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수록 애매한 그림에서 사람 얼굴을 알아볼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그런 다음 세 조건의 사람들 모두에게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그림과 뭔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그림들을 섞어서 하나씩 보여준 후 각 그림에서 사람 얼굴이 보이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외로움을 느낀 소외 조건의 참가자들은 나머지 두 조건의 참가자들에 비해 애매한 그림에서조차 더 많은 사람 얼굴을 찾아냈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30)

 

글쓴이 박진영(또는 이 책에서 인용한 심리학자)은 이런 현상을 의인화로 분류했다.

 

즉 외로우면 사물을 의인화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의인화는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 사람 같은 속성(성격, 의도 등)을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8)

 

그리고 그 이유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사람이 그리우면 사람 같은 무엇을 상상해서라도 그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9, 그림 3)

 

 

 

나는 이런 현상을 적응론을 끌어들여 상당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오류 관리 이론(error management theory)을 살펴보아야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Error_management_theory

 

얼굴 인식의 예를 통해 오류 관리 이론을 대충 설명해 보겠다. 멀리 있는 형상이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특히 어두울 경우에는 더욱 헷갈린다. 이럴 때 어떤 방향의 편향이 더 적응적일까? 애매할 때 일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일단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까?

 

애매할 때 일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혹시 아는 사람은 아닌지, 혹시 나를 덮치려는 적은 아닌지 더 알아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 아니라면 시간과 에너지를 약간 낭비하게 된다.

 

애매할 때 일단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무시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라면 엄청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특히 그 형상이 나를 덮치려는 적이었다면 “무시”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형상이 위기에 처한 지인이었다면 그 대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

 

애매한 형상을 볼 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의 편향에 비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방향의 편향이 더 큰 대가를 치른다. 따라서 인간이 애매한 형상의 경우 일단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오류 관리 이론이다.

 

 

 

만약 오류 관리 이론이 얼굴 인식에도 적용된다면 그것은 의인화가 아니다. 의인화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처럼 대하는 것인 반면 여기에서는 사람인지 아닌지 애매한 경우에 일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진화했다면 그것은 어둠 속의 애매한 형상을 마주쳤을 때처럼 애매한 경우에 적응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심리 기제의 이런 특성 때문에 구름의 형상이나 심리학자가 제시하는 그림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작용(side effect)이다.

 

 

 

“우리는 사람이 그리우면 사람 같은 무엇을 상상해서라도 그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라는 문장은 프로이트의 “쾌락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위안이나 쾌락을 위해 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부작용이 일어나는 측면들(예컨대 실험실의 애매한 그림)에만 초점을 맞추면 심리 기제의 그런 특성이 현실적 필요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둠 속의 형상처럼 과거 환경의 측면들에 초점을 맞추면 적응적 의미 즉 번식에 유용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만약 고립되어 있다면 고립되어 있지 않을 때에 비해 사람임에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손해를 보게 된다. 고립되어 있을 때에는 자기 부족 사람을 알아보아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화를 걸거나 지하철을 타면 그만이지만 사냥-채집 사회에서 혼자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아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또한 고립되어 있을 때에는 적의 습격에 더 취약하다. 따라서 적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도 고립되지 않았을 때에 비해 더 중요하다.

 

“외로움과 얼굴 인식”이라는 주제를 다룬 진화 심리학 논문을 뒤져보지는 않았다. 어쨌든 “고립되면 평소에 비해 애매한 형상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커지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가설은 상당히 가망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