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요새 신문 기사를 볼라치면 기승전결에서 전결에 해당하는 문단에 "--한 이유다"라는 습관같은 어투가 자주 나온다. 영어 "This is why ----"에 대응하는 문장으로 보인다. 전부터 많이들 썼는지 모르지만 까막눈인 내 눈에는 좀 생경해서 근래에 유행을 탄 게 아닌가  싶다. 저것 말고도 여튼 영어를 비롯한 서구권 언어가 들어와 생긴 번역투의 문장이 많다. 언어가 살아있는 생물임을 염두에 둔다면 마냥 쇄국정책을 펼게 아니려 흡수하여 발전하는 게 좋은 방향으로 보이지만 우리말글살이로 보자면 흡수하는 게 아니라 흡수당하는 걸로 보일 때가 많다. 내가 가장 끔찍할 때는 내 표정에서 서양인이나 타인의 표정이 아닌가 싶은 걸 보았을 때다. 흉내내는 거.\

딴 이야기... ... .

20-40대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낫다고 하는 많은 것들을 보면 살면서 성인이 되어 근대화라는 과도기를 거친 이전 세대와 태어날 때부터 근대화된 시절을 살았던 세대의 딛고 선 기반의 차이일 뿐인 게 많다. 말하자면 카일라일 류의 의상철학처럼 그냥 그 물질적 시공에 있으면 당연히 일상에 스며들어 당연시 되는 문화일 뿐 딱히 개개인이 타 개개인보다 많이 노력해야 얻게 되는 무엇은 아닌 경우가 많이 보인다.


단지 생태계 자체가 서구화되다 보니 거기에 익숙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 그런데도 늙은 것들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아무리 봐도 나는 시스템보다는 개인에 치중하는 모양이다. 시스템은 자칫하면 저런 류의 유행 같은 것으로 흐르고 만다. 흐르는 물에서 떠밀려 내려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돌멩이, 그 돌멩이에 눈길이 자꾸 간다.


또 딴 이야기... ... .


요새는 부부관계에서도 돈으로 상대를 제어하는 풍경을 쉽게 접하게 된다. 가정 경제권을 마누라에게 일임하다시피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지금은 남편이 경제권을 쥐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예전부터 부자일수록 남자가 경제권을 쥔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돈에 애달캐달하는 모습을 남자답지 않다고 보는 유교 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라서 아직도 여성이 경제권을 쥔 가정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가끔 보면 재미있는 일이 바로 저 얼개에서 나온다. 어떤 일을 벌여 돈을 놓고 타인과 다툼이 일었을 때 남자는 뒤로 빠지고 여자가 앞에 나서 흥정을 벌이거나 돈을 손아귀에 넣는다. 여자들이 그런 면에서는 물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마도 좋은 의미의 :) 동물성이나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까.


부창부수夫唱婦受라는 말을 나는 저런 식으로 해석할 때가 있다. 남자가 사기를 쳐다 형식적인 하자가 없게 만들어 놓고 뒤로 빠지면 여자가 나서서 악다귀를 쓰며 돈을 손에 쥔다. 고위직 남성이 흠흠 하며 뒷구멍으로 돈을 받을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 슬쩍 자신은 초연한 척 관심 없는 척 뒤로 빠지면 마누라가 나서서 돈을 받는다 등등. 그 외에도 비슷한 풍경들은 많다.  마누라가 이러쿵저러쿵 타인에게 손해를 봤다고 집에와서 남자에게 악을 쓰면 사내가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나서서 주먹질을 하는 것도 부창부수요, 자식이 학교서 무슨 일 당했다고 부모에게 과장되이 이르면 학교 가서 난리치는 것도 일종의 부창부수요. 세상에 넘치는 게 부창부수다.


저 얼개에서 어차피 핵심은 대리인 쓰기이다. 대개 여성들이 대리인이다. 물론 부자들은 저 얼개에서 남성이나 여성 가리지 않고 대리인(아랫것, 머슴들)을 쓴다. 그래 내가 보는 세상은 그렇다. 어느 조직에 속해있든, 공직자이든, 하청업자이든 일을 대리하되 아랫것이나 머슴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을 맡긴 이와 동등한 주체로서의 냄새를 풍기는 존재들이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생명체이고 물질은 필요하다. 허나 주종의 관계로 얽매이지 않는 존재들. 나는 그들을 개체라고 부른다.


개체는 누가 그런 존재가 되라고 주입한다고 해서, 성체가 지원해 준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사람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무엇이다. 그건 누구나 길어낼 수 있는 샘물로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