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및 해군기지에 관련해 국정원녀가 올린 글의 '내용' (즉, 그 주장)이 타당하므로 별 문제 없는게 아니냐란 식으로 말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는데, 이건 국정원녀 사건을 문제삼고 있는 아크로내 논자들의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에서 나온 발언같다. 

 이건 원칙의 문제인데, 거칠게나마 대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를 조선과 같은 전근대 국가나 구소련의 공산독재, 나치의 파시즘 체제와 준별짓는 주된 특질 중 하나가 있으니, 바로 <중성국가>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이는 국가가 종교, 이념, 도덕적 양심의 가치 혹은 그 진리문제에 손을 떼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다.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자. 
 

 과거 조선시대라면 <유교>라는 사상-종교적 이념의 진리 및 가치를 부정하거나 이에 대항하는 종파 및 정파에 관해선 <국가>가 결코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 18세기 후반기에서 19세기 걸쳐 벌어졌던 천주교 박해를 떠올리면 된다.  


 서구의 상황도 마찬가지인데, 국가가 직접 종교의 가치의 우월문제게 개입해 종교적 박해를 가하는 경우가 그 당시에는 정상으로 통하던 시대였다. 카톨릭에 대항한 신교가 출현한 이후 유럽 국가들이 대외적으로는 '종교전쟁'을 치르고 대내적으론 국가가 금지하는 종파들에 각종 박해를 가했던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근대국가는 이로 인해 발생한 장기간의 대내외적 전쟁과 혼란상황을 모르고서는 그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다.


 근대 이후에도 이런 <중성국가>를 부정한 국가체제가 시도되곤 했으니, 바로 나치 독일이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그 예다. 물론 북한도 마찬가지. 한국의 경우를 들라면, 이런 근대적 중성국가체제를 무력화시키려는 반동적 시도가 가장 가열차게 이뤄졌던 시기로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꼽을 수 있을게다. <반공>이란 사상의 이념적 '가치'를 (북조선이 주체사상을 국시로 삼듯이) 국시로 삼았다는 것이 이를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에 속한 국정원녀가 국정원 업무의 일환으로서 민간인을 가장해 민간의 정치-시사 사이트에 올린 게시물과 댓글들은 바로 이런 근대적 국가가 가지는 <중성국가>로서의 성격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 게시물의  내용이 타당함을 주장하고, 다시 이를 근거로 삼아 국정원녀 사건을 별문제 없는 것이라 말하는 주장이 도대체 먹힐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건 대한민국 국가체제를 과거 박정희가 시도했듯이, 국가가 가치적 중립성을 벗어던지고 공권력을 동원해 직접 개입하는 <북조선 스타일>로 바꿔보자는 얘기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적 중성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이 2차세계대전 후 일본에 민주주의 제도 이식하고자 시행했던 첫 조치들 천황제 파시즘 국가였던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걸려 감옥에 수용되어있던 공산주의자들 석방조치가 포함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군정이 그 빨갱이들을 석방한 것은 바로 그러한 중성국가로서 지니는 '체제'의 원칙을 좇아 시행한 것이지 그네들이 믿는 이념적 가치가 '공산주의'였기 문에, 그래서 과거 조선이라는 국가가 직접 삼강행실도를 보급해 유교이념을 보급하고자 했듯이 미군정이 국가 기구를 통해 일본땅에 공산주의 이념을 흥/촉진고자 한 목적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정원녀가 국정원 직원으로서 민간에 개입한 게시물 및 댓글이, 그 내용 면에서 (자신이 보건대) 옳기 때문에 정당하다? , 이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국가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망각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