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직과 개인, 성체와 유체 관계를 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살다 보면 발달사를 거쳐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얼개이다. 내가 보기에 저건 문자 이전의 지식이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동물의 선천적 본능 같은 거.

사회적 동물은 '다수의 평온'을 위해 물리적 폭력을 대신하는 강제력을 만들어냈다. 여론, 평판, 시선. 그리고 그에 대한 공식적 승복 혹은 개인 차원의 수긍.

물리력이 아니라 해서 폭력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해서 그 제도화된 폭력의 위험을 최대한 차단하고자 무척 부족하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 놓았고 개인 차원에서도 도덕이라는 이름의 대응물이 있다.

짧게 줄이면 결국 '제대로 보았는가'이다. 본대로 재판하고 처벌을 가한다. 그리고 욕을 해댄다.

그런데 만약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국가와 조직 차원에서는 법률상 배상이 이루어질 터이다. 그런데 개인들 그리고 그 개인들이 목적의식없이 일시적, 즉흥적으로 뭉쳐진 집단인 군중 차원의 배상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답은 뻔하다. 잘못 보았다고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국가와 조직 차원의 배상은 정말이지 식은 죽 먹기이다. 조직 속에 개개인이 숨어버리니 무어 구애받을 것 없이 처리해 버리면 된다.
그런데 개인, 혹은 개개인 차원의 배상은? 저기에 도덕이 개입한다.

내가 양아치, 창녀, 싸구려, 어린 것, 밑바닥 등등의 격한 표현을 쓰지만 그게 가리키는 풍경은 쫄이자면 단 하나 저것이다.
잘못 보았노라고 말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 저 개인 차원의 사과란 싸구려들은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차원이다.

저건 우러나는 것이지 배워서, 주입되어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사에 그 무수한 빛나들 위인들, 그 중에 저거 어지간히 해낸 사람은 드물다.

아크로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고 굳이 내가 이 글을 통해 겨냥할만치 애정을 지닌 사람 역시 없으니 신경들 쓰실 건 없다.

그래 결국 이런 냄시를 풍기는 내 글은 결국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이다.

모두들 위로 올라가지 못해 안달이지만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는지라 아래로 내려가지 못해 안달이다.

모두들 주눅이 들어 있다. 전문가들이 일반인을 가지고 노는 첫 번째 얼개는 그것이다.

질문을 던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혹 질문을 던질 채비가 된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을 부려 입을 막는다.

쉽게 말해 알아서 기는 것이다. 그래도 일부의 입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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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당한 여자에게 더 야멸차거나 비웃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주로 약자들, 당연히 그중에서도 여자들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실제 주변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바로 당신 핏줄인 여인네들의 반응을 보시라. 대개 보면 피붙이 여인네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들생각하는 모양이드라. 대개는 그렇지 않다 :)

워낙에 멍청한지라 여인의 정조가 그토록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라면 정조를 지키기 위해 아직은 미수 상태인, 혹은 기수범인 남성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때 법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한다. 그리고 그건 여자들이 나서서 법제화하라고 지독하게 목소리를 높여야할 일이다. 현실은 그러한가? 주로 못생기고 성적 매력이 떨어지는 여인네들이 보이는 행동일 뿐이다<-대다수 여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내부고발자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그들은 보호받는가? 형식적인 법령이 마련되어 있더라도 그게 실효를 발휘하는가?

세상은 무척 단순하다. 특히 인간의 세상이란. 복잡함이란 결국 사익 추구를 위한 욕망의 결과물일 뿐.
그런데 학문이라는 것도 많은 영역에서 그 산물이다. 사실 별 의미없는 것. 뛰어들어 접해보면 어지간히는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복잡한 존재들은 좀 멀리해도 좋다. 그런데 말이다. 복잡한 존재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게 또 약한 존재들이다. 권력 상부에 있는 이들이 강해보이는가? 가장 약한 자들이다. 그 극단에 또 가장 약한 자들이 있다. 여자들. 양자는 잘 포개진다.

아직까지 마흔 넷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법치란 개발에 편자이다. 기껏해야 노예의 법치인 것이다.  물론 일부는 예외로 한다. 제도보다는 개개인의 자질이 중요하다.

잘못 본 것을 잘못 보았노라 말하는 것 그것은 공자의 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란 말과 상통한다. 그게 행의 차원에서 들어서면 한 것을 했노라 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았노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그중 젤 힘든 건(하지만 정말 된사람들은 간혹 해내는 건) 역시나 마지막 한 것을 ~~.

부끄러울 수도 있을 나치 유겐트 참여 근거인 문서를 당시 친구였던 어느 학자가 위르겐 하버마스에게 보여줬는데 하버마스가 (화를 내며?) 그걸 집어삼켜버렸다는 일화가 저 풍경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주 회자되고 나도 그런 줄 알았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랜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5TW6&articleno=15728930&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귄터 그라스 역시 방향은 다르지만 조금은 오해가 있고.
http://halim.egloos.com/2661089

하긴 인간에서 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친구에 나오는 유오성의 대화다. 쪽 팔릴 수는 없다는 거.
악한 일을 한 걸 들키는 것보다는 어리석거나 부끄러운 일을 들키는 게 개체에게는 더 힘든 상황이다.

하버마스의 경우는 확인해 보지 않았으면 정말 낭패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