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막 끄적였던 것들을 조심스레 정리해다가 올려봅니다.

같은 내용이 제 블로그에도 있습니다 ^^;






  처음 이 책에 대해 알고, 접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도대체 이 학술서 같은 살풍경한 표지는 뭐란 말인가? 고종석은 자기 책을 예쁘게 디자인하고 싶은 기본적인 미적 욕구가 결여된 인간인가? 물론 그럴 리 없다. 실제의 고종석이 어떠한지는 그와 만나본 적이 없어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그의 미의식이 범인의 그것에 비해 떨어진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한국어 사용과 문체만을 놓고 보아도 그렇다. 미의식이 없는 사람은 결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살풍경한 표지는, 종이의 질이나 불필요한 페이지의 유무와 함께 볼 때, 책의 단가를 단 한 푼이라도 더 낮추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책을 읽게끔 한 배려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이전 책들, <말들의 풍경>이나 <독고준> 같은 책들의 멀끔한 표지 디자인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는 한다. 또한 독자로서는 조금 아쉽다. 이 정도의 책이라면 좀 더 디자인에 신경을 써서 가격을 올려도 충분히 인기가 있을 텐데. 아마 인터넷에 이미 연재되어 매듭이 지어진 뒤에 엮여 나온 정황이나 절필 선언 등의 배경이 연관되어 있을 테지만 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언급을 생략한다.

 

  내용 외적인 면에 대한 평가는 이쯤으로 하고, 본문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고백하건대, 이 <해피 패밀리>가 나에게 있어 고종석의 첫 책이었다. 그래서 이전의 고종석 책들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유달리 다른 이들의 리뷰를 찾아 읽게 되었다. 개중에는 정말 혹독하고 가차없는 욕도 있었고 읽는 내 얼굴이 빨개질 만큼의 찬사도 있었다. 그건 그들의 말이니 접어두고, 내가 <해피 패밀리>에서 찾은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데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순우리말의 적확한 사용이었다. '맞갖다'라든가 '눅이다' 같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는 한국어 낱말들이 <해피 패밀리> 속에는 은근하게 숨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낱말들이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문장 속에는 그 낱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새롭고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낱말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더 할 것이 많지만 이쯤에서 한 번 끊도록 하고, 나는 이 책을 완독한 다음 한 번 더 뒤적였을 때 충격을 받았다. <"지현이는 잘 커?" "응, 제 엄마 닮아서 착해." 그렇게 대답했을 때 술기운을 뚫고 나를 찔렀던 자괴감은 그날 술자리의 마무리 분위기를 망가뜨렸다.> 이 부분은 책을 끝까지 읽고 한 번 더 뒤적이지 않으면 도무지 개연성이 없는 말이다. 나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결말을 먼저 읽고 앞 이야기를 읽거나, 처음부터 쭉 읽거나 하는 편이다. 아마 저자의 의도는 결말을 먼저 읽는 사람들보다 순서대로 읽는 사람들 쪽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저런 상황과 표현들을 삽입했어야 했는지는 조금 궁금하다. 여러 번 읽을 사람을 위한 배려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란 연기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을 일일이 다 살아볼 수는 없는 일이니, 정말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실감나게 서술해야 읽는 이도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고종석은 뛰어난 연기자는 아니다. 본인도 묘사에 약하다고 자인했던 것을 보면,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책 속의 추함이 현실의 추함을 따라잡는 법은 거의 없다. 책 속의 비참함이 현실의 비참함을 넘어서는 법도 거의 없다.>, <'책이 사람'이라는 격언은 틀린 말이다> 같은 본문의 구절들은 작가 스스로의 목소리인데, 고종석은 최대한의 노력을 하되 마치 자신이 거기에 뛰어난 사람인 양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책에 등장하는 몇몇 글쟁이들보다 나아 보인다. 먹물 냄새가 책 곳곳에서 나고 자신이 유학을 다녀온 프랑스에 대한 애착과 현학이 조금씩 엿보이는 것과, 그것을 정당화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는 점이 그렇다.

 

  흔히 중산층이라고 생각되는 한 가족에 대한 이 이야기에는 속물스러움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계급혼이니 번듯한 집안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오는데다 이제는 이미 클리셰의 하나가 된 '조건을 보고 연애상대를 고르는 것은 속물적인 일인가' 같은 논쟁도 잠깐 나온다. 이 속물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소재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속물적이다. 현실도 그렇다. 이 속물성에 대해 날카롭고 따끔하게 보여주면서 '좋아 보이는지'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아 보이는가? 물론 아니다.

 

  행복과 가족에 대해서는 소설을 읽는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니 딱히 논평하지 않되, 사랑에 대해서는 조금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독 연애감정에 대한 고종석의 접근은 이 책에서 매우 건조하다. 약속을 잡아 단둘이 만난다느니 키스를 한다느니 하는, 연애를 대표하긴 하지만 연애의 끝자락도 만지기 어려운 행동들만 조금 나올 뿐 감정의 양태나 그 외의 일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섭섭하다. 표현하고 이야기할 만한 수많은 상황들이 소설 속에 있었는데 자세한 언급은 계속 생략되었기 때문에 뭔가 불충분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상상의 영역으로 충족하기에는 계속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무언가가, 부족한 무언가가 있는 점이 좀 걸렸다. 또한, 배척받는 사랑을 하는 주체가 이 책에서 계속 여성이라는 사실은 내 생각엔 시사하는 바가 좀 있다고 본다. 민형의 입장에서는 '그 일'이 왜 거의 설명되지 않는가? 소설 내의 상황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소수적 사랑에 대해서만 남성의 목소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 같다.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이입 배제. 노력이 지나친 나머지 잘못 읽으면 배척받는 사랑을 왜 여성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삐딱한 의문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내 깜냥껏 이런저런 칼을 갖다댔지만 <해피 패밀리>는 대단히 소중한 소설이다. 여태 내가 읽은 한국 현대문학의 바탕이 좁아서인지는 모르나 최소한 내 보기에는 새롭고 귀중한 이야기를 많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고종석의 글을 좀 더 보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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