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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인데, 뒤늦게 집에서 VOD로 관람했다. 영화의 내용중 일부만 사실이라는 점에 주의하면, 잘 만든 영화라고 평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주제도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아서 적당했다. 왕자와 거지 이후 진짜왕보다 더 왕같은 가짜왕이라는 스토리는 진부한 것이 분명한데도, 언제나 흥미를 끄는 소재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타임머신을 다룬 영화들이 늘 그렇듯이.  

 

인터넷에서 관련 리뷰들을 몇개 읽어보니 노무현이 많이 걸려 나왔다. 백성들의 삶보다는 이득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기득권대신들을 서민출신 권력자가 따끔하게 꾸짖고, 괴롭힘당하는 힘없는 백성들을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설정이 그렇게 느껴지나보다. 그러나 착각은 금물.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의 롤모델은 노무현이 아니라 박정희에 더 가깝다. 

 

개혁군주 정조와 노회한 신하들간의 대결을 그린 박정희빠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그렇듯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현명한 군주가 강력한 독재적 왕권으로 기득권에 혈안이 된 불충한 신하들을 제압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보살펴야한다는 주제는 노무현이 아니라 오히려 박정희를 호출하고 찬양하는 프레임이다. 즉 영화 광해는 그 주제의식에 있어 <영원한 제국>의 후속편이라 해도 무방한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노무현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나 정치적 감각이 매우 후지다라는 반증밖에는 안된다.

 

극중 가짜왕 하선이 "신들의 등을 밟고 지나소서"라며 왕의 앞길을 가로막는 유생들의 등을 진짜로 밟고서 달려가는 장면은 고리타분한(?) 반대들을 단칼에 자르고서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붙혔던 박정희와 더 닮았다.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이라며 공격하던 깨시민들이, 정작 박정희와 유사한 독재적리더쉽에 노무현을 떠올리며 호응하는 이 기묘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오히려 노무현은 대연정을 말하고, 대북송금특검을 내주고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으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역적으로 몰린 강직한 처남을 내주고 반대파 신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던' 진짜왕 광해를 더 많이 닮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현대의 민주주의는 사특한 왕은 물론, 현명한 왕의 독재적 리더쉽마저 부정하는 제도이다. 물론 사특한 왕보다는 현명한 왕이 훨씬 더 권장되어야만 하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대에 다시 적용되기를 바라며 호응하는 현상은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뭐 별건가?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넘치다 못해 주체를 못했던 어떤 독재자가 빚어낸 디스토피아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사족) 넷상에서 이 영화가 <데이브>의 표절이 아니냐는 논쟁이 있었나보다. 그러나 <광해>와 좀 더 비슷한 영화를 고르라면 나는 에디 머피 주연의 <1달러의 도박>을 들겠다. <1달러의 도박>에서 뒤바뀐 운명의 주인공들은 전혀 외모가 닮지도 않고 심지어 피부색마저 다르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