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표와 정몽규


관심있었던 사람은 아시겠지만, 며칠전에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임기 4년짜리 축협회장을 뽑는 선거였고, 현행 선거 방식은 각지방축구협회장들 및 기타로 이루어진 24명의 대의원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항상 이랬던건 아닙니다. 추대로 이루어진 적이 더 많았습니다.)


일반적인 스포츠 협회 회장을 뽑는 일에 비해 (지금 배구협회장 누군지 아시는분?) 좀 떠들석하게 지나간 이벤트였습니다. 전임 조중연 회장이 재선에 안 나서면서, 생각보다 규모가 커졌는데 작년까지 프로축구영맹 회장이자 현대산업개발 회장인 정몽규씨와 오랜기간 "축구 야당"을 자처했던 허승표씨가 나서면서 판을 키웠기 때문이어죠. 일간지에 광고까지 낼 정도였으니.


정몽규씨는 물론 현대가문의 핏줄이라, 정몽준씨때 부터 이어진 현대 가문의 축구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쉽게 이해가 갑니다. (나중에 덧붙입니다.) 근데 허승표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이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또 대한 축구협회라는 조직이 대한민국 국회 다음으로 워낙 국민들의 안줏거리로 씹히는 조직이고, 지난 임기 회장인 조중연이라는 사람이 워낙에 간사한 딸랑이 이미지라서 "축협 개혁"을 내세운 허승표에게 솔깃했던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부 언론에서 허승표씨에 대한 측면 지원이 있었죠.


투표 결과는 정몽규씨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단연컨데, 이거 정말 다행스러운 결과입니다. 허승표씨가 축협회장 했으면, 한국축구 한 20년은 퇴보했을 지 모릅니다.


먼저 허승표씨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한국 축구 개혁의 화신이 아닙니다. 이 사람 김우중이 축협 회장 할 때 부회장까지 했던 사람이고... 그리고 그 시절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암흑기였습니다.


관련된 게시물 (http://m.soccerline.co.kr/bbs/columnboard/view.html?uid=1992642899)


당시의 암울했던 축협 상황:

-- 다이너스티컵 선수단 20명에, 임원 10명이 외유성으로 따라갔던 기사, (단장이 허승표씨):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1900209219008

-- 축협에서 공금 유용 사태 기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1300329111010

-- 김우중씨 사임 기사: "5년간 돈만대고 비난만 받았던데 좌절감을 느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92300329119005


기사 분위기 보면 알겠지만, 어느 일반 체육회마냥, 돈없어서 쩔쩔매는 조직이었고 그 얼마 안되는 돈 -- 특히 회장의 스폰서쉽에 기반한 돈 -- 임원이란 사람들이 제배 채우는 조직이었죠. 허승표씨는 거기서 책임지면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 뻔뻔하게 지금 축협 개혁을 외칠만한 사람은 아니었죠.


이후 역사는 아시다싶이 93년 정몽준씨가 축협 회장이 되고, 월드컵 유치해옵니다. 97년 선거에서 허승표씨가 "축구인 출신 회장" 내세우면서 출마했으나 당연히 낙선. 2002년의 대 성공 이후로, 정몽준씨가 2009년까지 꾸준하게 장기 집권합니다. 정몽준씨가 그만 두기로 한 이후 허승표씨는 2009년에 재출마 했으나, 정몽준씨의 마당쇠 분위기인 조중연씨와 대결에서 패배. 그리고 이번에 다시 출마했으나, 정몽규씨에게 패배한것입니다.


허승표씨 본인은, 자기가 아스날/코번트리에서 선수생활한 1호 프리미어 리그 선수라고 우기고 있죠. 언론 (조선일보)과 그렇게 인터뷰했습니다: http://www.chosun.com/magazine/news/200611/200611120191.html

  -- 그러나 실체는 축구협회에서 아스날에 1년간 연수 보내준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8090032920801

  -- 실제로 위키에 보면 코벤트리건, 아스날이건 옛날에 뛰었던 선수 명단이 있습니다. 물론 허씨의 이름따위는 찾을 수 없죠 (17골이나 넣은 선수가 누락되었을 리가) : http://en.wikipedia.org/w/index.php?title=Category:Coventry_City_F.C._players&pagefrom=Faulconbridge%2C+Craig%0ACraig+Faulconbridge#mw-pages


이 사람은 어떻게 지지를 모으고 있느냐 하면:

  -- 2009년 축협회장때는 돈 뿌리다가 걸려서 망신을 사기도 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2002533

   --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에서도  (. 가방에 무언가를 싸와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하는데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그냥 가라 했다 ...) :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breaking/view.html?cateid=1027&newsid=20130129032014276


한가지 재미난 건 일부 언론(기자)들은 대놓고 허승표를 밀어주고 있단 겁니다.

   -- "허승표는 축구계의 DJ가 될것인가": 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129850.htm

   -- "허후보는 좀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들만 모은 느낌이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16&article_id=0000062040&date=20130121&page=1

   -- "허승표 회장 눈물의 2전 3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01395



결국 선거는 정몽규 회장의 승리. 최악만큼은 피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박근혜중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 것보다, 축협 회장 선거에서 허승표씨가 당선되는 일이 훨신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물론 조중연 집행부 혹은 그전에 정몽준 집행부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허승표의 과거 행적, 돈 살포 경력, 그리고 (빨아주는 기사와는 달리) 허황된 공약 같은 걸 보다보면, 이 사람이 과연 1년에 500억 ~ 1000억까지의 예산을 사용하는 축구협회라는 조직을 제대로 꾸려나갈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드는게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었던 건 협회가 워낙 인기가 없다보니, "협회 개혁"을 이루어낼 신선한 뉴페이스라고 선전해대고,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낚였다는 점입니다. 근데 메카니즘이 왜인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아크로에 오시는 분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