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진강   (원곡은 북한노래)

 

출처 - 위키 : 북한의 노래.
 
공훈예술가 박세영이 작사하였으며 고종한이 작곡하였다.  원래는 북한의 대중가요였으며, 그로 인해 일본조총련에도 알려지게 되어 일본 내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 사이에서도 불리게 되었다. 원래는 박세영이 지은 시로 1957년 고종한이 노래로 작곡하였다. 모두 2절(연)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절(연)은 박세영이 고향인 남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지만, 2절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조선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여담이지만 작사자인 박세영(02.07.07 - 89.02.28)은 경기 출신의 월북작가로 일제 강점기 시절 KAPF 문학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월북 후 북한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하여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경력이 있다.


일본 내에서 번안되어 불리는 임진강은 松山猛(마츠야마 타케시)가 번안 및 새로이 작사한 것이다. 그는 중학 시절 방문한 총련계 학교에서 처음으로 해당 곡을 들은 후 1절 가사를 알아내어 번안하였고 이후 ザ・フォーク・クルセダーズ (The Folk Crusaders) 의 멤버인 加藤和彦(카토 카즈히코)에게 멜로디와 1절 가사를 보내게 된다. 이후 마츠야마 타케시는 새로이 2~3절 가사를 작사하였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イムジン河(임진강) 이란 제목으로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2번째 싱글로 발표될 예정이였다.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임진강은 공연 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며 일설에서는 帰って来たヨッパライ(돌아온 주정뱅이)를 제치고 데뷔 싱글로도 발매할 예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곡의 발표 소식을 들은 북한조총련에서는 발매사인 東芝音楽工業(도시바음악공업 - 현 EMI)에 대해 원곡이 북조선의 노래라는것과 작사자 및 작곡가의 이름을 밝힐것, 가사를 원곡에 맞게 번역할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북조선일본과의 수교국이 아니였으며 베른조약 역시 가입하지 않았지만 조총련에서는 이 문제를 언론에 공론화시켰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북조선의 노래가 일본에서 유명해지는것을 원치 않았기에 이런 남/북 양국의 정치적인 압력으로 인해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와 도시바음악공업은 해당 곡의 발매 자숙을 결정하게된다.  정치적인 압력으로 인한 2집 싱글의 발매 취소 이후 새로운 싱글의 발표를 위해 카토 카즈히코는 임진강의 멜로디를 반대로 재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새로이 悲しくてやりきれない(너무 슬퍼서 참을 수 없다) 를 작곡하였다. 해당 곡은 コブのない駱駝(혹이 없는 낙타)와 함께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3집 싱글로 발표되었으며, 2집 싱글에 수록될 예정이였던 ヘビに喰われて死んでゆく男の悲しい悲しい物語 는 1970년 大蛇の唄(오로의 노래) 라는 싱글로 발표되었다.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싱글 발표는 취소되었지만 임진강은 당시 일본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안보투쟁 시기에 학생운동과 연계되어 자주 불리어지게 되었지만, 이후 안보투쟁이 쇠퇴하고 원곡의 정치적인 성향이 부각되면서 잊혀져갔다.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부터 한국일본 양국에서 서서히 재조명받게 되었으며 2002년에는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10번째 싱글 앨범으로 悲しくてやりきれない와 함께 재발매되게 된다. 이후 2005년 개봉된 일본영화 パッチギ!(박치기!)에서 OST 로 쓰이게 되어 한국 내에서도 나름의 유명세를 얻게 된다.  한국 내에서는 군사정권에 의해 한동안 금지곡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후 재일교포 가수인 김연자가 90년대 처음으로 TV 방송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는 양희은이 부른 노래로 많이 알려져있다. 
 
(+ 코블렌츠 추가).. 임진강 버전은 임형주등 많으 가수가 불럿다.  통일관련 행사에 주로 많이 불려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부른 것은 민요가수 김용우가 부른 것이다. 특히 그 연주팀의 피아노 주자의 절묘한 반주와 아쟁의 조화는 이 곡의 품위를 한결 높여주고
있다. 불행히도 김용우의 공영동영상은 구할 수 없지만 아래에서 그 소리는 감상할 수 있다. 피아노와 코트라베이스의 조화는 매우 절묘하다 못해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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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께다의 자장가-I  (.)

 

守もいやがる 盆から先にゃ
아이보는 일도 진저리가 나, 盆은 아직 멀기만하네
雪もちらつくし 子も泣くし
눈도 팔랑거리며 내리는데,아이마저 우는구나

盆が来たとて 何うれしかろう
盆이 와도        무엇이 기쁠까.
帷子(かたびら)はなし 帯はなし 
입을 홑옷은 없고,    동여맬 허리띠도 없고

この子よう泣く 守りをばいじる
이 아이 참 잘도 우는구나, 아이보는 나를 괴롭히네.
守りも1日 やせるやら
아이보는 일도 하루  쉬었으면...

早よも行きたや この在所越えて
어서 빨리가고싶어라 이 곳을 넘어서
向こうに見えるは 親の家
저 건너에 보이는 것은 우리 부모 계시는 집

向こうに見えるは 親の家
저 건너에 보이는 것은 우리 부모 계시는 집

이 노래의 배경이 되는 교토의 다케다지역에는 이른바 被差別部落(피차별부락)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에서도 아주 옛날부터
소나 돼지등을 도축하거나 그 가죽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非人(hinin)즉, 사람이 아닌
그런 비천한 신분층이였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 지역에 일제시대 초기 조선이주민이 대거 유입되었고
그 사람들이 바로 이 노래가 전승되어온  교토 다케다 지구를 비롯한
오사카,나라등에 걸쳐서 살았고,그런 피차별부락들이 1960년대 후반까지도 실제로 존재햇다고
합니다.  이 노래를 듣고,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끝내는 알 수 없었던 노래였지요.
아마도 이 노래를 저희 집사람이 제게 들려주었던 것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그런 피차별부락에 조선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 이였습니다.  이 노래의 기원을 거슬러가보면, 발생시기가 일본의 근대화 이전으로는 여겨지지 않고,
대략 피차별부락의 조선인 유입시기 정도로 맞추어진다는 것.
혹시나 이 노래가 그런 피차별부락의 조선인 소녀를 보고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했던 것 이였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것은 이 노래가 일본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방송금지곡이였습니다.
바로 피차별부락을 소재로 다룬다는 것 때문에.. 이 노래가 조선소녀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해도,  

고향과 모국을 떠나  낯선  남의 나라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던 초기 조선이주민과  이 노래와의 정서가 아주 다르지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http://www.leelove.co.kr/bbs/zboard.php?id=free&page=1&sn1=&divpage=3&sn=off&ss=on&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6986
 

 

 

(3) 다께다의 자장가-II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노래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 무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요는 어느 나라나 슬프고, 아련하네요.  있는 사람들은 아랫것들을 시켜서 노래를 듣지만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삶의 고단함으로 자신이 직접 노래를 해야 헸으니, 절절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