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눈치의 관계에 대한 아래 구절들에는 진화 심리학적 착상이 녹아 있다.

 

외로움은 나의 사회적 관계에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내가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앞서 말했듯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생존전략이기 때문에 혼자가 되고 있다는 신호는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다. 거의 너 지금 망해가고 있어와 같은 수준의 경고라고나 할까.

따라서 이럴 때 몸과 마음의 각종 시스템들은 이 주인 녀석이 다시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비상대책회의를 하고 여러 가지 작전을 짜낸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람들을 붙잡아 주인의 곁에 있게 할지, 즉 주인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만들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의 첫 걸음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 쉽게 말하면 눈치를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

이 과정에는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시선, 제스처, 목소리 등 최대한의 경로를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결과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엄청난 눈치 보기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5~26)

 

신시아 L. 피켓Cynthia L. Pickett과 동료들은 이 실험을 통해 외롭거나 소외감을 느낀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읽어낸다고 결론지었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7)

 

배부를 때보다 배고플 때 떡볶이 사진 하나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희미한 라면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8)

 

아쉬운 점이 있다면 궁극 원인 또는 선택압에 대한 가설과 근접 원인 또는 근접 기제 또는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을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심리학자 자신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다. 그리고 일반 독자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상당히 클 것 같다.

 

 

 

내가 대신 위에서 제시한 가설을 명료화해 보겠다. 물론 내 해석이 글쓴이 박진영의 생각(또는 이 책에서 인용한 심리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

 

먼저 배고픔과 라면 냄새에 대한 가설을 살펴보자.

 

1. 배부를 때에 비해 배고플 때 음식의 행방에 대한 정보의 가치가 더 크다. (선택압 가설)

 

2. 따라서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은 배고플 때 음식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제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진화했다. (적응 가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에 대한 가설)

 

3. 배고플 때 음식의 행방에 대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

 

 

 

이번에는 외로움과 눈치에 대한 가설을 명료화해 보겠다.

 

1. 남들과 잘 어울릴 때보다 고립되고 있을 때, 즉 외로울 때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정보의 가치가 더 크다. (선택압 가설)

 

2. 따라서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은 외로울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읽도록 진화했다. (적응 가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에 대한 가설)

 

3. 외로울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읽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

 

 

 

배고픔과 관련된 선택압 가설은 뻔해 보인다. 배부를 때에는 어차피 당장은 음식을 먹을 수 없으므로 음식의 행방에 대한 정보가 배고플 때보다는 가치가 덜하다.

 

하지만 외로움과 관련된 선택압 가설은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가망성이 커 보이지만, 뻔한 진리(trivial truth)인 것 같지는 않다. 남들과 잘 어울릴 때에도 남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이 매우 긴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있을 때 잘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외로움과 관련된 선택압 가설을 수학적 모형(model)을 써서 정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엄밀하게 이 가설에 대해 논할 수 있다.

 

 

 

진화 심리학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기 위해서는 진화 생물학계와 진화 심리학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들을 총동원하여 되도록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더 엄밀하게 생각하고 검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용어들 때문에 읽는 사람이 골치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덜 골치 아프게 서술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진화 생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혼란에 빠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외로움이 “남들의 마음을 더 잘 알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겠군”과 같은 의식적 생각(또는 무의식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런 생각 때문에 남들의 마음을 더 잘 읽기 위해서 의식적으로(또는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내가 위에서 제시한 가설에 따르면 “남들의 마음을 더 잘 알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겠군”이라는 생각은 의식에도 무의식에도 있을 필요가 없다. 인간은 외로우면 자동적으로 남들의 마음을 더 잘 읽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인간이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외로움-눈치 기제의 작동과는 별 상관이 없다. 이것은 시각학자가 시각 처리 과정에 대해 의식적으로 안다고 해도 착시를 보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식적 생각과 심리 기제들의 자동적인 작동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위에서 제시한 가설은 진화 심리학계에서 주창하는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와도 연결된다. 외로움과 눈치를 관장하는 선천적 모듈들이 있으며 그 모듈들에는 “외로우면 더 눈치를 보라”라는 식의 명령어가 선천적으로 내장되어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천성 가설을 많은 심리학자들과 사회 과학자들이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