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배고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적응 가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배고픈 상태에서 “아니야, 나는 배고프지 않아”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인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하는 행동 또한 꽤 어리석은 행동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드코어한 사회적 동물로 만들어진 인간의 운명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라는 존재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적 종種인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곁에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어서 사람을 찾아 나서라고 하는 마음의 독촉장이다. 따라서 항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외로움을 느낄 때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하자. 이것이 앞으로 계속 다가올 나와 타인의 외로움에 잘 대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36~37)

 

인간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배고픔 기제를 진화시켰으며, 사회 생활을 잘 하기 위해 외로움 기제를 진화시켰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배고픔이나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느낌은 인간이 잘 번식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인 것이다나도 두 경우 모두 적응 가설이 가망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로움과 관련하여 글쓴이가 진화 생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전에 다른 글에서 지적한 적이 있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와 진화 심리학: 01. 소속 욕구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318

 

 

 

책의 뒷부분을 읽어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가 비교와 열등감의 경우에는 적응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못했는데도 옆 사람이 자신보다 더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기분 좋아지는 모습에서 다소 섬뜩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객관적인 진실보다 옆 사람의 성적이 어떠냐에 따라 패배감 또는 승리감을 맛본다는 사실은 참으로 소모적이며 슬픈 일이다. 마음의 농간에 의해 속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47~48)

 

괜한 비교 때문에 우리의 심리 상태가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억울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안 해도 되는 비교를 굳이 해서 자존감이 왔다 갔다 하고 감정의 급변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손해란 말인가? 쓸데없는 패배감과 평생 친구하고 싶지 않다면 비교는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48)

 

외로움의 경우 “인간의 운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외로움 기제가 인간 본성이기 때문에 사회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운명과도 같다는 뜻인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한다.

 

반면 비교의 경우 “참으로 소모적이며”, “마음의 농간”, “괜한 비교”와 같은 표현을 썼다. 그리고 “비교는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라고 했다. 외로움의 경우 쓸모가 있는 반면 비교의 경우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외로움과 관련된 적응 가설만큼이나 비교와 관련된 적응 가설도 가망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이 온갖 측면에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비교 결과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이 드러나면 열등감이라는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면 비교와 열등감(또는 우월감)은 외로움만큼이나 “인간의 운명”이며 비교를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비교를 안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선택은 어떤 면에서 보면 영합(zero sum) 게임이다. 어떤 유전자 자리(locus)에 대립유전자가 AB만 있다고 하자. 이 때 대립유전자 A의 비율이 높아지면 B의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개체의 수준에서 살펴보자면, 어떤 개체들이 남들보다 더 잘 번식한다면 다른 개체들은 남들보다 덜 번식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수치로 볼 때 아주 잘 번식하더라도 남들이 자신보다 더 잘 번식하면 자연 선택에서는 망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차지하는 대립유전자의 비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절대적인 기준뿐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으로도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 즉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비교는 온갖 측면에서 번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갈등이 커져서 육탄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을 때 물러설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자. 이 때 자신과 상대의 싸움 능력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자신이 상대보다 싸움을 못 할 것 같으면 물러서는 것이 적응적이다.

 

지식이나 지능과 관련하여 자신과 남들의 수준에 대한 정보를 평소에 정리해 두었다면 결정적인 시기에 쓸모가 있다. 예컨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더 지식이 많고 더 똑똑한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이면 생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이 결혼 시장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아는 것 역시 번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어떤 남자가 인기가 바닥 수준인데 김태희처럼 예쁜 여자만 따라다니면 결혼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비교와 열등감”이라는 주제를 파고든 진화 심리학 논문들을 뒤져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적응 가설과 그 검증 방법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쨌든 얼핏 생각해 보면 대단히 가망성 있는 가설도 보인다.

 

적어도 이런 질문을 한 번쯤 던져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왜 글쓴이는 외로움과 관련해서는 적응 가설을 받아들이면서 비교와 관련해서는 적응 가설을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가? 비교와 관련된 적응 가설을 무시해도 될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