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붉힘은 의식적으로 잘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훈련된 배우가 아니라면 “이제 얼굴을 붉혀야겠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얼굴 붉힘에 대한 학습 가설은 상상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배우조차도 얼굴 붉힘 자체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얼굴 붉힘 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언제 얼굴을 붉힐 것인지” 정도를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얼굴 붉힘에 대한 적응 가설과 부산물 가설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응 가설에 따르면 얼굴 붉힘 기제가 있는 사람이 얼굴 붉힘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얼굴 붉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

 

부산물 가설에 따르면 얼굴 붉힘 자체가 번식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니다. 얼굴 붉힘은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어떤 다른 기제의 부산물이다.

 

내 느낌으로는 적응 가설이 더 가망성이 있어 보인다. 아래 연구는 적응 가설과 부합한다.

 

최근에는 얼굴 붉힘의 이러한 기능 때문에 사람들이 얼굴을 쉽게 붉히는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는 것이 연구 결과 확인되었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90)

 

부끄러운 일을 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보면 아주 정직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믿어도 된다.

 

 

 

얼굴 붉힘에 대해 진화 심리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밝혀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래 구절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행동을 했을 때 금방 얼굴이 붉어져버린다면, 즉 자신의 속마음을 얼굴에 그대로 내비치게 된다면 적어도 사기나 거짓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얼굴 붉힘이 존재하는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89)

 

세상을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 얼굴 붉힘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가설은 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얼굴을 붉히는 사람이 “세상이 더 좋아지도록 만들기 위해 얼굴을 붉히자”라는 식으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후에 얼굴을 붉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만약 얼굴 붉힘이 어떤 기제의 부산물이라면 세상이 더 좋아지도록 하는 것이 얼굴 붉힘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수 없다. 부산물은 그냥 부산물일 뿐이다.

 

만약 얼굴 붉힘이 적응이라면 “세상이 더 좋아지도록 만들기 위해”라는 설명은 집단 선택에 의존하고 있다. 집단 선택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기적 유전자』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1966)』를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