자신이 더 잘 복제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유전자풀(gene pool)에서 A가 더 많아진다. A의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표현형의 수준에서 보면 A의 영향으로 생긴 표현형의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뻔한 진리다. 그리고 이 뻔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화 생물학자들은 흔히 “이기적 유전자” 또는 “유전자의 이해관계”라는 표현을 쓴다. 만약 이런 표현이 헷갈린다면 위에 있는 유전자자리, 대립유전자, 유전자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유전자자리, 대립유전자, 유전자풀에 대한 이야기에서 한 번 성악설을 찾아보시라. 나는 못 찾겠다.

 

엄밀히 말해 틀린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진화 생물학자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원래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입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현대 물리학자가 말하는 원자는 전자와 핵으로 쪼개질 수 있고, 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다. 그리고 양성자는 쿼크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원자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 틀린 말이다. 그렇다고 물리학자들이 바보인가?

 

“이기적 유전자”의 경우든 “원자”의 경우든 어쩌다 보니 전문가들은 헷갈리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이런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로 헷갈리지 않는다. 잘 모르기 때문에 때로는 헷갈리는 일반인들이 불쌍할 뿐이다.

 

 

 

--- 강간과 살인에 대한 적응 가설 ---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은 남자가 강간을 조절하는 기제를 진화시켰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들 중 하나다. 이 가설이 진화 심리학자들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가설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거나 반증한 연구를 본 기억이 없다.

 

살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적응 가설이 있다.

 

얼핏 보면 이것은 성악설 같아 보인다. 이 가설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간 조절 기제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남자의 본성이다. 그런 기제가 진화한 이유는 때에 따라 강간을 했던 남자가 전혀 강간을 하지 않은 남자보다 더 잘 번식했기 때문이다. 강간을 하면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남자의 번식 이득으로 이어진다. 남자는 이 강간 조절 기제 때문에 강간을 한다.

 

실제로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강간 조절 기제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남자의 본성이다. 그런 기제가 진화한 이유는 때에 따라 강간을 자제했던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강간을 했던 남자보다 더 잘 번식했기 때문이다. 함부로 강간을 하다가는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으며 이것은 남자의 번식 손해로 이어진다. 남자는 이 강간 조절 기제 때문에 강간을 자제한다.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실제로 강간 조절 기제가 진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고도의 뇌 수술을 통해서 그 강간 조절 기제만 제거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남자는 강간을 더 많이 하게 될까, 아니면 덜 하게 될까?

 

강간 조절 기제가 없다 하더라도 남자에게는 강렬한 성욕이 있다. 또한 남자는 흔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강제력을 사용한다. 아무리 엄마가 하지 말라고 훈계를 해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먹고 있는 빵을 빼앗아 먹는다. 이런 남자의 심리를 생각해 볼 때 강간 조절 기제가 없으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가? 적어도 “강간 조절 기제가 있을 때보다 강간을 덜 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강간은 악이다”라는 규범이 선천적이라는 적응 가설도 진화 심리학 가설이다. 이것은 오히려 성선설에 가까운 가설이다.

 

 

 

--- 정신병질에 대한 적응 가설 ---

 

정신병질(psychopathy)이 적응이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이 진화 심리학자들 대다수를 끌어들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이 가설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 증거도 반증하는 증거도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만약 이 적응 가설이 옳다면 악마로 설계된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정신병질자만큼 악마 개념에 근접하는 존재는 없어 보인다.

 

정신병질자가 인구 중 소수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극단적인 성악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가 말한 성악설에서는 악하게 태어난 사람을 교육으로 선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정신병질자는 그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구제불능인 존재다.

 

그런데 정신병질이 적응이 아니라 “고장”이라 하더라도 성악설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차피 적응이든 “고장”이든 구제불능인 악인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

 

 

 

--- 인지 편향 ---

 

기존 인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온갖 인지 편향 또는 사고 왜곡 경향을 보여주는 실증적 연구들을 쌓아왔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진리에 따라 합리성을 따지는 고전적 합리성 개념에 따르면 인간은 대단히 비합리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번식 성공도(또는 유전자 복제 성공도)에 따라 합리성을 따지는 생태적 합리성 개념에 따르면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동물이라는 것이 진화 심리학자들의 생각이다.

 

비합리성을 악으로 보고 합리성을 선으로 본다면 기존 인지 심리학자들에 비해 진화 심리학자들이 성선설에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생태적 합리성의 기준인 번식 성공도에서 말하는 번식은 자신과 친족의 번식이다. 자신과 친족의 이익은 보통 이기성으로 분류된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생태적 합리성은 “이기적 합리성”이기도 하다.

 

 

 

--- 무의식적 위선 ---

 

인지 편향 중 하나가 무의식적 위선이다. 의식적 위선의 경우 자신이 위선적이라는 것을 의식한다. 따라서 인지 편향 또는 자기 기만이 아니다. 반면 무의식적 위선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위선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자신이 위선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무의식적 위선이 잘 설계된 기제라고 본다. 인간은 본래 위선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덕하

201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