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미국계 피아니스트. 이블린 크로쉐의 바흐 연주가 반가운 것은 그의 터치가 굴드처럼 차갑지도 않고

얼마 전 소개한 안젤라 휴이트처럼 좀 요란스럴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무척 정겹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34년 생이니 한참

구세대인데 신선감과 안정감을 두루 갗추고 있다. 모차르트가 바흐를 연주하는 것처럼 경쾌하게 들린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바

흐를 너무 무겁게 연주하는 것, 너무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 등에 식상한 이라면 크로쉐의 경쾌하고 단정한 연주에 귀기울여 볼만

하다.

  현대에 와서 피아노는 바흐와 쇼팽으로 양분되는 느낌이다. 모차르트, 베토벤은 어떻고? 물론 그들의 몫이 엄존하지만 무대에서

는 쇼팽이 인기를 끌고 가정과 인터넷에서는 바흐의 성가가 부쩍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쇼팽은 감성을 자극하고 바흐는 이성을

고양시켜준다. 바흐의 <평균율> 전곡을 녹음한 이블린 크로쉐의 음반이 오랜기간 화제에서 사라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이다.

  크로쉐는 바흐 외에도 포레와 사티, 그밖에도 다양한 레퍼토리에서 완숙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대표작은 역시 바흐의

<평균율>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이 여성 연주가의 침착하고 따뜻한 인상이, 그가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무척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