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이 진보진영에 던져준 최고의 충격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50대의 반란을 들 수 있겠다. 50대의 반란이라지만 사회계급으로서의 성격을 보면 이것은 명백하게 사회 경제적 취약계층의 의사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50대 가운데 무려 89%가 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라고 볼 수는 없다. 20여년 전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의 50대는 가장 급속하게 사회적 기반과 위치가 붕괴되고 있는 집단이다. 50대의 90% 투표는 그 투표 행위의 중심에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이번 선거에서 그만큼 절박하게, 결사적으로 의사 표현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현상은 이번 선거에서 갑자기 평지돌출한 반란이라기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부터 진보세력을 끈질기게 괴롭히면서도 정밀한 해석이 불가능했던 그 현상의 연장이다. 즉, 진보 정치세력의 가장 견고한 기반이 되어야 할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실은 진보세력이 아니라 진보진영이 흔히 수구꼴통이라고 부르는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역설인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현상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있기는 있다. 이른바 국민 개객끼론. 무식하고 멍청한 국민들이 제 발등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의외로 광범위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 나름 진보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속마음으로는 이 논리를 믿는다.


 

12월 19일 대선 개표결과가 대충 나오고 문재인이 지지자들 앞에 섰을 때 그 지지자들 가운데 "국민들이 무식해서 그럽니다, 국민들이 개객낍니다" 이런 소리가 나왔고, 그게 TV 생방송에서 그대로 전파를 탔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국민들이 무식하고 개객끼들이어서 우리나라 진보세력을 지지하지 않을까? 적나라하게 말해서 나는 국민들이 무식할 수도 있고 좀더 나아가 개객끼들일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문재인이나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회적 취약계층은 조그마한 사회 경제적 변화에도 크나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만큼 자신들의 생존 환경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 그들이 단순히 조중동 등 수구언론에 꾀임에 빠져서 자신들의 이익에 배치되는 정치적 선택을 한다? 민중 아니 사람이라는 존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문재인의 정치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는 선거보다 이런 해석 방법론에 먼저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민중들,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어떤 정치세력의 집권이 자신들에게 유리할지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적 취약계층이 진보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보라는 정치집단의 노선 또는 실천 행태가 취약계층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에 가장 불리한 정책을 펴는 정치집단이 바로 진보진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착각도 아니고, 수구언론의 이미지 조작의 결과도 아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과거 보수정권에 대해 더 적극적인 정책적 접근을 한 것은 사실이다. 복지예산도 늘렸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나 기구도 나름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러한 노력이 정말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좀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이것은 멀쩡한 사람 골방에 가두고서 그 골방에 넣어주는 음식을 군만두에서 물만두로 바꾸어준 후 ‘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문제는 느닷없이 골방에 갇힌 것이지 그 골방에서 먹는 음식이 군만두라는 점이 아니었다. 이 점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안겨주는 현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족이 아니다. 바로 혼란이다. 공자는 몇 천년 전에 이미 ‘(지도자는) 부족(不足)한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은 것(不均)을 걱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고르지 않은 것을 낳는 핵심 요소가 혼란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진보좌파들이 내세우는 정책은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에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조치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그러한 혼란은 새로운 제도와 관습과 문화가 정착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와 관습, 문화가 비교적 빨리 안정적으로 정착되지 못하면 그 혼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것이 되고 만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 진보좌파는 결정적으로 실패했다.


 

좀 극단적으로 얘기해볼까? 사회적 복지망이 부실한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최대 최고의, 어찌 보면 거의 유일한 복지 시스템은 바로 가정이다. 가정의 해체는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회적 구조 시스템이 부족한 나라의 취약계층에게는 말 그대로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김대중부터 노무현까지 정권을 잡은 진보좌파가 추구해온 정책이 (본래 의도는 차치하고라도) 가정의 해체, 전통적인 가족을 유지해온 틀인 가부장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비쳐진 것이 사실이다.


 

호주제 폐지, 군 복무 가산점 부여, 여성가족부의 역할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해는 마라. 나는 이런 개별적 사안들에 대한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저런 소수자 배려 정책이 실제로는 우리나라에서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어마어마한 위협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취약계층들 역시 모든 사안에서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런 사안들 한두 가지에 대해서는 다들 나름대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견해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사안들이 종합적으로 중첩되었을 때 결국 저런 방향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는 깨닫게 된다. 적어도 10년이면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 그리고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이 그렇게도 욕하는 이명박 정권 5년을 사회적 취약계층이 비교한 결론이 이번 대선의 결과였다고 나는 이해한다.


 

사람들 특히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나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 조선일보의 주폭 근절 캠페인이었다고 본다. 이 캠페인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렵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호응을 이끌어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주폭을 양성한 것도 아니고 이명박이 특별히 주폭 근절을 위한 정책을 내세운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주폭을 용인하고 방조하는 듯한 정책 스탠스였던 김대중 노무현 세력과 그 반대편 세력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박근혜 진영과의 대조라는 이미지 효과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사형제의 실질적 폐지 그리고 대중의 격렬한 분노를 일으키는 흉악범죄에 대해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는 온정주의적 판결 등이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진보개혁 세력은 혼란만 부추기는, 적어도 그 혼란을 방조하는 세력이라는 인식이 각인됐다. 지난 10년 진보진영의 집권이 만든 결과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무엇보다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취약계층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취약계층도 한때는 분명 진보진영의 시도에 대해 기대를 걸었다. 이들이 새누리당 등 기존 집권세력에게 만족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보진영이 보다 나은 질서, 보다 나은 분배구조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그래서 두 번씩이나 권력을 준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은 보다 나은 분배구조를 만들지도 못하면서 극심한 혼란만 부추겼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과거의 세력, 부도덕하고 능력도 별로지만 그래도 대충 검증된 세력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검증됐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긍정적인 의미 그리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모두 그렇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부정적인 측면의 검증이다. 즉, 새누리당 세력은 개객끼들이고 악마 같은 놈들이지만 적어도 저놈들이 주는 피해는 대충 검증이 되고 익숙해졌다는 얘기다. 적어도 혼란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의 혼란이라는 인식을 대중들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대선에서 50대들의 선택을 좌우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정희 발언 그리고 친북 성향 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문제 자체가 대중에게 불안감을 준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남북대화와 화해공존이 남한의 취약계층에게 안겨줄 이익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못하고 막연한 공포, 혼란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전혀 차단하지 못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쿠데타를 정권을 잡자마자 이른바 사회악 일소라는 작업을 하곤 했다. 깡패 등 폭력배 소탕, 삼청교육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게 단순한 쇼맨십, 시범 케이스로 사회적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시도였다고 보는가? 분명 그런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하루하루 길거리에서 그리고 도시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온갖 비루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취약계층에게는 무척 반가운 조치였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486들과 숱하게 다툰 이슈이기는 하지만, 진보세력은 새로운 질서, 보다 나은 질서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질서 차제를 없애려는 시도가 아니다. 권위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권위를 세우려는 것이다. 486들은 이 기본적인 전제를 인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판을 깨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래도 지들은 별로 지장 없다. 어차피 그들은 애초부터 사회적 강자였고, 정권까지 잡은 상황애서는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취약계층은 다르다. 그들은 혼란만 가중시키는 이른바 진보세력에 대해 이를 간다. 가장 취약한 처지의 자신들에게 직격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나라 소득 하위계층의 3분의 2가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통계도 나온다. 내가 보기에 이건 당연한 결과이다.


 

취약계층을 죽이는 정책을 10년씩이나 펼치고도 투표함 열 때마다 “도대체 표가 왜 이렇게 나오는 거야? 니들이 사람 객끼야?” 이렇게 떠드는 이른바 진보세력들, 니들은 아직 멀었다. 당해도 한참 더 당하고 곱빼기로 더 당해야 싸다. 그렇게 당해도 정신차릴 가능성이 없다는 게 내 전망이다. 슬픈 것은 호남이 저 쓰레기들에게 볼모로 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빠들, 486을 척결하지 않으면 호남과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자들은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