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는 '의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만일 내가 '자서전'이라도 낸다면, 물론,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설사 자서전을 낼 정도로 '유명해진다고 해도' 스스로 자화자찬하는게 남우세스러워서 '치워라'라고 말할 것 같은데 어쨌든, 내가 그동안 겪었던 일들, 내가 그동안 방문했던 나라들....을 '증빙할 사진'이 없다. 


물론, 자서전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읽어본 적이 없으니 자서전에 사진이 박혀야 '내용증명'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상적으로나마 자서전의 내용 중 '가능한 한 내용증명될 수 있는 사진을 많이 박는 것'이 자서전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틈틈히 풍경 사진들은 찍었지만 그거야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것이니 '내용증명'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사진을 찍는 것도 싫어하고 사진에 대하여 문외한이지만 사진을 주로 올리는 블로그들을 곧잘 방문하곤 한다. 그런데 문외한으로서의 감상 소감을 말하자면 컬러 사진이 대세가 된 현 시점에서 흑백 사진은 과거의 추억이나 아니면 과거의 정지된 시점 또는 현재의 정지된 시점을 묘사하는데 활용되는 것 같다.



이런 나의 사진 기법에 대한 나만의 판단을 장황하게 적은 이유는 바로 '심재철'과 관련된 한 역사적인 사건이 내게 흑백 사진처럼, 그리고 일부가 빛바랜 컬러처럼 이상한 사진이 되어, 과거의 일이 뇌리에 박혀, 나의 사고기능이 동작하는 한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박혀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야, 심재철, 너 미쳤니? 미쳤냐구?"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 이제 좀 편히 쉬게나"



위의 두 대화는 바로 518 학살 후 DJ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재판에서 심재철이 '변절'을 하고 '거짓증언'을 하자 '막말 총리'로 유명한 이해찬이 한 말과 당시 사형선고를 받을(?) DJ가 오히려 심재철을 위로하던 말이었다. 한 재판장에서 말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된 후 '막말 총리' 이해찬에 대하여 왜 그가 '막말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증오심의 바탕은 어디었는지'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해찬에 대한 비판을 나름대로 자제하느라 꽤 애썼다.



변절자 심재철................ 증오심의 화신(?) 이해찬................ 그리고 목숨이 풍전등화 앞에 놓인 DJ가 오히려 거짓증언을 한 심재철을 다독거리는 발언......... 인동초라 불리던 DJ의 인품이 '컬러'처럼 떠올려지지만 그 컬러는 빛바랜 컬러로 각인되었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사진 속의 DJ였다면 과연 나는 DJ처럼 변절자를 오히려 위로하고 다독거렸을까? 만일,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컬러는 결코 빛바랜 컬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기에 내게는 '먼 나라 사람의 언행'으로 각인되었고 그러니 생동감이 나지 않아 '빛바랜 컬러'로 느껴질 수 밖에.....



또한, 심재철도 그렇고 이해찬도 그렇고 변절자도 증오심의 화신(?)도 그렇고 어느 쪽도 나는 비난할 수 없다. 만일, 저 흑백 사진 속의 인물들이 나였다면, 모진 고문 속에서 변절하지 않고 고문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친구 중에 '군 목무 중에 이상한 오해(?)'를 받아 간첩으로 몰려서 안기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해서........ 근육이 망가졌고 그래서 창창한 운동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은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친구가 고문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유창한 언변이 아닌데도, 내 몸 속에 수만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던 경험에 미루어본다면, 나는 결코 '고문을 견뎌냈을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 주제에 누구를 비난한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모진 고문을 이겨낸 이해찬 입장이라면 나는 이해찬 정도의 '증오심 표출'로 끝을 냈을까? 글쎄? 최소한 이해찬처럼 '증오심'을 말로 표출하는 이상의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DJ는 물론, 변절자도 그리고 증오심의 화신도 나의 '깜냥'을 벗어나는 사람들이기에 내 '깜냥'으로 감히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반면에 나는 김문수와 이재오를 혐오한다. 변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된 그들도 그 변절의 전후에서 심재철과 같은-설사 그 것이 반드시 육체적인 고통은 아닐지라도(물론, 김문수는 똑같이 고문을 당했고 옥살이도 2년여 한 반면에 이재오는 고문을 당한 적도 없고 단지 노태우 정권에서 사찰 대상으로 오른 것이 전부이지만)-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굳이' 그들을 혐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바로 심재철을 혐오하는 이유와 같다.


김문수의 경우에는 '유시민, 심상정과 함께' '서노련 사건'의 주모자였다. 독재 정권 시절에 노동 파업을 아무리 해도 독재자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는데 전두환 독재자가 (아마도)두번 놀란 사건인  '구로동맹파업'과 '서노련' 사건.... 그동안 노동 파업들에서의 노동자들의 주이슈가 '임금 인상 등' 경제적인 이슈였다면 '구로동맹파업'은 한국 노동사의 한 획을 긋는 '노동 파업이 정치적 이슈로 전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노련 사건은 아예 매스컴에 보도가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관련자들을 끌고갈 때 가족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독재자가 얼마나 놀랬으면 하는......... 판단을 한다. <-- 이 부분은 내가 629선언을 629항복이라고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추종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629 야합'이라고 하는데 사구체 논쟁에 이은 사회혁명의 기운이 높아져서 독재자와 민주세력진영의 담합이 629 야합이라고 하는 것이다.


해방 후 미군정에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원하는 국민들이 60%를 넘고-물론, 그 당시 여론조사에서 일제 시대에 나라를 되찾는 정신적 지주가 바로 '공산주의'였기 때문이었겠지만(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다른데 그 여론조사에서 8%인가?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국민은 한자리수에 불과했다는 것은 내가 좀더 공부해야할 분야이다)- 또한  "투쟁은 사회주의자가 했고 과실은 민주주의자들이 먹었다"라는 어느 사회주의자의 술회에서 그리고 당시의 역사들을 훑어볼 때 내가 내린 판단이다. 물론, 나는 사회주의 혁명을 원하지 않고 '629 야합'이라는 표현에서 '민주세력진영'을 비야냥하는 의도는 없다. 그 야합은 독재자가 내민 손으로 오랜 독재생활에 신음한 민주세력진영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노련 사건에서 매스컴에 알려지지도 않고 납치되다시피한 김문수............. 그가 변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아니 변절을 한 것 가지고는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그건 심재철의 경우와 아주 똑같다. 아마도............... 김문수와 이재오를 '변절자'라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혐오하는 이유는 심재철을 변절자라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혐오하는 이유와 아주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것은 그들이 변절을 했을 뿐 아니라, 그 변절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변절 후에 그들은 출세를 위한 언행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들을 혐오하고 심재철을 혐오하는 이유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되자 심재철은 당시 언론에서 그 발언을 접했을 때 '소름이 쫙 끼쳤던' 그런 천지경동할 발언을 했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이재오가 심재철의 옆구리를 툭 쳤을 정도였을까?



"좌파적출"


만일, '좌파타파' 정도만 말했어도 '오홍~ 낡고 낡은 한나라당 레파토리 또 나오네? 십년간 권력금단증을 앓은 후유증이 심했군'이라고 잠깐 비웃어주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좌파적출'이라니........... 그 활자를 접하는 순간, 내 두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뇌세포가 떼어져 나가고 그 고통으로 인하여 나의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었다. 아마도............ 아마도 악질 친일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조선 시대에 차별받는 신분에서 그런 신분적 제약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신났을까? 그런데 그들은 '이등국민'에서 '일등국민'으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즉 출세하기 위하여 앞장서서 식민지 백성(?)들을 더욱 가혹하게 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진행되면서 하나 의아한 점은 저렇게 충성을 다했는데도 이재오나 김문수의 '출세가도(?)'에 비하여 심재철은 그 출세가도가 마치 정체된 느낌이었다. 물론, 심재철이 제 16대부터 19대 국회의원까지 '버젓한' 4선의원이니 뭐, 출세했다면 할 수 있지만 같은 변절자인(?) 이재오와 김문수에 비하여 그 출세가도는 정체된 느낌이었고 발언의 파워도 상당히 약했다.



뭐................. 어차피 끼리끼리 노는 곳이 한나라당이고 거기야 인재들(?)이 워낙 많은 곳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뭐... 아직 나이가 적은 탓이겠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호기심 많은 내가, 뭔가 의문점이 생기면 반드시 그 이유를 알지 않으면 두드러기가 날 정도인 나지만, 쳐다볼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의문,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어보아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의문을 오래 담고 있지 않았고 그 의문은 내 머리 속을 떠나버렸다. 심재철에 대한 혐오감은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의문점을 되살린 것은 바로 지게님이 심재철의 출생지를 언급했기 때문이고 그 의문점은 다소 풀렸다. 1958년 광주 출신. 바로 심재철의 출생지였다.



세 변절자.... 강원도의 이재오............ 경상북도의 김문수................. 광주의 심재철........................



물론, 이재오와 김문수는 심재철과 다르다. 이재오와 김문수는 민중당을 창당하였다가 총선에서 참패한 후 1994년 김영삼에 의하여 한나라당(당시 신한국당-맞나?)에 입당한 반면 심재철은 MBC 기자를 하다가 정계에 입문했는데 그가 가야할 고향을 등진 사람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에 입당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까. 잠시 약력을 살펴보니까 현재 새누리당의 최고의원이고 지난 18대 국회의원 당시 '세비반납운동'을 주도하고 제18대 국회의원 당시 국회 출석율이 100%이며 2006년 시민일보가 선정하는 '의정활동 대상'을 수여하는 등 '만만찮은 활동'을 했는데 고작 최고의원............?



뭐, 집권당의 최고의원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자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6년이나 어린 원희룡과 비교하면 같은 제16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그리고 원희룡은 물론, 김문수나 이재오 등의 화려함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물론, 나는 이걸 일반화시켜 '국회의원도 호남출신이라 차별 받는다'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한마리의 제비가 보였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영국 속담을 거꾸로 생각하면, 한 동화 속에 나오는 '멍청한(?)' 제비가 아니라면 제비는 겨울에 결코 보이는 새가 아니므로 최.소.한.... 한마리의 제비가 보였으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판단해도 큰 오류는 아니다...라는 판단을 생각한다면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최소한 조금은... 안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물론, 지고하신 국회의원을 내가 감히 동정이나 하고 있을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