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설계론에 대한 반론 중 이른바 복권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645로또보다 열 배 낮은 확률의 복권이 있다고 하자. 이 때 당첨자는 대략 8천만분의 1의 확률로 당첨이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숫자의 조합이 다 팔렸다면 누군가는 분명 당첨이 될 수밖에 없다. 즉 누군가가 당첨될 확률은 100%인 것이다. 따라서 이 때 "당첨 확률이 그렇게 낮은데 평소복권을 사지도 않던 주시자의 눈 같은 놈이 어쩌다 샀다가 우연히 당첨되었다는 건 매우 수상한 일이다. 필시 부정이 개입되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피노키오님의 논리는 복권의 오류의 키보드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키보드 자판 80개를 무작위로 두드렸을 때 나올 수 있는 문자열의 조합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두드리면 어떤 문자열이든 반드시 하나는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로 나온 문자열은 어떤 것이든 그처럼 낮은 확률로 나온 것이다. 그럼 이제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는 것이다. 


지적 설계론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논리, 즉 현재와 같은 우주가 탄생할 확률이 천문학적 숫자 곱하기 천문학적 숫자 분의 일의 확률이라고 해도 어차피 하나의 우주는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얼핏 듣기에 참 그럴듯하다. 그럼 이제 끝난 걸까?


나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두 사람의 논쟁 중 특히 이덕하님의 글을 보니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별 문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해 가능한 설명은 두 가지가 있다. 


1. 천문학적 확률을 극복하고 나온 우연의 결과이다. 


2. 원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피노키오님은 아마도 복권의 오류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결과 1의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이덕하님은 2의 직관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추론의 방법은 2의 경우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수명은 대략 일백여세로 알려져 있다. 그럼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1. 인간의 수명은 사실은 무작위로 결정되는 것이야. 실제로 인간은 원래 일만년을 살 수도 있고 1540년을 살 수도 있지만 그런 장수는 워낙에 낮은 확률로 나오는 까닭에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워낙 드물어서 미처 관찰하지 못한 것일 뿐이지.


2. 인간은 원래 정해진 수명이 백여년이다. 


물론 우리는 후자의 경우가 상식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항상 일정한 결과가 나오거나 혹은 일정한 규칙이 관찰된다면 이른바 귀납적 추론에 따라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것이 천문학적 확률을 극복한 결과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복권의 오류의 논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원래 무작위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런 입증 없이 무턱대고 적용할 수는 없다.


지적 설계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른바 지적 설계론이라는 건 이렇다.


우연 아니면 설계다.

우연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설계다.


이에 대해 복권의 오류라는 비판은 소전제, 즉 우연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공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대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고 봐야 한다. 


우연 아니면 필연이다.

우연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필연이다. 


던지면 항상 날아간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던지면 날아갈 수도 있고 안 날아갈 수도 있는데 신의 조종으로 날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