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진범을 풀어주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법에서의 무죄추정의 원칙은 기본권 보장의 시작이고 형사법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죄추정의 원칙은 청문회장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판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사가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있지만, 청문회에서는 후보자가 자신의 무죄를 적극 해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청문회장에서 후보자는 자신의 무죄 내지 무혐의를 어느 선까지 자신이 먼저 해명할 수 있을까? 

원래 유죄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해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유죄의 주장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의 무죄를 먼저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해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청문회장이라고 해도 자기가 먼저 자신의 무죄, 무혐의를 적극 해명해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동흡은 자신이 횡령을 하지 않았다는 반론을 펼쳤다. 이해관계인의 면담에 특경비를 써왔으며 그 내역은 지출내역서에 그대로 있으며 지출내역서를 보면 횡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지출내역서의 제출을 헌재가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민통당은 헌재를 공격하지 않고 이동흡만 공격한다.

헌재재판소에서 지출내역서 제출을 거부하면 곧바로 이동흡과 헌재재판소가 결탁해서 공모한 것이고 횡령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동흡은 지출내역서 거부와 관해서 헌재재판소와 공모하지 않은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청문이라면 그 어떤 후보자라도 자신의 무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 있는 해명을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계속 해명해야할 꺼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동흡이 반론을 펼쳤고 민통당은 그 반론에 대해 충분한 조사를 해오지 않고 횡령으로 단정한다"는 게 내가 처음부터 주장해 온 논지다.  나는 이동흡이 충분히 해명을 했기 때문에 민통당은 다시 그 반론에 대한 반론을 펼쳐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민통당은 그냥 횡령으로 단정한다.  아무리 법정이 아니고 청문회장이라도 이런 식의 논리비약은 곤란하다. 나는 법정과 같은 엄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자기 무죄 우선 증명의 곤란함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회예산처의 '회계연도 결산 부처별 분석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헌법재판소는 특정업무경비의 유용 전용 등 공금횡령이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기관이다. 만약 이동흡이 특경비 유용 건으로 낙마한다면 앞으로 다른 재판관들의 경우도 특경비 유용 횡령 문제가 거론될 것이 분명하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후보자 검증에서 지출내역서가 없는 한 횡령여부를 해명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개인통장에 넣었다고 해서 바로 횡령이 인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별도의 관리통장에 넣었다고 해도 바로 횡령혐의를 벗을 수는 없다. 

아무리 청렴하다는 평판을 가진 후보자라도 이동흡에게 갖다댔던 잣대를 갖다 댄다면 횡령에 대한 해명이 불가능하다. 또 헌재의 거부로 지출내역서를 제출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청렴한 후보자라도 이동흡과 똑 같이 "지출내역서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도덕성이 결격이다"는 식으로 논리 비약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럼 이동흡을 어쩌자고? 그냥 이동흡에게 공금횡령의 부패가 만연한 헌법재판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정황상의 불이익 상태를 추가하는 것으로 그치고 다른 부분을 청문해야 하는 수 밖에 없다. 차제에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공금 유용 전용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법률 정비를 해서 새출발 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생각할 때,  이동흡의 횡령 건에 대해 최재천과 민통당이 이동흡의 횡령여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보다는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에 만연해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특경비 전유용이라는 공금횡령 구조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이들은 청문회장에서 그런 거시적인 구조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효과적인 청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최재천 처럼 청문하면 어떤가? 이동흡이 횡령했는지 안했는지를 밝히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동흡의 횡령여부는 통장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가 특경비를 실제로 어떻게 썼는지를 확인해야만 횡령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는 길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공직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부패구조를 부각시킬 때 이동흡의 횡령을 더 쉽게 ,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국회예산처 보고서에도 나와있듯이 헌법재판소는 공금횡령이 만연한 대표적인 기관이다.   공직사회의 일반적인 부패구조 속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공금횡령 부패가 만연한 국가기관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인 이동흡도 횡령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려 헌재소장후보로 오른 사람이니까. 거기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이동흡은 헌재에 만연해 있는 공금횡령 구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이것은 엄밀한, 구체적인 횡령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추상적인 횡령이고 그 책임은 구조속의 개인으로서의 한정된 책임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즉 추상적인 횡령만으로도 다른 낙마사유들과 함께 낙마사유로서의 횡령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최재천처럼 청문하면 낙마사유로서의 횡령은 될 수가 없다. 지루해질 뿐이다.  

정치적 추상적 책임의 부담은 다른 후보자도 마찬가지? 아니다.  다른 후보자도 정치적 추상적 횡령의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동흡은 이미 몇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른 후보자들과 다르다.

상황을 바꾸는 데 있어서 100이라는 역량이 필요한 경우, 이미 다른 곳에서 50이라는 역량이 갖춰져 있을 때(이동흡의 헌법관, 기타 불미스러운 소문 등) 거기서 추가적인 선택으로 50을 더해야하는 상황이라면 100을 얻거나 100을 잃거나가 50%의 선택을 하는 것보다는 얻을 것 얻고 포기할 것 포기해서 확실히 100%로 50을 얻는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