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술에 취한 덕에 겨울 기운이 조금은 가신 섣날 오전 1시, 라디오를 틀었더니 익숙한 목소리의 성우가 조선 공녀들 이야기를 전한다. 어릴 적 듣고 보았던 전설의 고향 성우만큼은 아니지만 미성의 성우.

하긴 중고등학교적 라디오 속 설레임의 주인공 남국희 씨도 지금은 높은 자리에 올라 사람이 많이 변했드라. 또 하긴 뭐 아랍 사막을 누비던 이진숙 기자도 최근에 많이 변했다.


몽골과 여진족은 우리네와 결코 먼 핏줄은 아니다. 그래 고려/조선 시절에 공녀들 역시 우리네에겐 익숙한 야사 속(전설도 현실도 아닌 그 어드맨가에 흐릿하게 '실존'하는) 존재들이다. 어디서고 저런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했을까만 나이 든 지금에 와서 새삼 접하는 느낌이 다르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조선 팔천八踐


읽어봐야지 두고두고 미루다가 작년에 읽어보았던 책들이다.

경상도 어디 한문학자 강명관 씨의 글은 어느 한 쪽에선 명성이 자자했다. 그 글을 읽으며 참 좋았다. 첨에도 봤지만 나중에 다시 저자 서문을 읽어보면서 본격 학문과 재야 학문의 차이가 어디까지일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요새 몇 분이 말한 본격 소설과 통속 소설의 구분이랄까.


미몹에서 두 책을 두고 썼던 잡글이 과거로의 회귀였다면 이번엔 미래로의 여행(회귀란 단어도 들어맞는다. 절대값으로 표시하면)이다. 지금도 그때 상황에 비추어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들의 좌표는. 아, 까먹었다. 착상은 따로 있었는데. 그래도 그냥 간다.


강명관 씨의 글을 보면서, 아니 조선 팔천에 나오는 중들의 꿈틀거림을 보면서 김정한 씨의 소설 수라도 속의 여인, 가야 부인을 떠올렸다. 팔천의 시각으로 보자면 가야부인은 미래의 인물이다. 가야 부인이 시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 속에 조선 승려들 좌표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의 출발이 세속화, 권력화한 불교 승려들을 단죄하는 성리학에서 출발하였듯이 조선 내내 불교승들은 탄압과 착취, 유린의 대상이었다. 뭐 설마 그럴까 하겠지만 조선 초기부터 조광조에 이르기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사대부들의 불교 자산 착취는 지금으로 보면 목불인견이었다.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휴정과 사명의 고군분투였다. 그들 역시 사대부를 지향하다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를 기층으로 삼아 나름 변혁을 꿈꾸었다. 소설 장길산 속의 승려들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역사는 되풀이 된다든가 조선 왕실(아니 어쩌면 태조와 이방원에게서 비롯되었겠지. 이방원은 불교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의 규방에서는 여전히 불교를 소중히 여겼고 이 때문에 조선 내내 왕실에서 크고 작은 분란이 일었다. 그런 기운은 민간에도 전해져 민가에서는 여전히 미륵불과 토템이 합쳐진 묘한 불교가 암암리에 힘을 얻고 있었다. 그게 김정한 씨가 쓴 수라도 속 가야부인에게까지 전달된 것일까?


시아버지는 말한다. "그래 승려들이 (임란 때(이건 확실치 않음)) 조선 말에 의병이 일었을 때 들고 일어서서 이곳까지 와서 사람들을 구했단 말이지?"(이건 내 표현이지 정확한 것은 직접 읽어보시라)


그리고 불교는 또다시 기독교에게 패한다. 아직도 세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는 게 낫다.


그런데 말이다. 불교가 명백을 유지하는 이유를 나는 인간 세상의 문화세력 싸움이 아닌 자연에서 찾는다.


사찰은 대개 산 속에, 바닷가 절벽에, 자연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천주교 수도원 중 많은 곳이 그러하듯이(우리나라는 좀 다를란가 모르겠다). 나는 그 맥이 이어지는 이유를 그 자연에서 찾는다. 기독교 신교가 그토록 원하지만 자연 속에 교회를 세우긴 무척 힘들 게다. 그 이질감, 그걸 극복하기엔 신교의 역량이, 신교 구성원들의 역량이 아직은 역부족이다.


저 두 책엔 공식 권력과 의병으로 대표되는 민간 권력 간의 갈등도 상당히 나온다. 지금 상황과 무척 유사하다.


저기서 노동력의 핵인 노비를 확보하는 풍경을 보노라면, 당시 양반들 요즘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쌍놈들이다.

비랑 떡쳐놓고 낳은 새끼들 자기 노비로 두고 분가한 서출들의 자식이며 그들의 자식들마저 자기 노비로 둔다. 아니 그 정도가 양반이다. 보통 그렇게들 했고. 양반으로 있다가 역모 등에 몰려 노비로 떨어진 친구들의 자식을 휘하 노비로 취하는 것도 당연지사. 더 끔찍한 일들도 부지기수다. 돈을 벌려면 수족을 확보해야 한다. 되도록 많이. 요새 중산층 흉내내는 중견 관리자들 말이다. 그들이 엄밀히는(이 수싱어를 물릴 생각은 없다. 2할 정도 예외는 인정하지만) 양반네 청지기들이다.


아, 술 깨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