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을 했건, 예술인이건, 공직에 있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딱 한 가지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게 있다. 내가 사람을 보는 방식인데 그건 '봉건'이다. 말하자면 선후배 위계질서. 여거 남녀노소 별루 차이 없다.

학생운동 해가지고 설라무네 이런저런 자리 차지하고 행세하는 부류들 중에 봉건의식에 절어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전체를 모집단으로 해서 나오는 비율과 비슷하다고 본다. 인간사 모든 게 필요악인지라 위계질서도 필요하다. 그래도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이고 위계질서를 따져야 할 때 따져야 하고 그건 최소한으로 하는 게 좋다.

봉건을 따질라치면 어쩔 수 없이 조직에 속한 개인이라는 심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화합하되 고유성 유지할 수 있느냐 그게 내가 보는 어른이다. 화이부동. 줏대라는 것이 있다. 밖에 나가 사람을 구경할라 치면 거개 옆사람들이 하는 말 듣고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위험을 회피하기위해 상대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주변에서 얻는 것은 좋으나 최종 판단은 자기 몫이다. 그런게 의외로 쉽게 주변 사람들 말에 혹한다. 보고 있으면 황당하다. 그랬다가 손해보면 이제 주변 사람들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다툰다. 이에 합, 집에 산.

부당한 지시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가? 핵은 저거다.

살다보면 친구나 아는 이들이 직장 상사나 자기 거래처 사람들에게 나를 데리고 나가는 일이 생긴다. 재미 있는 건 지들한테 직장 상사고 돈줄이지 나한테 그런 건 아닌데 지들이랑 나를 동급으로 취급해서 그 사람들에게 굽신굽신하란다. 그럴 땐 그러는 게 아니다. "내가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는데 내 사정이 그러니 양해 좀 해주라..." 이렇게 서두를 떼야 한다. 그런데 보통 그게 아니드라.

도매금이다. 사람들 대화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게 하나 있다. 어느 정도 안면이 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두고서 "저 사람은 우리랑 수준이 달라"라고 무슨 말을 시작한다. 그럴 땐 "저 사람은 나랑은 수준이 달라"로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우리랑"이라는 표현 속에는 동물의 공포가 있다. 지금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랑 동류고 화제에 올린 그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다. 실은 자기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것인데 자기와 그를 비교하면 스스로 비참해지고 주변에서 따돌림당할 것 같은 것이다. 그래 우리라는 말 속에 자기를 슬쩍 집어넣어 방어막을 친다. 이른바 희석하기 전법이자 한편으로는 물귀신 작전(내 옆에 있는 니들도 나랑 같은 부류잖아).

우리라는 말은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또 어쩌면 서구에 비해 장점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저런 얼개에서는 우리라고 하지 않고 나라고 하는 법이다.

주변의 분위기에 편승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힘센 누군가를 등에 업고서 난리부루스를 치는 사람들. 그러다 그 사람 사라지거나 그 사람이 지면 또 이긴 자에게 꼬리를 흔드는 사람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나는 아니라고? 곰곰 생각해볼 부분이다.

정작 자기 입에 올린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소리내어 읽을 줄만 알면서도 많이 알고 지명도 있다는 누구 곁에 서거나 그 사람 팔짱을 끼고서 자신을 그 동류인양 포장하는 부류들보다는 아는 게 많이 없더라도 하나라도 자기 힘으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어른이고 개체인 것이다. 물어보는 것 역시 알아가는 한 방편이다. 전자는 질문을 잘 던지지 않는다. 그게 선언하고 도망쳐 버릴 뿐이지. 나중에 되돌아와 확인하지도 않는다. 제대로 보았나 못 보았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