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우익 민족주의자이자 지방 국립대 중퇴생인 나는 그의 장관 지명에 반대했다.
인제 100년 조금 넘게 지나 나라는 개체에게서 되풀이되는 역사. 쇄국정책.

내 반대표에 깔린 무의식을 보자면 저런 류는 애국심이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무리의 이익보다는 자기 주변의 이익에 충실할 것이라는, 내 변연계 파충류 뇌가 작동한 셈 치면 된다. 내 좌표를 보자면 최하층민이므로 온갖 시기와 질투, 배아픔이 깔려 있는 셈이다. 저런 부류한테는 가시네들이 살냄새를 잘 풍길 것이라는 수컷 특유의 배아픔도. 어지간한 가시네들 허영만의 만화 한강에 나오는 학생운동하던 그 여자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내 여성관도. 아니 그 정도면 꽤 괜찮은 것이다. 대다수는 거기 미달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만화다. 대개는 그 정도도 아닌데 사람들이 스스로 사람들을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인간의 발달사에서 어느 정도 나이일까?

그런데 적어도 그건 아니다. 그들이 대단한 존재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 상승욕구도 아니다. 내 주변(내가 속한 세상)의 수준으로 보자면 그런 상승욕구를 분출하여 인정을 받는 행동을 시도해 보기엔 내가 좀 아깝다. 내가 잘난 것은 전혀 없지만 그네들이 워낙 못난 탓에 그래도 내가 그런 망상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나는 생명이라는 의미로 쓴다)이라는 걸 잊는 순간 사람은 괴물이 된다.
내가 사람을 보는 기준은 딱 하나. 어떻게 벌어먹고 사는가이다.

운칠기삼이네 3할이면 강타자네 모다 좋은 말이다. 근데 그게 현실에서는 왜곡되어 7할의 비리와 비열함을 눈감아 준다는 말로 통용되는 게 참.
주변에 성체들을 볼라치면 왜 그리도 완장질이 생각나는지. 진한 폭력이라는 건 그만큼의 공포가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

바깥에 나가 보니 어떤 년놈들이 세월이 흘러 뭔가 깨달았다고 지랄을 해댄다. 그 년놈들 옆에 무수한 얼라들은 그거 진즉 알고 그렇게 행동하질 않았더랬는데. 그냥 환장한다. 애새끼들 키우는 성체들이 얼마나 힘들까 짐작이 간다. 하긴 뭐 나도 그랬지.

아싸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