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건실한 철도원 아무개는 회사에 대항하여 파업을 벌였으나 저 셰익스피어의 샤일록처럼 냉혈한인 검사에게 덜미를 잡혀 법정에 출두하게 되었다. 다음은 그 공판 기록인 “서울의 철도원”이다.


[판사] 철도원과 검사,두 사람 앞으로 나오라.(두 사람 앞으로 나와서 판사에게 인사를 한다)


[판사] 그대 이름이 검사인가?


[검사] 네,검새라고도 하고 떡검이라고도 합니다만 본명은 검사입니다.


[판사] 당신이 요구하는 소송은 괴이하지만 법적으로는 하등의 하자가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법률로선 비난할 수 없소.(철도원에게) 당신의 신병은 이사람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걸 알고 있소?


[철도원] 네,검사가 그렇게 말합니다.


[판사] 기차를 멈추고, 업무를 정지하여 파업을 벌인 것은 인정하는가?


[철도원] 인정합니다.


[판사] 그럼 이제는 검사에게 묻겠소. 기소를 취하할 의사는 없소?


[검사] 어떤 의무 때문에 그래야 하는지요? 저는 불법을 기소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디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판사] 검사라는 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기소하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법을 올바로 세워 억울한 자를 북돋워 강한 자가 전횡하는 세상을 막기 위해서도 존재하오. 이는 하늘에서 이 대지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이오.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거요. 가진 자이든 없는 자이든, 힘있는 자이든 없는 자이든 공평한 법의 축복을 받게 하는 거요.


그러니 검사여,그대가 호소하는 바는 법조문이지만 달달 외운 법조문만 내세우면 구제를 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걸 명심하시오.우리는 합법이 아니라 정의를 구하여 법조문을 보며 그를 따라 자기 일을 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사법연수원에서 배웠소.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그대가 법조문만 고집한다면 이 엄격한 서울의 법정은 부득이 저 철도원에게 불리한 선고를 내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오


[검사] 제 행위의 응보는 제가 받겠습니다!전 법에 호소합니다.피고는 분명히 철도공사의 업무를 방해했고 파업을 통해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여객열차의 운행율은 60퍼센트까지, 수송열차는 25%까지 떨어졌습니다. 명백한 업무방해입니다.


[판사] 이 사람은 왜 파업을 해야 했는가. 이유가 있는가.


[해고철도원] 있습니다. 제가 대신 이 법정에서 발언하겠습니다. 지금 코레일 사장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철도에는 평생 문외한이었던 전 경찰청장 허준영씨입니다. 그는 마치 전경이 시위대를 대하듯 노조를 상대했습니다.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했고,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해고자들에 대한 복직 약속도 일방적으로 헌신짝처럼 폐기해 버렸습니다.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하고, 오지로 발령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회사의 잘못을 징치할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단체행동일 뿐입니다. 그를 법률로 탄압한다면 이는 분명히 악의가 선의를, 악이 선을 짓밟는 짓입니다.(무릎을 뚫고 양손을 든다)부탁드립니다. 직권으로 검사의 법을 굽혀 주십시오.커다란 정의를 행하기 위한 작은 불법입니다 잔인한 악마의 뜻을 꺾어 주십시오.



[판사] 그럴 순 없소.대한민국의 어떠한 권력도 이미 정해진 법을 바꿀 순 없소.그것이 기록되고 판례가 되면 많은 위법 행위가 반
복되어 국기를 문란케 할 것이오.그럴 순 없소.

[검사] 헌법재판소 같은 명판결이시다! 그래 헌재!(판사의 옷자락에 키스한다)오 현명하신 젊은 판사님, 어떻게 하면 경의를 다 표할 수 있겠습니까.


[판사] 어디 그 증거를 좀 보여주오.


[검사] (자기 가슴에서 서류 뭉치를 재빨리 빼내며)네,여기 있습니다. 공명정대하신 판사님,,이것입니다.


[판사] (증거서류를 살피면서)검사, 이 서류에 따르면 업무 방해를 꽤 했군. 서울역에서 노래를 틀어 여객들의 귀를 시끄럽게 했고, 텐트촌도 아닌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고, 파업을 벌여 철도공사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고, 승객들의 불편을 초래했군. 이 철도원을 업무방해 혐의로 감옥에 처넣겠다는 검사의 주장은 정당하다. 그러나 정상참작의 여지는 없겠소?


[검사] 그거야 고분고분 회사가 시키는 대로 따랐을 때의 일이죠. 아직 저 동료들은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판사님께선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법률에도 밝으시고, 법해석도 지극히 온당하십니다. 무조건 우리는 법으로 밥벌이하는 사람 아닙니까. 법에 따라 부탁합니다. 판사께선 법률의 대들보이시니 제발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철도원]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법이라면 법에 따라 어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판사] 정 그렇다면 두 손을 들고 저 사람의 수갑을 받을 준비를 하시오.


[검사] 오 훌륭하신 판사님이시다! 앞으로 출세하실 것이다.


[판사] 법의 취지와 목적으로 본다면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형법 314조에 규정한 업무방해죄 위반이라 할 것이다.


[검사] 과연 그렇습니다.오 슬기롭고 공명하신 판사님!어쩌면 보기보다 저렇게 똘똘하실까!


[판사] (철도원에게)그러니 철도원은 교도소에 갈 준비를 하시오.


[검사] 옳습니다.바로 깜빵이에요. 법전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훌륭하신 판사님,정확히 말해서 형법 314조 1항입니다. 5년 이하의 징역과 1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판사] 옳은 말이요. 호송할 교도관과 버스는 준비되어 있소?


[검사] 예,지금 당장 부를 수 있습니다.(외투 밑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판사] 그런데 검사, 업무방해의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소?


[검사] 법전에 범죄의 이유를 따지라고 적혀 있습니까? (형법 교과서를 달라고 해서 자세히 살펴본다)


[판사] 명기되어 있지는 않소.그래 그게 어쨌다는 거요? 법을 따지는 자가 범법의 이유를 살피는 섬세함 정도는 가지는 게 좋지 않겠소.


[검사] 그런 글귀도 없습니다. 법전에! 법전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형법 교과서를 판사에게 돌려준다) 문제는 결과입니다. 파업을 해서 승객들의 발을 묶고, 코레일에 누를 끼쳤으며, 업무를 방해했습니다. 더 볼 게 뭐가 있습니까.


[판사] (철도원에게) 철도원이여,뭐 남길 말은 없소?


[철도원] 별로 없습니다.각오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손 좀 잡아보세 해고자들이여 잘 있게. 자네들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됐다고 조금도 슬퍼하지 말게 .오히려 자네들을 작년에 회사와의 약속대로 회사에 복귀시키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네.


운명의 여신은 평소보다 나에게 더 친절을 베푸는 것 같네.흔히 용기 없는 자들이 오래오래 살아남으려다보면 눈은 가재 눈이 되고, 손바닥에 손금이 없어지고,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르도록 귀가 멀지 않던가. 하지만 나는 비겁하게 시키는대로 따르고 주는 대로 받고 항상 복종만 하는 멍청이가 되는 변은 면했단 말일세. (두사람 포옹한다)


자네가 해고된 뒤 고생 많았던 부인께 안부 말씀 드려주게. 철도원이 최후를 맞이하는 경위를 전해 주게. 내가 자넬 얼마나 안타까와했으며, 얼마나 의연하게 철도원 정복을 벗고 수의를 입었는지도 전해 주게. 자네의 친구가 자네를 결코 잊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기억만 해 준다면 난 자네의 복직을 외치다가 구속되는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네. 저 검사의 구형이 가슴 깊숙이 찔려 온다면, 그리고 요즘 단골로 들이미는 회사의 손배가압류 소송까지 겹친다면 나는 내 평생을 바쳐 빚을 갚게 될 테지만 말야.


[해고자A] 위원장,내 아내는 나에겐 생명과 같이 귀중하네. 하지만 생명도, 아내도, 온 세계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네보다 귀중할 순 없어. 난 모든걸 잃어도 좋아.그렇지, 내가 자넬 구할 수 있다면 저 검새대가리한테 잡아먹히는 지렁이가 되어도 좋아.


[판사] 만일 당신 부인이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면 아마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요.


[검찰] (방백)빨갱이들이란 대개 저렇다니까! 이념을 위해선 가족도 저버리는 냉혈한들.....(큰 소리로)시간이 갑니다. 빨리 선고를 내려 주십시오.


[판사] 바로 저 철도원은 형법 314조 업무방해를 위반했소. 본 법정이 그걸 인정하오.

검사는 구형하시오. 법이 그걸 인정하고 법정이 그걸 허락하오.


[검사] 참 출세할 판사로다. 자 각오하라. 본 검사는 징역 5년과 벌금 1500만원을 구형합니다. 아울러 회사의 천문학적 손배 가압류 소송이 뒤따를 것입니다.


[판사] 잠깐 기다리시오. 더 얘기할 말이 있소. 업무방해죄는 형법이지만 헌법에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소.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헌법 제33조 1항이오.
 

 단체행동권에는 당연히 파업도 포함되오. 파업으로 업무방해를 했다 해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이 온당하다면 검사는 또한 코레일을 위헌국사범으로 고발하는 것이 당연하오. 헌법과 형법 가운데 상위법이 어느 법인지는 고시를 고스톱 쳐서 통과한 게 아니라면 알 것이라 믿소.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니는 권리에 대한 부정만큼 위험한 범죄는 없소. 이는 반국가행위이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최고형은 사형이오. 검사는 이에 대해 기소할 의사가 있소?


「해고자
] 오 공명정대한 판사님이시다!들었느냐,검새야.


[검사] 그게 헌법인가요? 이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에다가 월급도 많이 받는......


[판사] (헌법 교과서를 들어 보이며) 헌법을 들여다보시오. 단체행동권을 월급에 따라 제한하는 법이 있소? 노동법도 보시오. 안정된 직장에서는 파업할 수 없다는 제한 사항이 있소? 그대는 정의를 주장했으니, 그대가 원하는 대로 기소하시오.


[검사] 하지만 그건 대통령의 말씀이라는..... 또 세계 어디에서 이런 파업이 있느냐는 말씀까지 하시었습니다.


[판사] 형법 314조 1항을 다시 한 번 똑똑히 보시오.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僞計)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이오. 대통령이 그 발언을 한 직후 폴란드에서는 경찰들이 단체행동을 했소. 대통령이 좋아하는 선진국에서도 파업은 노동자들의 신성한 권리요. 월급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말이오. 대통령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철도원들의 권리를 위압하고 절차상 합법인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었으니 업무방해죄에 직권 남용죄가 추가되오. 기소하시오. 면책특권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면 공소시효를 따져 퇴임 후 기소하시오.   


[철도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대한민국에 명판사가 났도다---들었나,검새대가리야?


[검사] 업무방해죄 기소를 취하하겠습니다. (핸드폰을 들며) 어이 호송차 다 돌아가. 꽝났어.


[판사] 잠깐!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요. 법대로만 하겠소. 업무방해죄를 인정하오. 동시에 코레일을 위헌적 행위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혐의로 기소하시오. 이는 “남조선 노동자가 탄압받고 있다”고 늘상 떠들어대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를 보태는 이적행위에 해당하오. 둘 다 처벌할 준비를 하시오. 절대로 한쪽만 처벌할 수는 없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검사 옷을 벗는 것이 일신상에 좋을 거요.


이하는 생략함..... 그러나 한여름밤의 꿈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