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고 꽤 많이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 생각은 이렇다는 취지에서..
블로그에 써놓았던 글 하나 옮겨와봅니다.

옮기려고 다시 읽다보니 이게 제가 소수자라는 방증이 되는 꼴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아크로 회원분들을 믿어볼 생각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뭐 처음도 아니구요 ㅋ

<당선인과 당선자>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말이 은근히 신경쓰이는 게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행위 뒤에 붙이는 말은 者(사람 자, 놈 자)이다.

 

이건 표준국어의 대원칙이다. 

사람 인(人)자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어떠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원시인/종교인/한국인 등으로 활용되면서 행위를 나타내는 명사보다 보통명사, 형용사형 명사 뒤에 붙는 경향이 강하다. 이 사전의 용례에는 '감시인'도 있었으나 '감시자'역시 문맥상 전혀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감시가 행위명사임을 감안할 때 감시자가 훨씬 적절하다.

한국어 어문 규정에도 접미사로서의 '자'와 '인'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는 점에서 완전히 동등하다.

다시 말해 者의 한자어 의미에 '놈'이 있다 하여 우리가 당선자를 당선된 놈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는 용법도 같고, 활용의 경향성 측면에서도 '당선'이라는 행위명사 뒤에는 者가 붙는 것이 더 적절하다.

 

오늘 집 앞을 지나는데 서울시교육감 선거 '낙선자' 이수호 배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당선되면 사람이고 낙선되면 놈이라는 소린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비단 내가 배배 꼬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합격자, 질문자, 응답자, 노동자, 승리자, 패배자'라고 하지 '합격인, 질문인, 응답인, 노동인, 승리인, 패배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행위를 나타내는 명사 뒤에 접미사 '자'를 붙이는 것은 오랫동안 우리 국어에서의 규칙이었다.

왜냐? '인'에는 접사로서의 비슷한 용법이 '자'보다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사인(死因), 자인(自認)같은 낱말들을.

'인'을 마구 붙이게 되면 오해의 소지를 낳게 될 가능성도 '자'보다 크다.

 

 

우리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당선자'라는 용어를 매우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이 듣는 사람을 기분나쁘게 할 소지가 객관적으로 없었다.

접미사로서가 아닌 '자'라는 의존명사조차도 '사람을 좀 낮잡아 이르거나', '일상적으로 이를 때' 쓴다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낮잡아 이르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부정을 저지른 자, 혐의가 있는 자 등), 일상적으로 이르는 데도 쓰인다(아래에 명시된 자, 합격한 자 등).

그에 비해 의존명사로서의 '인'은 사람의 수를 셀 때 쓰거나(5인 가구 등), 한자어 등 고어에서 '인의 장막'처럼 사람의 의미로는 제한된 뜻밖에 갖지 못한다. 또 법정 용어로서 '변호인', '참고인', '피고인', '증인' 등의 말은 있지만 법조계 밖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애초에 당선에 붙어 쓰이는 '인'과 '자'는 의존명사의 용법과는 관계가 없지만, 의존명사로서 억지 해석을 한다 해도 합리성은 희박하다.

요약하자면, 사회적으로 합의된 '당선자'라는 말에는 '듣기에 기분이 나쁘므로 고쳐달라'고 요구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문제제기된 것은 5년 전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였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측에서 국회의 '인수위원회법'에 '당선인'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근거로

자(者)보다 격이 높은(높다고 생각되는) 인(人)으로 바꾸어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헌재는 인수위원회법보다 상위의 법인 헌법 제67조 :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제1항)하며, 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제2항)" 고 규정하고 있음을 근거로 '당선자'를 유지할 것을 판결했었다.

그런데 당시에 언론은 그 결정이 완료된 이후에도 당선인이라는 호칭을 고수했고, 최근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도 이 용어를 들고 나왔다.

 

법률에 쓰인 용어는 그 법률에서 한정하는 말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법률보다는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원리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 헌법 전문을 다 찾아보아도 '당선인'이라는 말은 없으며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에 개정된 몇 가지 '법률'만이 당선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제기가 들어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법도 2003년에 처음 제정되었는데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취임까지 '당선자'용어를 사용했었다.

 

2010년 이후에 제정되고 시행된 공직선거법 등이나 하위법률인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시행령'등에서 당선인 표기를 하고 있는 것은 표준국어 사용법에 어긋난다. 내 기억엔 2007년 이전에는 국어사전에 '당선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문규정은 그리 쉽게 바꾸어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짜장면'조차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쓰이고서야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던가?

최근에 '사랑', '연애', '애인', '연인', '애정'의 한국어 정의가 성소수자를 포괄할 수 있도록 넓은 정의로 바뀌었다.

그 전에는 저 다섯 단어의 정의에 전부 '남녀 간'이라는 조항이 붙어 있었다.

저 정의를 바꾸기 위해(저것만을 위해서는 아닐지라도) 인권투쟁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이 몇이었는지 혹시 관심 가져본 적 있던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국립국어원의 인정을 얻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단어 정의가 바뀌기는 했는지 혹시 알고 있는가?

 

그에 비해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꾸는 데에는 얼마나 걸렸는가? 하루는 걸렸는가?

이 일이 성소수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우리는 존재가 부정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정의의 일부를 고치는 데 성공했는데,

이명박 씨를 위시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다른 용어를 써달라고 요청하고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내는 게 야속한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어문규정이란 쉽게 바뀌지 않아야 한다. 국어의 사용법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고 없어져서는 안 된다.

심지어 꼭 바꿔야만 할 필요성이 있지도 않고, 그저 한 사람의 기분이 2개월 간 나빴다는 이유로 어문규정을 바꿔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언어 사용의 엄격함이다. 

언론(言論)이라면 말을 할 때 엄격해야 한다.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엄격함이 그것이다. 당선자를 쓰다가 인수위원회의 말을 듣고 곧장 당선인으로 고치는 것에서 그런 엄격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당선인 용어에서, 나는 계속 쓴맛이 느껴질 것 같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