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보고 말 관계에 대한 아래 구절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생각과 비슷하다.

 

잠깐 보고 말 관계라면 사랑을 주기보다 상대방이 주는 사랑을 최대한 많이 받으면서 가능한 한 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어차피 잠깐 보고 말 사람인데 뭐하러 많은 투자를 하겠는가?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상대방을 통해 물질적 또는 정서적인 만족을 최대한 많이 얻어내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관계 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것만을 주려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처럼 아직 관계가 여물지 않은 단계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 더 많은 걸 받아내는 일종의 착취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가 진지해질수록 일방통행만으로는 그것을 잘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한두 번이면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둘 중 한 사람만 이득을 보는 불공평한 상태가 지속되면 주로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109)

 

하지만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을 비롯한 여러 실험들이 이런 생각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http://en.wikipedia.org/wiki/Ultimatum_game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해 보더라도 잠깐 보고 말 관계에서도 보통 남을 마구 착취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을 자발적으로 돕는 일도 많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못생기고 가난한 할머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하더라도 큰 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 보통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와준다. 가난하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도 없고, 못생긴 할머니이기 때문에 짝짓기 기회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서 내 평판에 도움을 줄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현상은 인류가 진화한 환경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냥-채집 사회는 소규모 투명 사회였다. 적대적인 부족의 구성원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잠깐 보고 말 관계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었다.

 

대단히 정교한 언어가 있는 소규모 투명 사회에서는 남을 함부로 대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평판이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웬만하면 싸가지 없게 굴지 않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회에서 기생하는 전략인 정신병질(psychopathy)이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설사 그런 전략이 진화했더라도 소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잠깐 보고 말 관계에서도 (주류 경제학자가 보기에) 지나치게 착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의 비만과 비슷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음식이 현대 산업 사회만큼 풍부하지 못했다. 또한 끝없이 육체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인간의 지방 축적 기제는 이런 환경에서 진화했으며 가난한 사람들도 굶주릴 걱정 없이 살게 된 것은 인간 진화 역사의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런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인간이 현대 사회에서 비만이 되기 쉬운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지나치게 많이 먹고, 운동을 너무 안 해서 비만이 되기 쉽다.

 

현대 도시 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익명 사회다. 예컨대 출근길에 마주치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 있기 때문에 약간 사정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매우 불친절하게 대한다고 해도 나의 평판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익명 도시 사회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누구를 보더라도 어느 정도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적응적이었다(아까 말한 소수의 정신병질 전략 등을 무시한다면).

 

 

 

주류 경제학자가 염두에 두는 합리성을 고전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반면 진화 심리학자가 염두에 두는 합리성을 생태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생태적 합리성에서는 현재가 아니라 인간이 진화한 과거 환경을 고려한다. 그리고 합리성의 기준은 번식 또는 유전자 복제다.

 

인간이 비만이 될 정도로 많이 먹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친절한 것이 고전적 합리성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태적 합리성의 기준으로 인간의 심리 기제들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으로 “설계”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