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민지 근대화론에 관하여

minue622: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명명은 암만 봐도 구라에요. 원조격인 나카무라 사토루 자신이 '식민지기 공업화'라고 명명하는데, 뭔 얼어죽을 '근대화'? 나중에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 날림 서평을 올려볼게요. 하여간, 우리가 식근론의 '원조'격이라고 할 사토루의 논의에 충실한다면, 이영훈은 '나카무라 사토루' 교조님의 가르침을 배반한 유다같은 인간이에요.

비고: 그런데 제 생각에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야기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느낌이... 말이 많아질수록 처음에 말 만든 사람만 득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서요.

meta: Ditto.

바람계곡: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던 식민지기 공업화론이던 관련된 연구의 양적, 질적인 데이터가 많이 쌓여있지 않고,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논의되는 양과 질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과도기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불편함을 좀 참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코지토: 근데 참 이상한 것이 1990년대 정도에 딴지나 인물과 사상 등지에서.... '근대화'라는 것이 자본주의화, 산업화로 등치되어서는 안 되고... 철학적 테제라고 이미 결론을 내려서 꽤 그런 개념이 대중화되었는데... 갑자기 다시 산업화, 자본주의화를 근대화의 척도로 내세우더라구요.

minue622: 이영훈의 왜곡/날조는 또 있어요. 그 수탈론 말이에요. 그거 한국에서 날조해낸 이론이 아니에요. 과거 일본학계의 '정설'이었어요. 아마 한국학자들이 일본 꺼 '베껴온 거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 사학자들이 스스로 날조했다고 할 순 없어요. 62년도에 출반된 일본사책을 이론과 실천사에서 출간했는데, 거기서도 마치 한국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한 구절을 그대로 보는 양, 수탈론을 주장하고 있고, 나카무라 사토루 역시 '동아시아 역사사..."에서 과거 일본학계가 수탈론을 정설로 주장했다...식의 말을 해요

비고: 그런데 저는 정말 궁금한 게,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하는 건데요.

minue622:  [Under the Black Umbrella] 라는 책 한번 읽어보세요. 한국에 출판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거 읽어보시면... 그 당시 조선인들이 느낀 감정이라는 게, 좀 단순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보통 알듯이, 왜놈 압정에 이를 갈았다... 이런 식의 단순화는 사실과 멀어요.

meta: 조선인의 감정... 양가감정일 수 있죠. 정부가 그 모양으로 무능했는데. 단순한 게 더 이상한 거죠.

코지토: 당시 미시적 관찰 인터뷰를 보면... 일반민중들 시각에서는 일본인들이 역시 우수하다... 난, 차라리 일본사람이 좋다... 이런 발언을 한 기록이 꽤 있을 거 같아요.

minue622: 네, 맞아요.

바람계곡: 그런 일반 민중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 충분히 우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언제는 안 그랬을까 싶어요. 한국전쟁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코지토: 그럼요. 민중들 시각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게다가... 곤궁한 집단적 열패감이 꽤 많이 퍼져 있었을 거고...

바람계곡: 억압받는 피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배계급이 누구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는...

meta: 근데.. 일반민중에게.. 그 '개인적인 감정'이 표현될만한 도구가 있을까요? 코지토님 말따나.. 인터뷰로다가 모은 데이타?

minue622: 왜인들이 만만찮은 게, 이영훈의 <韓國 市場經濟와 民主主義의 歷史的 特質>을 보면, 왜정시기 어느 조선 시골 촌락을 담당했던 일본인 순사에 대한 어느 한국인의 '회고담'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한국인들간에 분쟁이 벌어지면 '동네 술잔치'를 베풀어 서로 화해하게 잘 다둑거렸다. 또 동네 사람들도 잘 몰랐던 옛 활터를 찾아서 '조선시대 전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III장 4절] 뭐 이런 내용도 나오거든요.

코지토: 그게 근대화된 관료주의가 정착되면서 관료가 대민서비스라는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한국 민속미술과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린 사람도 일본인이었잖아요. 이름이...잘 기억 안 나는데... 무네요시...어쩌구 였던 거 같아요.

minue622: 네, 무네요시 뭐시기 하는 사람

코지토: 아... 찾았어요. 야나기 무네요시. 한국명 유종열.

minue622: 한국명도 있었나요? 거 참...

코지토: 꽤 현대화된 일본사람의 깔끔한 외모와 태도가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겠죠. 반면에 일본을 등에 업고 수탈에 앞장서는 한국인들은 훨씬 가혹하게 같은 한국인을 다루었을 거구요.

meta: 뒷집의 김진사가 새로 들어온 서의 왜놈보다는 더 미웠을 거 같긴 함다. 근데, 그런 민중이 양가감정이 있었다, 라는 전제가 추가되면 뭐가 바뀌나요? 우호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요?

minue622: 우호적인 면이라기보단, 그 당시 조선총독부의 관료적 침투가 그 만큼 조선사람들 일상에 속속들이 닿을만큼 치밀했다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고 한거에요.

meta: '왜인들이 만만찮다'라는 걸 보충하는 근거로는 써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합방'일 뿐 '정복'이 아니었다, 고 할 요건은 아닌 것이고...

비고: 친일파 중에서 폭력헌병 같은 사람들만 처벌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빌미가 될 겁니다.

meta: 아.. 친일파의 문제. 사실 친일파는 그 앞잡이들도 문제지만, 그들이 들여온 자본주의를 이용해서 적당히 잘 보여서 민족자본입네, 성장한 경성방직...

코지토: 그러니까 당시 민중이 일본인에게 우호감정을 가진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사실이 일본의 식민지수탈의 정당화가 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러나 반대로 마치 모든 한국인이 일본인을 증오하고 민족주의을 가지고 있었다고 억지주장을 할 필요도 없는 거구요. 나라와 나라, 정책과 정책의 문제이며, 결국은 세계관의 문제가 되는 거죠.

meta: 당연할 수 있는 일...이 아마, 정서적으로 접수가 잘 안되지 싶슴다. 그러나 그런 억지 주장 역시 들어본 적이 없는듯... 그렇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아마 벌떼같이 아니라고 증인으로 나설테니 염려는 안해도 될 듯..

minue622: 사실 박정희만 봐도 그런 게, 좀 자기모순적인 감정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만주군 군관에 지원할만큼 일본에 대한 선망도 있었고, 또 한편으론 민족주의적 감정도 있었을 거에요.

코지토: 당연히 그렇겠지요... 일본의 군국적 제도화에 대한 선망, 그리고 자신이 이등국민이라는 열패감, 동시에 민족주의가 짬뽕된 것이 박정희의 브레인맵일 겁니다.

meta: 박정희가... 군인이 되기 전에 뭐였죠? 교사?

minue622: 학교 선생 했었죠

meta: 성질머리로 봐선 딱... 빨갱이가 적성인데 그 양반도... -_- 심수봉을 좋아한 것만 봐도... 나랑 비슷한 감성의 소유자인듯도 하고...

minue622: 크... ^^

시도: 잠깐 딴짓하는 사이에 페미니즘에서 심수봉까지 갔군요.ㅋ

바람계곡: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은 그런 민중의 양가감정을 이용하여 민중의 미움을 받던 사람들이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

meta: 그게... 양가감정을 이용하는 게 맞나요 계곡님? 미국이 그들을 거기에 있을 수 있게 한 거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자기들 말 잘 듣는 넘. 이승만을 이용해서 분단도, 정권유지도, 그 이후에도 죽. 미국으로서는 일본에 대해서 조선이 독립적이건 얼마나 미워하건 양가감정이건, 관심 밖이죠. 컨트롤이 목적이었고 그것만 용이하다면 되었으니까.

바람계곡: 미국은 그렇죠. 미국이 전후 일본처리도 마찬가지고요.

meta: 그런 개입을 제외하고.. 이 안에서, 우리끼리 슬픈 넘, 나쁜 넘... 하면 단죄가 끝날 건 아니잖아요.

바람계곡: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렇게 형성된 권력층이 이제와서는 당시 민중의 양가감정을 근거로 과거의 문제들을 합리화/정당화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meta: 아... '지금' 그 양가감정을 근거로 합리화하려고 한다라...

지아스데자: 민중들의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의 마타하리라고 불리는 배정자도 개인적인 조선 왕조에 대한 원한 때문에 친일을 했다고 하죠. 그런 걸 생각하면, 확실히 양가적인 감정이란 건 존재했을 거 같아요.

meta: 지아님. 근데 배정자는... 이미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거기서 철저하게 이토의 애완견으로 컸는데... 자기 아버지가 처형당한 것에 대한 원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아스데자: 네. 그것 때문에 어릴 때 매우 고생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meta: 기생으로 팔리고 여승이 되고... 파란만장한 어린시절이긴 했죠.


* 이 글은 2009년 12월 6일에 채팅방에서 있었던 대화를 편집한 것입니다. 편집은 비고님이 주로 하셨습니다.
채팅 편집본은 3부로 구성되어있고, 이 글은  1부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