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미...... 친일...... 친북....... 친중....... 친영.......

나열된 다섯 단어는 '친하다'라는 의미의 한자어 '친(親)'과 각 나라의 앞자를 붙여 만든 조어(造語)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개의 단어는 각각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친영'이라는 단어는 제가 현대의 매스컴에서는 접해보지 못했지만 구한말 문서에서는 두어번 접한 기억이 있는데 혹자는 '친영이라는 표현도 쓰나?'라고 의문을 떠올리실겁니다. 그리고 '친중'이라는 단어는 요즘 매스컴에서 드물게 언급되는 단어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친중'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쓰는 경우는 어떨까요?


'친미'와 '친중'

우리나라 미래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생각해보신 분이라는 이 표현 중에 '친중'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생각이 갈릴겁니다. '당연한 국제적 추세' '위험하고 시기상조' 등등.....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로 해석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친중'과 '친영'처럼 아무 느낌이 없거나 또는 다른 단어와 병행하여 쓸 때 느낌이 다가오는 것과는 달리 친미, 친일 그리고 친북은 그 독립된 단어로만 우리에게 확실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세 나라는(흐음~! 북한을 나라라고 했으니 저는 바리 이적행위로 국보부에 고발하겠다고 방방뜨는 분이 아크로에는 없었으면 하는 바램, 있습니다. ^^)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과거형이죠. 이런 '역사의 결과'로 세 단어는 각각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친미'는 무언간 뿌듯한 느낌으로..... '친일'은 무언가 굴욕적인 느낌으로.... 그리고 '친북'은 왠지 그로테스키한 공포심으로....

(솔직히 고백하자면.... 바로 위의 문장들은 인터넷에서의 각종 매체는 물론 글들에서 표현되는 뜻을 요약한 것이지만 글쓰는 제 자신의 감정의 찌끄래기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이성적으로는 레드 컴플렉스를 '완전히 벗어났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때 뿔달린 간첩을 그리라는 미술 시간에 담임선생님의 '과제'...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체험했던 당사자로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 단어들에 대하여 과연 완벽하게 '감정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시는지요?)



2. 동기의 언어화(motive verbalized)를 통한 '언어로 의식을 규정하는' 단어들


'친미'와 '친일' 그리고 '친북'이라는 단어는 조어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등장 시기와 그 배경을 판단해보면 '동기의 언어화'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친일'이라는 단어의 등장이 그랬습니다. '친일'이란 단어는 일본 강점 시기에 일본 군국주의에 복무하면서 '일신 상의 영달'을 추구했던 사람들을 규정하기 위하여 등장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읽기는 했는데 거증 자료가 지금 저에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친일'이라는 단어는 원래부터 있었던 단어가 아니라1980년대 어느 분에 의하여 지금의 의미처럼 사용되는 것이 정의된 것입니다. '친일'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뜻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거뜬히' 논문 한편은 쓸 정도라는 판단이니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친일'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역사의 사실 내지는 진실'을 살펴보는 의도에서보다는 어떤 '규정'을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감히 말한다면, 이 단어를 정의한 분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찰했다면 과연 '친일'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과감하게 정의를 내려서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친일'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정의의 목적은 바로 동기의 언어화...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사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


그러니 '천박한 실용주의자에 불과했던' 이완용이 친일파로 둔갑하고 '왕권주의자이며 인종주의자였던' 안중근이 '까방권을 획득한' 불세출의 위인으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과연, 조선이 이 땅의 민중들에게 어떤 존재를 보여주었던 나라이던가요? 그러나 모든 것 필요없이 '친일'이라는 단어 하나로 구한말 그리고 일본강점기 시대의 모든 역사는 '흑백논리로 규정짓게 됩니다'.


이렇게 '친일'은 동기의 언어화, 즉, '친일을 단죄하기 위하여' '친일'이라는 단어를 정의한 것으로 세상에 태어나면서 그 이후로는 '친일'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공세의 무기'로 '친일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화자의 속성을 규정하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의 의식구조까지도 '친일'이라는 단어에 규정시키는, 즉 '언어로 의식을 규정하게 된 것'이죠.



'친일'이라는 단어의 등장이 독립적이라면 '친미'라는 단어는 '친북'이라는 단어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나왔습니다. 용어의 등장에 대하여 설명한 참조할만한 논문이나 자료가 없어서 그동안 제가 언론들을 모니터링한 기억에 의하여 나온 순서를 나열해보면 친미사대주의 --> 친북주의 --> 굴미주의 --> 종북 --> 종미... 순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순서의 맞고 틀림과는 별개로 '친미'와 '친북'은 친일과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서로를 포지셔닝하면서 대칭적인 개념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단어들은 신경심리학자인 콜린 트레바덴의 정의대로 '언어는 단지 의도나 정보를 잔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지위 및 역할을 조절한다'라는 기제로 작동합니다.


제가 호남차별기제 중 가장 심각한 표현이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홍O나 홍OO'라는 단어가 아니라 '호남사람이 무엇인가 잘못하여 비판할 때는 반드시라고 하만큼 '너'라는 단수가 아니라 '너희들'이라는 복수가 거론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지적은, '너'라는 단수를 거론하는 것은 '그 행위로만 판단하는 것'이지만 '너희들'이라는 단어는 그의 행위는 물론 그가 속한 집단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구 사람이 무엇인가 잘못했을 때) "너는 왜 그래?' 또는 '걔는 왜 그래?'

(광주 사람이 무엇인가 잘못했을 때) "너희들은 왜 그래?" 또는 "걔네들은 왜 그래?"


일상 생활에서 제 귀에 '자주' 들어왔던 두 표현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오시나요? 후자는..... 그의 '행위의 결과'가 그의 판단에 연유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집단의 속성에 의한 비난입니다. 아주, 우리 눈에 익숙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뭐, 저 역시 사회적 차별에 가담한다고 비난하면 변명하지 않겠지만...) 저도 응시자의 이력서를 검토할 때면 같은 값이면 '양친부모 슬하에서 자란 응시자'를 좀더 선호합니다. '모범적인 이력서들'에 '엄하신 아버지 자상하신 어머니'라는 식의 표현이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자신은 '결손가정에서 자라자 읺았다'라는 것의 '웅변'입니다. 물론, 이력서를 쓸 때 (물론 5년 이상의 경력자가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을 어필할 것이 별로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만) 여러분들도 이 표현을 쓰셨을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물론, 일반적으로야 '양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는 성장과정이 더 평탄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은 보다 원만한 성격을 형성하는데 '유리(?)'하지만 사람을 보지 않고 단지 기술된 이력서만으로 사람을 규정짓는 행위....는 바로 '너'와 '너희들'의 표현의 차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 속담에 '머리 검은 것은 거두어 키우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입양 자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계부, 계모, 특히 계모에 대한 거부 의식이 그런 '속성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의식의 선진화를 위하여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 그리고 '신데렐라'는 물론 '백설공주'는 읽혀져서는 안됩니다. <-- 물론, 이건 '주의주의'로 하나의 레토릭입니다만..


어쨌든 '친미' 그리고 '친북'에 대한 것도 상세하려면 장문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세는 생략하겠습니다만 오늘 제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는 바로 '친북'과 '종북'입니다. 그리고 그 '친북'과 '종북'의 차이는 물론 '북한 온정주의' 태도를 보이는 분들은 물론 요즘 아크로의 새로운 분들의 의식인 '사무라이 진보'에 대하여 좀 비판적인 판단을 해보려고 합니다. 


(계속됩니다. 편하게 글쓸 팔자가 못되는군요............ ㅠ.ㅠ;;; 나중에 마저 쓰고.... 합본으로 올려놓겠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