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랫도리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대충 훑어보았는데 (내가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있으면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고은태 사건과 박시후 사건은 아주 같고 전형적인 '남녀 간의 썸씽이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남성 측은 화간, 여성 측은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닮은 꼴이죠.


우선 제가 '아랫도리 이야기'는 관심이 없다는 정치적으로 두가지로 해석이 되겠지요. 첫번째는 '한그루는 다른 남성들과는 좀 다르네?'라는 해석과 '한그루도 알고보니 마초이즘에 쩔어 있다'라는 해석 말입니다. 


첫번째 해석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두번째 해석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아랫도리 이야기는 시비 대상이 아니다'라는 관념 그래서 박정희의 여성 편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 '구질구질하게 별걸 다 시비 잡는다'라면서 '원천봉쇄적' 반발성 멘트가 난무하죠. 그런 '터부'가 한그루의 뇌리에 박혀 있으니 한그루는 마초이즘에 쩔어있는 것............


아마 누군가가 저의 발언을 두번째로 해석해서 저를 공격해도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을겁니다. 마음을 까보일 수도 없고.... 진심을 말하자면 '정말 관심없습니다'. ^^



박인수.... 희대의 카사노바라고 불리는 박인수는 당시 고위급 권력자 아들을 사칭하면서 뭇 여성들을 유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혼인빙자 간음죄로 법정에 회부되었는데 당시 (그리고 아마도)우리나라 판결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판결이 나왔습니다.


"보호 가치가 없는 정조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


흐미~ 이 판결을 '마초이즘에 쩐 판사의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하는 한 페미니스트에게 '그 판사가 마초이즘에 쩔었다면 당신도 페미니즘에 쩔었다'라고 했다가......... 쩌비~ 당시 박인수의 발언이 판결 이상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만난 여성 중에 처녀는 미장원의 모모씨 밖에 없었다"


'방어기제'로는 참 대단한 방어기제입니다. 어쨌든 그 판결에 대하여 당시 판사의 아들이 한국일보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읽었었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내린 판결은 한국 사법 사상 빛나는(이건 제가 붙인 표현입니다만 대충 비슷한 표현이었습니다.) 진보적 판결이라고 사법부에서는 판단한다고 하더군요.


'그 판결이 진보적이다?'


순간 제 머리 속에는 '우리나라 판사 중 60%가 넘는 판사가 미니스커트가 강간을 유발한다'고 판단한다....(이 기사는 그 이후 틈틈히 검색해 보았는데 검색이 안되더군요. 한겨레인가? 중앙일보인가? 하여간 그랬었습니다.)라고 쓴 기사가 떠올려지더군요. 즉, 어느 페미니스트의 주장대로 '마초이즘에 쩔은 판사들'의 전통은 유구하다......라고 판단한거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왜 그 판결을 진보적 판단이라고 하는지 수긍이 갔습니다. <-- 이 부분은 당시 머리에 섬광처럼 지나갔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법학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없는 탓이겠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은태 사건의 경우 그가 엠네스티 회원이라는 것이 연결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부당한가? 입니다. 이건, 제 생각인데 강준만의 '패권적 지역주의, 방어적 지역주의'의 표현과 - 그 표현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나서라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입니다.


제 판단이 틀렸는지 모르겠지만 고은태의 행위가 엠네스티 회원이라는 것을 연결하여 비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나뉘어진다는 것이죠. 또한, 그가 유부남인데 '유부남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원천봉쇄적 비난'도 역시 두가지로 나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의 판단은 '결혼 선언문은 성기 독점권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은태가 먼저 유혹한 경우 --> 강준만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같은 꼴이며 그가 엠네스티 회원이고 또한 유부남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같이 연결되어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A라는 여성이 먼저 유혹한 경우 --> 강준만의 방어적 지역주의와 같은 꼴이며 그의 사회적 신분 이전에 그도 유혹하면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수컷이라는 점에서 유혹에 넘어간(?) 것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가 엠네스티 회원이며 또한 유뷰남이라는 사실이 같이 연결되어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빠진 부분 추가 : 결국, 아직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고은태가 먼저 유혹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지고 있지만-고은태에 대한 비난을 고은태의 사회적 신분과 연결지어 비난하는 것은 제 판단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이름없는전사님이 노빠 호출을 언급하셨을 때 뭔소리를 하시나.. 했는데 결국 고은태 사건을 진영논리에 의하여 갈린다는 뜻이고 그건 부당하다는 것이 이름없는전사님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진영논리에 의하여 갈린다........라고 하면 그게 다수의 의견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위의 두가지 경우가 '비난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박인수 혼인빙자 관련 판결이 진보적이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집니다. 실제 주장들이 '편가르기 형태'로 찬반이 나뉘어지겠지만 그건 형태일 뿐 그 이면에는 박인수 관련 판결이 진보적이다라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성의 관념을 재조명할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이죠.


즉, 엠네스티 회원이면서 그리고 유부남이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라고 간단하게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단지, 박인수 사건과 차이점은 '박인수 사건'에서는 '박인수가 가해자냐? 아니냐?'이지만 고은태 사건에서는 고은태가 '가해자냐? 아니면 피해자냐?'라고 범위가 나누어지는 것이겠죠.




어쨌든, 성적으로 남성은 뭔 짓을 해도 비교적 관대한 반면 여성은 '조금만 어긋나도' 아니 '뭇남성들은 물론 여성들의 판단기준에 만족되지 않으면 십자포화를 쏟아내는' 그런 사회 분위기이니 A라는 여성은 팩트와 관계없이 이중삼중으로 상처를 받는게 명역관화하니 법정으로까지 번지지는 않는다는게 제 판단인데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이번 사건의 진실, 그리고 법의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성 모랄'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바뀌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예전에서 한발짝도 변하지 않았는지 판단할 기준이 되니 말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