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 다이어리”
 

<내니 911>은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험 많은 유모가 달려가서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http://www.qtv.co.kr/QTVPrg/0911_nany/main.asp?proIdx=55

 

“싱글맘 다이어리” 편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나온다. 첫째는 8세 여자 아이고, 둘째는 7세 남자 아이다. 여기에서는 엄마, 누나, 동생으로 부르겠다. 아이들의 아빠는 1년 전에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두 아이 모두 엄마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마구 때리기도 한다. 그리고 두 아이는 자주 싸운다. 힘에서 밀리는 동생은 누나를 “뚱보”라고 놀린다(내가 정확히 들었다면 누나의 이름인 Jacklin을 Fatcklin이라고 바꿔 부른다). 그리고 누나의 물건을 부순다. 그러면 누나는 주먹으로 복수하는 식이다.

 

엄마는 두 아이들에게 쩔쩔 맨다. 매를 들지도 않고 심지어 전혀 화를 내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 얻어 맞으면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거나 울음을 터뜨릴 뿐이다. 이전에는 아빠가 훈육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빠를 무척 사랑했던 것 같다. 자세히는 안 나오지만 아빠는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엄하게 다스렸지만 아이들을 몹시 사랑했으며 아이들과 마음도 잘 통했던 것 같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뛰지 않았다고 한다.

 

출동한 내니는 단호하게 아이들을 훈육할 수 있도록 엄마를 돕는다. 결국 1주일 후에 아이들은 엄마의 말도 잘 듣고 서로 싸우지도 않게 된다. 또한 이전에는 엄마와의 의사 소통이라고는 엄마에게 소리지르고 때리는 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엄마와 아이들은 애정이 담긴 말을 나눈다.

 

 

 

 

 

내니의 해석: 슬픔-분노 가설
 

내니에 따르면 두 아이들은 아빠를 잃은 큰 슬픔에 빠져 있다. 그 슬픔은 분노가 되어서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즉 서로 싸우고 엄마를 공격한다.

 

내니에 따르면 엄마가 아이들 앞에서 전혀 화도 내지 않고 처벌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가 집안의 대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화가 났음을 알리라고 내니는 엄마에게 권고한다. 그리고 방에 10분 동안 있으라는 식의 처벌도 처방한다.

 

 

 

 

 

적응론적 해석: 권력-공백 가설
 

아빠가 사망한 다음부터 아이들의 행동이 갑자기 바뀌었다. 내니는 아빠를 잃은 슬픔이 아이들의 행동 변화의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상당히 그럴 듯한 해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빠의 사망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훈육을 아빠가 도맡아 했기 때문에 아빠가 사망한 후에 대장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의 행동이 변한 이유는 아빠를 잃은 슬픔과 별로 상관이 없다. 그들은 단지 엄마가 만만하기 때문에 반항하는 것일 뿐이다. 이전에는 엄마에게 막 대했다가는 아빠에게 혼나기 때문에 얌전했을 뿐이다.

 

내니가 제시한 슬픔-분노 가설과 내가 제시한 권력-공백 가설 모두 그럴 듯하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해석이 옳은 것일까? 그냥 둘 다 그럴 듯한 해석일 뿐이며 과학적 검증은 불가능한 것일까?

 

어느 정도 검증은 가능할 것 같다. 아빠가 훈육을 도맡아 하는 수 많은 가정들의 사례들을 비교하면 된다. 권력-공백 해석이 옳다면 아빠가 장기 출장을 간 상태이며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슬픔-분노 가설로도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기 출장 상태도 아빠를 잃은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빠가 사망한 경우보다 장기 출장을 갔을 때 덜 날뛸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가설에 모두 부합한다. 권력-공백 가설에 따르면 아빠가 당장은 없지만 살아 있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엄마에게 덜 반항한다. 슬픔-분노 가설에 따르면 아빠가 사망한 경우에 슬픔이 더 클 것이기 때문에 분노도 더 클 것이다. 따라서 엄마에게 더 반항할 것이다.

 

엄마가 훈육을 도맡아 하는 집안들을 비교해 보는 방법도 있다. 슬픔-분노 가설이 옳다면 이런 경우에도 아이들은 아빠가 사망한 다음에 엄마에게 상당히 반항할 것이다. 반면 권력-공백 가설에 옳다면 아빠가 사망한 다음에 엄마에 대한 반항의 측면에서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다. 즉 아빠가 사망한 다음에도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잘 들을 것이다.

 

 

 

 

 

적응론적 해석: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엄마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엄마와 아이 사이의 근친도는 0.5이며 누나와 동생 사이의 근친도 역시 0.5다. 따라서 서로에게 완전히 이타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누나와 동생은 엄마의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다. 다른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있지만 누나와 동생에게 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엄마의 유전자에게 이득인 반면 누나의 유전자에게는 자신이 좀 더 많이 차지하는 것이 이득이며 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다.

 

적응론적으로 해석해 보자. 땡깡(tantrum)은 엄마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결판이 나도록 아이들이 쓰는 무기다. 남매가 서로에게 휘두르는 직접적인 폭력 역시 자신이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동생은 누나를 뚱보라고 놀린다. 이것은 누나의 약점(또는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부모의 유잔자의 입장에서는 더 잘난 아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이득이다. 따라서 남매는 서로 상대의 못난 점을 부각하는 것이 유리하다.

 

엄마는 아이들의 반항에 화를 내지도 처벌을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아이가 땡깡을 부리면 결국 자신의 목적을 관철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보다 서열이 훨씬 높다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로 두 아이 모두 자신이야말로 집안의 대장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와 충돌할 때 아빠를 잃은 슬픔을 보이며 울기도 한다. 이런 행동 때문에 내니는 아빠의 슬픔이 분노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냉소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이는 아빠를 잃은 진짜 슬픔을 이용해서 엄마를 조종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악하다.

 

누나가 잘못한 후에 처음으로 처벌을 금방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엄마와 내니는 이제서야 누나가 잘잘못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에도 누나는 잘잘못을 잘 가렸다. 문제는 서열 관계였다. 아이들은 무엇인 옳은 행동인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알고 있었다. 1년 전에는 잘못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아빠가 있었던 반면 내니가 오기 전의 상황에서는 엄마가 너무나 약하게 나와서 권력 공백 상태였을 뿐이다. 내니가 온 이후에 엄마가 내니의 지도를 받아 이전의 아빠처럼 단호하게 권력을 주장하자 아이들은 엄마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왜 아이들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나?
 

아빠가 죽은 후에 집안은 한마디로 개판이 된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고 엄마에게 반항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자한다. 서로 근친도가 0.5나 되는 매우 가까운 친족 관계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상당히 부적응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싸움이 너무 심해서 공멸로 가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에 인류가 진화한 환경과 현대 선진 산업국의 일부 가정의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적응적 행동인 것 같다.

 

첫째, 사냥-채집 사회에는 분유도 이유식도 없었다. 엄마는 자식에게 3~4년 동안 모유를 먹였으며 모유를 어느 정도 이상 먹이면 배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형제자매 사이의 터울이 보통 3~4년 이상이다. 서로 나이 차이가 많으면 경쟁할 일이 적다. 둘 모두 젖을 먹을 나이라면 젖을 놓고 경쟁하겠지만 나이 차이가 많으면 둘 중 한 명은 젖에 미련이 전혀 없는 나이가 된다.

 

어쩌면 아이가 한 살 아래 동생을 무의식적으로 half-sibling(엄마 또는 아빠가 다른 형제자매, 근친도가 0.25)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그렇게 나이 차이가 적은 full-sibling(엄마와 아빠가 모두 같은 형제자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식의 형제자매 인지 메커니즘이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식의 인지 메커니즘이 만약 진화했다면 물론 half-sibling으로 인지하는 경우에는 full-sibling으로 인지하는 경우보다 덜 이타적으로 대할 것이다.

 

둘째, 현대 서구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매를 대는 것이 금기시되면서 아이들에게 쩔쩔매는 부모가 늘어난 것 같다. 아이들에게 매를 대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화를 내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식을 학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는 자신이 아동 학대를 하는 부모로 비춰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해 봤자 상당히 단호한 부모에게 눌려서 약간의 소동을 일으키는 정도인데 반해 현대의 어떤 가정들에서는 집안이 완전히 엉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일관되지 못한 훈육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일관되게 행동하라고 권고한다. 규칙을 정해 놓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항상 처벌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일관되게 처벌하지 않을 경우 왜 문제가 발생하나? 내 생각에는 아이들은 부모의 비일관성을 이용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부모가 일관되지 않다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땡깡을 부리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일관성에 대해 잘 관찰한 후에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만약 부모가 항상 단호하다면 땡깡을 부려봤자 손해만 본다. 땡깡을 부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자신에 대한 이미지도 나빠지는 반면 얻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가 왔다 갔다 한다면 땡깡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다.

 

 

 

 

 

맺음말
 

나는 내가 제시한(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가설을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했을 것이다) 가설들이 진리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위의 가설을 검증하는 것은 그리 쉬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상당히 냉소적으로 보이는 적응론적 가설(주된 테마는 아이들이 매우 영악하게 행동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적응론적 가설은 자연 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상당히 일관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반면 위에서 소개한 슬픔-분노 가설 같은 경우에는 인상과 상식을 임시방편적으로 모아놓은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 같다. 객관적 진리에 근접하려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좋아하는 적응론적 가설과 기존 아동 심리학자들의 여러 가설들이 증거들을 서로 들이대며 경쟁해서 승패를 가리도록 해야 한다.

 

 

 


2009-12-14